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감독 홍명보, 데뷔전 오대영으로 '증명'해 낸 비결

서호정 기자 2021. 3. 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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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울산] 서호정 기자 = 전후반 90분 경기를 마치고 5골 차 대승이라는 결과를 봤다면 문제점을 말하기 어려워진다. 50대 감독으로서 늦깎이 K리그 데뷔전을 치른 홍명보 울산현대 감독은 오랜 기다림을 아름다운 결과와 내용으로 증명했다.


울산은 1일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1라운드에서 윤빛가람, 김기희, 이동준, 김인성(2골)의 득점으로 강원FC에 5-0으로 승리했다. 지난달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 2경기를 치렀지만 K리그는 이날이 첫 공식전이었던 홍명보 감독은 대승으로 출발했다. 


클럽월드컵 첫 경기였던 티그레스전과 비교하면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 대신 U22룰 소화를 위해 19세 고졸 신인 강윤구가 선발 출전한 것이 변화의 전부였다. 그러나 3주 간의 시간 동안 전술적 디테일과 완성도가 한층 올라간 모습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강원의 수비에 막혀 고전했다. 이날 강원은 과거 김병수 감독이 주로 쓰던 변형 스리백이 아닌 아슐마토프, 임채민, 김영빈의 전형적인 센터백 3명의 라인이 가동됐다. 거기에 좌우 윙백인 윤석영, 김수범까지 울산이 공을 잡으면 수비라인에 맞춰 서서 파이브백을 구축했다. 이동준과 김인성을 이용한 측면 돌파도, 윤빛가람과 강윤구가 하프스페이스를 공략하려고 해도 강원의 중앙 미드필더 한국영, 김동현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원의 빠른 카운터에 전반 3분 위기를 맞았다. 윤석영이 왼쪽 측면에서 깔아서 올린 크로스를 마사가 문전으로 쇄도하며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다. 조현우가 골라인 앞에서 가까스로 막아내며 실점 위기를 간신히 넘긴 울산이었다. 


강원은 볼 소유와 점유율을 포기한 대신 윙백들의 빠른 전환 플레이로 울산을 애먹였다. 울산은 전반 중반까지 강윤구가 빠른 전진 패스로 이동준, 김인성의 돌파를 이끈 것 외에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흐름을 울산 쪽으로 끌고 와 준 기폭제는 지난 시즌까지 강원에 몸 담았던 스트라이커 김지현이었다. 자신에게 공이 연결되지 않자, 김지현은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 경합을 시작했다. 전반 24분 김지현의 저돌적인 돌파를 막던 한국영은 경고를 받았다. 2분 뒤에는 아크 정면에서 공을 잡은 김지현이 페인팅 동작으로 강원 수비진을 허물고 들어가다 페널티박스 바로 앞에서 프리킥을 유도했다. 


울산은 팀이 맞은 사실상 첫 공격 기회를 득점으로 만들었다. 16미터 거리의 프리킥이었는데, 강원의 수문장 이광연은 수비벽으로 왼쪽을 완전히 막고 자신은 오른쪽에 서는 전략으로 울산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다. 키커로 나선 윤빛가람은 수비벽을 넘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아예 이광연이 버티고 있는 코스로 강하게 때렸다. 오른쪽 구석으로 날아오는 슈팅에 반응한 이광연이 몸을 날렸지만 너무 강하고 빠른 탓에 막을 수 없었다. 


이 장면은 강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김병수 감독은 "지난 시즌 실점이 많지만 세트피스로 허용한 게 14실점이었고, 그 중 반이 페널티킥이었다. 세트피스 실점을 줄인다면 올해 수비진이 안정감을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풀백을 센터백으로 기용하던 예전의 변형 수비대형이 아닌 다소 보수적인 센터백 3명의 백스리로 돌아간 이유였다. 그러나 이광연이 프리킥에 대한 심리전을 주도했음에도 윤빛가람의 슛을 막지 못하며 선제 실점, 강원은 수비라인을 어느 정도 풀고 앞으로 나와야 했다. 


