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덕 대구

장혜수 2021. 3. 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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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스포츠팀장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 눈 내릴 때는 대구가, 비 내릴 때는 청어가 많이 잡히는 것을 이르는 북한 속담이다. 대구(大口)는 겨울 어종이다. 북태평양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사이 바다에서 서식하다 겨울이면 해류를 타고 부산 가덕도와 경남 거제도 사이 진해만까지 내려온다.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이다. 가덕 어민은 호망(壺網, 그물눈이 큰 자루형 그물)을, 거제 어민은 자망(刺網, 어도에 설치하는 작은 눈 그물)을 쓴다. 호망은 대구만, 자망은 다른 어종까지 잡는다. 대구 산란기인 1월, 자망 포획은 금지하고, 호망은 인공수정에 필요한 숫자만 잡도록 한다.

188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수산전시회에서 토마스 헉슬리(1825~95) 영국왕립학회장은 “기존 어업으로는 대구가 고갈될 수 없다. 그 수가 상상할 수 없이 많아 앞으로 그 어느 어장에서도 포획을 제약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선의 동력기관과 냉장·냉동기술 발전, 어군탐지기의 등장으로 남획됐고, 그 많던 대구가 급감했다. 영국 어민이 잡는 대구는 대서양 대구(Gadus morhua)로, 태평양 대구(Gadus macrocephalus)인 국내 대구와 다른 종이다. 그래도 씨가 마르기는 양쪽이 같았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1980년대 시작한 인공수정과 치어 방류 사업으로 서서히 개체가 늘고 있다.

어부·요리사 출신 미국 논픽션 작가 마크 쿨란스키(73)는 저서 『대구:세계의 역사와 지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에서 대구와 관련된 세계사의 여러 장면을 소개했다. 북유럽 바이킹이 콜럼버스에 앞서 북미 대륙에 닿았던 것, 영국 청교도가 뉴잉글랜드에 자리 잡고 번성했던 것, 서인도제도에서 노예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등등의 이면에 대구가 있었다는 거다.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1958~72년 세 차례에 걸쳐 대구잡이를 둘러싸고 국제분쟁을 벌였다. 그 결과 탄생한 게 국제해양법상의 200해리 경제수역이다.

가덕도가 속한 부산 강서구는 2015년부터 매년 겨울 ‘가덕 대구축제’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취소됐다. 조선시대 진상품이기도 했던 가덕 대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대구가 힘차게 헤엄치던 그 가덕도 바다. 이제 산을 깎아 메우고 그 위에 공항을 지으라고 국회의원 181명이 표를 몰아줬다. 가덕 대구는 이제 어디에 알을 낳고 어디에서 헤엄쳐야 하나.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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