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기숙사 없으면 외국인 근로자 못 쓴다.."기숙사 짓는 비용 알고 내놓은 정책이냐"

김기찬 2021. 3.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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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국인 근로자 근로여건 개선 방안 발표
농어촌 외국인, 입국과 동시에 건강보험 가입
농어민 전용 보험료 경감, 지원도 받을 수 있어
중대재해나 가건물 숙소 땐 일터 바꿔도 돼
농지 가건물 숙소 활용하면 외국인 고용 못 해
기숙사 신축하는 등 번듯한 건물 제공해야
"농어촌 현실을 무시한 정책" 농어민 반발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법련사에서 열린 '故 속행 노동자 49재 및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천도재'에서 관계자들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캄보디아 출신 속행씨는 한파가 기승을 부린 작년 12월 20일 포천에 있는 농장의 숙소용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간경화로 인한 혈관파열과 합병증이라는 부검결과를 내놨다. 뉴스1

농어촌도 기숙사와 같은 제대로 된 숙소를 갖추지 못하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미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한 농가는 오는 9월까지 기숙사를 신축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으면 고용허가가 취소된다. 농어민의 빠듯한 소득을 감안하면 반발이 예상된다. 농어촌의 인력난도 심화할 수 있다.

농어촌에 취업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입국과 동시에 건강보험 수혜 대상이 된다. 농어민에게만 적용하는 건강보험료 감경과 지원 혜택도 준다.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는 이런 내용의 외국인 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2일 내놨다.

이에 따르면 농축산·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입국과 동시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편입된다. 지금까지는 직장가입자가 아닌 경우 입국 뒤 6개월이 지난 후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정부는 또 농어촌 지역민에게 적용하던 건강보험료 경감(22%)과 지원사업(28%) 대상에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하기로 했다.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건강보험료를 깎아주고, 보험료도 정부가 지원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에 필요한 예산은 추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가 직장을 변경할 수 있는 길도 넓어진다. 지금은 정부가 입국 당시 일터로 지정한(고용허가) 사업장에서만 일해야 한다. 다만 휴·폐업이나 부당한 처우와 같은 사유가 있을 경우에는 5회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이에 대한 인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농한기나 금어기에 일감이 없어 권고 사퇴한 경우 ▶숙소 용도가 아닌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받은 경우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3개월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이나 질병을 얻은 경우에 일터를 변경할 수 있게 했다. 월 임금의 30% 이상을 2회 이상 체불하거나 10% 이상을 4회 이상 체불했을 때, 외국인 근로자 전용보험(출국만기보험, 임금체불보증보험)과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의 숙소 관련 제도를 대폭 정비했다. 농지 위에 설치한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이다. 제대로 된 기숙사나 기숙사에 준하는 번듯한 건물을 숙소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출신 근로자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마련됐다.

이 조치는 올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농어민이 "농어촌의 사정을 무시한 급조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미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농어민에 한해(재고용허가) 준비 기간을 주기로 했다. 신규 고용허가는 아예 불허한다는 의미다. 재고용허가의 경우 숙소 개선 계획과 외국인 근로자의 기존 숙소 이용 동의를 전제로 6개월간의이행기간을 부여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외국인 근로자는 다른 사업장으로 떠나도 된다.

하지만 농어민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불법 건축물인 줄 알지만 사정이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부분 토지를 임대해 농사를 짓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로부터 건축물 신축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현행법상 농지에는 주거용 건축물을 못 짓는다. 전용허가를 받기도 까다롭다. 결국 대지에 지어야 하는데, 땅값과 건축비가 만만찮다. 법적 규제와 빠듯한 농어민의 소득 사정상 정부의 구상에 맞추기가 힘든 형편인 셈이다.

농식품부는 농어촌 빈집과 같은 유휴시설을 리모델링하도록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올해 지원 대상은 10곳에 불과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농민은 "기숙사를 짓는 비용은 오롯이 농민이 부담해야 하는데 농민의 1년 수익과 기숙사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알고 내놓은 정책이냐"고 항변했다. 농어촌의 특성상 컨테이너나 조립식 건물 같은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인정하되 전기와 수도, 냉난방, 소방안전 설비와 같은 일정 수준의 시설을 구비하도록 하는 규제가 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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