울산 입장에서는 세트피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제골을 기록, 상대의 깊고 좁은 수비라인을 무너트리기 위한 정석 1장을 보여줬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윤빛가람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팀에 잔류하는 것이 결정됐다"고 밝혔는데, 지난 시즌 울산 입단 후 절정의 경기력을 보이기 시작한 윤빛가람이 역시 물꼬를 텄다.


전반 실점으로 계획이 틀어지자 강원은 라인을 올리고, 윙백을 전진시켰다.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 기회가 있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고무열이 니어포스트에서 울산 수비에 앞서 헤더를 시도했고, 공은 빠르게 울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도 조현우가 그 슛을 막아냈다. 강원은 지난 시즌 울산전에서 번번히 조현우에게 득점 기회가 저지됐는데 이날도 전반에만 두 차례 그런 장면이 나와 기가 꺾였다.


전반전이 끝난 뒤 울산은 빠르게 전술적 보완을 진행했다. 경기 후 홍명보 감독은 "위에서 지켜보던 코치(로페즈)가 상대에 대한 분석을 해 줘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얘기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빠른 추가골이 나오면 강원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겠다고 판단한 홍명보 감독은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우선 강윤구 대신 이동경을 투입, 2선에서의 세컨드볼 점유을 통한 공격 빈도 증가를 꾀했다. 그리고 전반에 라인을 따라 움직이던 이동준과 김인성에게 중앙으로 파고 들어 상대 수비 배후를 공략할 것을 주문했다. 강원이 후반에도 윙백을 전진시키는 만큼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파고 들겠다는 의도였다. 


후반 7분 만에 효과가 나왔다. 역습 과정에서 이동준의 빠른 발이 빛났다. 넓게 벌리고 있던 3명의 강원 센터백은 이동준 1명의 전진에 무너졌고, 스리백의 중심인 임채민이 이동준의 돌파를 저지하려고 한 것이 결정적 득점 기회 저지로 판단돼 비디오 판독(VAR)을 통해 퇴장 판정이 나왔다. 이동준과 김인성의 빠른 발을 이용해 강원 센터백 3명과의 미스매치 상황을 꾀했던 홍명보 감독과 울산 코치진의 의도가 적중한 장면이었다. 


강원은 임채민의 퇴장 직후 프리킥에서 또 다시 실점을 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김수범을 빼고 신세계를 투입해 수비라인을 재건한 김병수 감독이었지만,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마크에 대한 내용이 공유되지 않아 집중력이 풀렸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울산은 윤빛가람의 프리킥에 이은 혼전 상황을 김기희가 골로 마무리하며 2-0으로 달아났다. 


후반 12분 이동준의 골은 완전히 쐐기를 박았다. 강원의 빌드업을 저지한 울산은 바로 역습에 나섰고, 공격 3명과 수비 3명이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동경은 김인성 쪽으로 시선을 주는 척하면서 수비라인 뒤로 들어가는 이동준에게 완벽한 패스를 배달했다. 이동준은 속도를 붙인 상태에서도 이광연을 넘기는 칩슛으로 마무리하며 울산에서의 첫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 18분과 25분 나온 김인성의 연속 골은 울산의 강력함을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 골 장면에서 윤빛가람의 패스를 김지현이 원터치 패스로 넘겨주고, 김인성이 발리 슛으로 마무리하는 과정과 집중력은 예술 작품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이청용, 힌터제어, 그리고 22세 이하 롤에 해당하는 김민준, 김태현을 투입하며 교체카드 5장을 풍부하게 활용했다. 이청용의 경우 부상에서 갓 회복한 이동경과 더불어 출전 시간을 미리 공유한 선수였고, 약속대로 20분 가량 투입했다. 


지난 시즌에도 개막전에서 상주에 4-0으로 승리한 바 있는 울산이지만, 올 시즌 개막전에서는 홍명보 감독 체제의 짜임새를 새롭게 선보였다. 취임 당시 "보수적인 경기 운영을 해야 했던 대표팀 시절과 달리 울산에서는 박진감 있는 공격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던 약속을 첫 경기부터 지켰다. K리그1 체제 돌입 후 개막전 5-0 승리는 울산이 처음이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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