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부작용·출산 후 지원 제도.. 임부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2021. 3. 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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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개정이 국민의 명령이다 <7>
지난해 9월 세종시 국무조정실 앞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임신 12주 태아 모형을 바라보고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보호에 우위를 두었던 이전의 결정을 변경한 것이다.

태아가 모체 밖에서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시기 전에는 임부(妊婦)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처벌 일변도의 일률적인 낙태죄 조항을 대체할 입법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면서, 지난해 말까지 관련 법률 개선의 숙제를 입법자인 국회에 넘겼다. 하지만 현재까지 관련 법률의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생명윤리에 자율성의 의미

생명윤리에서 전통적이고도 중요한 개념은 자율성이다. 자율성 존중은 법적으로 자기결정권으로 표현된다. 의료 현장에서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은 ‘설명에 의한 동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영어로 동의(consent)의 개념은 본래 라틴어의 ‘콘 센티레’(con sentire)에서 나온 것으로 ‘함께 느낀다’는 의미가 있다. 의료현장에서 동의는 본인에게 행해질 의료행위에 대해 환자가 승낙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의 승낙이 없는 의료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이 된다. 의사는 어떤 의술이 환자에게 좋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에는 행할 의술의 방법뿐 아니라 예후 부작용 혜택 등 의료행위 후 맞게 될 환자의 건강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다.

이렇듯 의료진이 설명하고 환자가 숙고해 의료행위를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설명에 의한 동의’다. 온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가 자기결정을 하도록 하는 장치는 환자에게는 권리이고, 의료진에게는 환자 치료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낙태에 관한 임부의 자기결정권

낙태도 예외가 아니다. 낙태는 의료의 개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실현과 같은 수준의 절차적 보장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공백 상태에 있는 법률의 개정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 태아의 생명보호와 동시에 낙태와 임신유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실현하기 위한 내용과 절차다.

자기결정권은 외부의 강제 없이 자발적으로, 설명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 의사능력이 있는 본인이 결정할 때, 즉 정보가 제공된 상태에서 의사능력을 가진 본인이 자발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낙태의 부작용과 위험성이 무엇인지, 출산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낙태 후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어려움과 도움받을 방법이 무엇인지, 태아가 임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된 생명이라는 사실도 제공 정보에 포함돼야 한다.

태아는 임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된 기본권의 주체가 되는 존재다. 이 존재의 생사가 달린 중대 결정이 임부 본인에게 달려있다. 임부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해선 자발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법률로 설정돼야 한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사회적 지원 없이 낙태 여부를 선택하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낙태를 종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는 태아와 임부의 생명권을 보장하고 부모가 양육할 수 없을 땐 이차적 양육의 책임을 진다. 출산·양육의 사회적 기반도 없이 수월하게 낙태하는 제도만 있다면,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결과가 된다.

낙태를 통해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고 낙태가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갈등상황에 놓인 임부가 출산을 결심한다고 한들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란스러운 임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등 떠밀리듯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최근 1만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실행한 낙태 실태조사에서도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 중 54.6%가 죄책감, 우울감, 불안감, 두려움, 자살충동 등의 정신적 증상을 경험했다. 낙태한 이유는 ‘학업 직장 등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걱정과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66.3%에 이른다.

한국 사회는 과연 혼인상태와 경제적 상황, 사회적 지위 등에 상관없이 출산과 양육을 결정하는 데 충분한 사회적 지지와 지원 제도가 뒷받침되고 있는가.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편견과 차별 없이 받아들일 사회적 준비가 돼 있는가.

이 두 가지 요소는 자기결정권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낙태죄 관련 법령에는 상담 절차와 숙려 기간 등 절차적 보호 장치와 사회적 지원제도를 두고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실효성 있게 보장돼야 한다. 연간 수십만 건 이상으로 추정되는 낙태를 예방하고 감소시키는 해법으로서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엄주희 교수(건국대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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