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중도층 없이는 권력 잡을 수 없다

2021. 3. 2. 04: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월 보선 결과 지는 쪽은 대격변
중도층 선택이 관건이나 진보
보수 강경파는 중도층 힘 무시

90년대 중반 군부독재 제거된
이래 중도층이 선거마다 현대
정치사의 중대 고비 만들어

합리와 상식에 기반한 선택이
찌든 이념과 지역 정서, 선동
보다 점점 더 힘 발휘할 것

4월 보궐선거는 1년 임기 시장을 뽑는 것이다. 1년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공약이 좀 허무하다. 확실한 건 승자의 이익은 그다지 크지 않은 반면, 패자 진영은 대격변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촉발되는 대선 전체 구도의 변화도 예상된다. 이기는 쪽은 좀더 강고한 대선 진지를 구축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면 책임론, 즉 여권 내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권력투쟁은 문파와 비문파의 격렬한 대립이다. 대선 후보 경쟁과 어우러져 지난 4년간 정치 노선에 대한 시비로 이어질 게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여권 내 대응은 레임덕 현상의 명확한 징조다. 여권 권력투쟁은 시작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여당의 서울 패배는 그런 싸움이 확실히 드러나는 계기가 된다.

야권 패배는 좀 복잡하다. 국민의힘 자체가 뚜렷한 구심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궤멸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보수의 성찰도, 변화도, 노력도 없다는 지적은 이제 진부하다. 그나마 지지율이 나아진 건 순전히 여당의 지독한 내로남불 덕이다. 가짜 말고 진짜 보수를 재건할 만한 후보나 세력이 없으니 당 밖에서 찾아보자는 주장에 보수 지지자들이 꽤 귀 기울이는 상황이다. 단일화가 되든 안 되든, 야권 패배는 제3지대론이나 야권 통합 같은 변화 추구 세력에 힘이 붙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여튼 여당과 야권 중 한 편은 질 것이고, 지는 쪽은 격변 상황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 전체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니 1년 시장 뽑는 선거지만, 정치적 영향은 막대하다.

승패를 가를 요인은 명확하다. 중도층의 선택이다. 진보든 보수든 강경파는 중도층의 힘과 선택을 의도적으로 경시한다. 강경파는 그 세력의 주류(물론 한 시절이지만)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미 기득권이다. 자신들은 권력을 더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미 권력의 정점에 있다. 중도층에 구애를 하는 순간부터 권력의 균열이 시작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속으로는 중도층을 끌어당길 전략을 고심하지만 겉으로는 중도 배제, 대못박기로 치닫는다. 신념(사실 전체 공동체보다는 자기편 이익을 위한)이라는 명분과 ‘당신들이 가면 어딜 가니. 우리를 선택할 수밖에’라는 실력 없는 오만함을 무기로.

생각해보자.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결과를 중도층의 선택을 무시하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2002년 대선, 퇴행적 탄핵 추진으로 보수 세력이 완패한 2004년 총선, 4대 입법 등 무리한 정권 운영으로 인한 압도적 패배로 폐족이 된 진보의 2007년 대선, 제3당이 약진한 2016년 총선. 군부 독재의 그림자가 실제 사라진 1990년대 중반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중도층 선택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고비를 만들었다. 보수나 진보의 강경 주도 세력을 잘 따랐기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시대 흐름을 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중도층이 판단한 결과다. 일부 정치지도자나 선거 전문가들은 중도층도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때문에 중도는 없다고 말한다. 아주 조금만 맞고 많이 틀렸다. 선택 차원에서 결과적으로 중도가 없다는 표현이 일견 맞을 순 있겠다. 그보다는 합리와 상식의 중도층이 명백히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현 정권을 편들었던 중도층 대부분은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지지율이 34%까지 떨어졌다는 건 그런 의미다. 대통령 임기 초중반 높은 지지율과 그동안 일어났던 정치적 사안들을 복기해보면 문파 결속력은 더 강해졌을지 몰라도 중도층은 떠나갔다. 물론 이들이 국민의힘으로 가진 않았다는 게 각종 수치로 증명된다. 중도층은 한국 현대정치에서 점점 더 평형수 역할을 한다. 애써 우습게 보는 이들은 진보, 보수 진영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공동선보다는 자신과 주위의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의 굴절을 겪으면서 중도층의 분별력과 냉정함이 강화되고 있다. 전통적 내편 네편이 아니라 맞고 틀린 걸 명확히 구분하고 판단 자료로 축적한다. 합리적 스윙보터로 진화하는 중도층을 우습게 보는 건 비현실적 이념에 찌든 이들이나 거짓 선동가밖에 없다. 중도층을 무시하곤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논설고문 mh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