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서른 살 여자'를 그리는 법

박민지 2021. 3. 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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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TV '아직 낫 서른'의 한 장면. 카카오TV 제공

“서른 살요? 진짜 별 것 없더라고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아직 낫 서른’의 주인공 안희연은 서른 살이 됐을 때의 심정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하며 크게 웃었다. 이 작품은 서른 살이 된 세 여자의 이야기다. 사회는 30대 여성에게 완숙함을 기대하지만, 이 작품은 ‘적당히 교묘하고 적당히 똑똑해졌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이’로 그려낸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드라마가 ‘서른 살 여자’를 담아내는 방식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지금까지 사회는 여성의 전성기를 20대로 정의하고, 이때 결혼을 하지 않으면 노처녀로 취급했다. 하지만 지금의 드라마는 여성의 삶과 자기결정권에 집중하면서 30대 여성의 사회적 의미를 재설정하고 있다.

'멜로가 체질' 중 한 장면. JTBC 제공

수요를 반영하니 흥행은 당연했다. 최근 공개된 ‘아직 낫 서른’의 1화는 반나절 만에 180만뷰를 넘겼고, 현재 320만뷰를 돌파했다. 2019년 공개된 ‘멜로가 체질’도 지난해부터 넷플릭스에서 꾸준히 역주행 중이다. 이 드라마도 서른 살이 된 세 여자를 앞세운다. 이들은 내내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를 외치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서른이 된다고 괜찮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웨이브에서 공개된 ‘#러브씬넘버’ 중 한 장면. 웨이브 제공

지난해 말 웨이브에서 공개된 ‘#러브씬넘버’는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로, 20대, 30대, 40대 여성들의 연령대별 고민을 담았다. 여기에 사회에서 불완전한 나이로 인식되는 29세 하람(심은우)의 이야기가 있다. 하람은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평범함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싹튼 의구심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날 위한 삶이 맞는 걸까’. 평탄했던 삶의 첫 일탈은 결혼식 당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건 결혼식뿐만이 아니었는지도 몰라요”라는 하람의 말에는 또래 여성들만이 알 수 있는 고뇌가 담겨 있었다.

3040 여성이 드라마의 중심에 선 건 1998년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부터다. 당시만 해도 명품을 휘감은 여자 네 명이 거침없이 연애담을 풀어 놓고, 일과 사랑의 균형을 맞추는 모습은 파격이었다. 이 드라마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한국도 흐름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국내 정서 탓에 한계가 있었다.

여성 서사의 원조로 꼽히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2004·KBS)의 작품 소개에는 ‘노처녀 라디오DJ 미자(예지원)의 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라고 적혀있다. 인물 소개에도 ‘우리 시대 전형적인 보통의 노처녀’로 표기돼 있다. 극 중 미자의 나이는 31세였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MBC) 역시 결혼을 ‘못 한’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극 중 김삼순은 30세였다. 여성을 앞세워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결혼 적령기를 맞추지 못한 여성을 비주류로 취급하고 결국 백마 탄 왕자님의 선택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그쳤다.

지금의 드라마들은 “서른이 돼도 괜찮다”고 말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향상하면서 결혼 연령대가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결혼의 여부가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여성을 가둔 나이 프레임을 깨는 것 외에도 인간으로서 여성을 조명하는 여성 중심 서사는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올해 줄줄이 공개된 신작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은 의존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팩션 사극 ‘달이 뜨는 강’(KBS)은 평강공주(김소현)가 바보온달(지수)을 대장군으로 키워내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현대에서 다시 태어난 평강은 한층 강하다. 자유자재로 무술을 사용하는 무사의 면모를 지녔고, 온달의 삶을 지탱하되 자신의 중심까지 바로 잡는 인물이다. 판타지물 ‘시지프스’(JTBC)의 강서해(박신혜)는 미래에서 온 구원자다. 고층건물 사이를 활강하고, 거구의 남자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히는 전사다. ‘빈센조’(tvN)의 홍차영(전여빈)도 독하다.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자의 보호를 받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지키는 캐릭터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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