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새로운 깃발 '타도 신진서'를 보고 싶다

2021. 3. 3. 00: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커제 꺾고 세계 1인자 향해 질주
농심배 이어 응씨배·춘란배 조준
검은 돌 흰 돌 3/3

신진서 9단은 중국에 어떤 존재일까. 새해 중국 언론에 ‘신진서의 돌출’이란 표현이 등장했었다. 평평한 바둑판 위에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을까. 중국바둑의 대부 격인 녜웨이핑 9단은 좀 더 노골적으로 심중을 털어놓았다.

“우리 기사들에게 호소하는데 신진서를 반드시 해치워달라. 신진서가 박정환을 7대0으로 이겼지만 우리는 그렇게 허투루 당하면 안 된다. 잘 둬서 그를 이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신진서는 이미 우리의 주요 적수가 됐으며 위협적이니 모두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녜웨이핑의 불안은 적중했다. 신진서는 불과 한 달 후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에서 5연승을 거두며 한국우승을 결정지었다. 바로 지난주의 일이다. 중국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탕웨이싱, 양딩신에 이어 커제까지 무너진 것이 충격이었을까. 아니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중국기원은 “신진서가 아직 커제를 넘어선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이 말은 오히려 “곧 넘어선다”는 의미로 들린다.

신진서는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한 번뿐이다. 그런데도 8회 우승한 커제와 비슷한 레벨로 평가받아왔다. 빠르고 정확한 수읽기, 강력한 전투력은 신진서의 매력이고 강점이다. 무엇보다 2000년생인 신진서는 현존하는 세계챔프 중 가장 어리고 그래서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점이 큰 무기다. AI와 친밀하고 이해도가 높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신진서가 한번 일어서면 어디까지 질주할지 알 수 없다. 녜웨이핑도 바로 그 점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세계정상을 향한 시간표는 이미 잡혀있다. 신진서는 응씨배와 춘란배 두 개의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해 있다. 상대는 커제가 아니다. 응씨배 결승 상대는 2000년생 동갑인 셰커 8단. 그는 8강전에서 커제를 꺾었다. 춘란배 상대는 탕웨이싱 9단. 준결승에서 커제를 꺾었다. 이 두 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 신진서는 드디어 일인자의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이세돌-구리 양강 시대가 저문 이후 세계바둑은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고 이를 끝장낼 인물로 커제가 점찍혔다. 하지만 저울추는 신흥 강자 신진서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커제 외에도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자들은 많다. 판팅위, 미위팅, 스웨, 탕웨이싱, 셰얼하오, 양딩신, 구쯔하오 등이 모두 20대의 젊은 강자들이다. 신진서는 “이들 누구와 싸워도 5대5 승부”라고 겸손해하면서도 “일인자의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뜻이다. 다음은 신진서와 일문일답.

Q : AI와 가장 비슷해 신공 지능이란 별명을 얻었다. AI를 평가한다면.
A : “인간보다 훨씬 강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프로의 자부심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AI는 바둑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굉장한 장점이다.”

Q : 수읽기와 전투력에서 최강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부드러움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는데 혹 바둑관에 변화가 있나.
A : “AI는 무리수를 잘 응징한다. 그걸 보면서 발상이 경직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부드러운 전환에선 커제 9단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Q : 커제와의 삼성화재배 결승(지난해 11월)은 신진서 시대를 여는 최고의 무대로 기대됐으나 ‘1선 사건’으로 허무하게 패배했다.
A : “아픈 기억이지만 지난 일이다. 다 잊고 응씨배와 춘란배 결승에 전념하겠다.”
신진서의 목소리는 베이스에 가까운 저음이다. 그 나지막하고 신중한 목소리로 “이창호, 이세돌 사범님의 뒤를 잇고 싶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이창호 전성시대에 세계바둑은 ‘타도 이창호’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제 새로운 깃발, ‘타도 신진서’라는 깃발을 보고 싶다. 한국바둑은 오래 쉬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