[오종석 칼럼] 민정수석 '패싱' 톺아보기

2021. 3. 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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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급 인사서 패싱되자
불만 제기하며 공개 사의 표명
거취 일임한 신현수 수석

청와대 참모의 정부 부처 인사
개입은 바람직한가… 박근혜
정부 '왕수석' 우병우 영향력
검찰에 '우병우 사단' 배출

비서관은 정부 부처에 대통령
뜻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자리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밝힌 신현수 민정수석비서관 사퇴 파동을 둘러싼 전말은 이렇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신 수석은 지난달 7일 발표된 검찰 고위급 인사안을 사전 조율해 왔다. 원만하게 협의하다가 인사안을 확정하는 단계에서 이견이 불거졌다. 신 수석은 협의가 제대로 안 됐다고 판단하고 있었지만 박 장관은 충분히 협의가 됐다고 생각하고 인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검찰 고위급 인사 발령일인 9일 신 수석은 자신이 ‘패싱’된 것에 불만을 품고 첫 사의를 표명했다. 신 수석은 이후 여러 차례 사의를 밝혔고 문 대통령은 그때마다 만류했다. 이어 17일에는 신 수석이 문서 형태로 사표를 제출했다. 문 대통령이나 유 실장이 아닌 인사 쪽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유 실장은 만류했고 신 수석은 21일까지 나흘간 숙고를 마친 뒤 청와대로 복귀해 거취를 문 대통령에게 일임했다. 문 대통령은 현재 사표수리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이 파동의 핵심은 ‘민정수석 패싱’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검찰 인사 과정에 민정수석이 개입하는 게 ‘정상’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라는 논리가 전제로 깔려 있다. 보수 야당 등 일각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과 조율되지 않은 검찰 인사안을 대통령에게 올린 것 자체가 편법이며, 따라서 박 장관에 대한 감찰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과연 올바른 인식인가. 청와대 참모가 정부 부처 인사에 관여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관련 법률상 공무원 인사는 ‘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재가’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 참모가 관여하지 못했다고 원칙과 정도에서 벗어난 것으로 호되게 비난받아야 마땅한가. 박근혜정부 때 ‘왕수석’으로 통했던 검찰 출신 우병우 민정수석의 경우를 보자.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그는 당시 검찰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우병우 사단’을 전진 배치했다. ‘우병우를 통하지 않고는 검찰 인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도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비선 국정농단을 예방하지 못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공무원 인사는 장관의 책임 아래 각 정부 부처가 자율적으로 하고 청와대는 되도록 관여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물론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정부 부처 공무원 인사에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냥 관행으로 넘어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 참모의 인사 개입이 당연하고 올바른 원칙이라고 대놓고 떠들 사안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 공무원 인사에 경제수석이 깊숙이 개입하면 박수를 칠 일인가. 기재부 장관이 경제수석을 패싱하고 인사를 했다면 그것은 원칙을 무시한 것이고 편법이라고 비난받아야 하는가. 대다수 국민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청와대 참모는 인사 최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재가에 앞서 정부 부처에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고 사전에 조율하는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한다. 청와대 참모와 대통령의 생각이 다른 경우, 또는 청와대 참모와 부처 장관의 의견이 다른 경우 그 선택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하게 된다. 흔히 청와대 비서관은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림자처럼 대통령을 조용히 보좌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의사 결정 과정이나 자신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 외부로 밝히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번 신 수석 패싱 문제는 그동안 계속됐던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본질이 간과됐다. 물론 박 장관이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검찰 인사를 일방 추진한 것도 문제다. 문재인정부가 현 정부에 반하는 검찰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윤석열 찍어내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특히 문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으로 청와대에 발을 디딘 신 수석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이 재가한 인사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신 수석의 행동이 ‘오버’였다는 점이다. 또 청와대 참모로서 걸맞지 않은 신 수석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심각한 부담을 안기게 됐다는 것이다.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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