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낙서 하나로 시작된 전쟁..시리아 내전 10년의 비극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다. 처참한 전쟁으로 사회기반시설은 파괴되고 국가경제는 붕괴했다. 387,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560만명이 터키 등 이웃 나라로 탈출해 난민이 되었다. 그 비극을 사진으로 돌아본다.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이었다. 이 조그만 불씨가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가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화하며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시위는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하기 시작해 2013년 8월에는 정부군의 사린가스 공격으로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인데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정권을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을 지원하면서 사태가 국제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14년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의 합의로 일시적인 휴전을 맞았다.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쏟아지는 난민을 감당하지 못한 주변국들이 국경을 봉쇄했고,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유럽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됐다. 2015년 9월 터키 보드룸의 한 해수욕장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돼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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