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38화. 화성

한은정 2021. 3. 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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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알리는 불길한 별, 화성의 진짜 얼굴

옛날부터 사람들은 화성을 주목하며 흥미를 품었고, 현재도 화성을 탐색하고 있다. 사진은 화성 탐사를 주제로 한 SF 영화 ‘마션’의 한 장면.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이 눈에 띕니다. 태양처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다채로운 별자리들의 움직임은 일정하여 변함이 없죠. 하지만 유독 밝게 빛나며 독특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별이 있습니다. 별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듯 움직이는 별,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을 ‘방황하는자’(PLANETES·플라네테스·행성)라고 불렀습니다.

달·금성·목성·토성…방황하는 자들은 천체의 다른 별과 구분되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죠. 그중에서도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붉은색으로 빛나는 한 존재는 유독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불길한 존재’로 두려워했던 별. 형혹성(熒惑星), 네르갈(Nergal), 망갈라(मङ्गल), 마르스(MARS)… 이름은 다양했지만, 모두 전염병·혼란·전쟁 등 비슷한 의미를 담았죠. 20세기 초반엔 외계 침략자의 고향이라고도 여겨졌던 곳, 그 이름은 바로 화성(火星)입니다.

일찍부터 사람들은 화성을 주목했습니다. 밤하늘에서 또렷하게 눈에 띄며 때로는 목성보다 밝게 빛나는 데다 독특한 붉은색은 관심을 끌기 충분했죠. 무엇보다 여느 별과 달리 때때로 하늘의 움직임을 거스르는 모습도 보였어요. 태양이나 달과 달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모습, 이른바 행성의 역행 운동은 화성뿐 아니라 목성·토성 등 다른 행성에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별에 비해 급격하게 역행하면서 빛나는 화성은 세상의 질서를 깨뜨리는 존재로 여겨지기에 충분했습니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화성을 전염병과 전쟁의 신, 네르갈(Nergal)이라 부르며 죽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인들은 지구의 신인 부미와 비슈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로 금욕과 분노의 신이라 여겼죠. 동아시아에서는 재앙과 혼란을 가져오며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봐 형혹성(熒惑星)이라 불렀죠. 오행에서는 불(火), 계절로는 여름, 방위로는 남방을 뜻하는 이 별은 예절을 상징하는 동시에 지상의 정치가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리하여 형혹성이 하늘의 중요한 별자리에 머무를 때 ‘형혹성이 성좌를 범하다’라며 역사서에 기록했죠.

특히, 화성처럼 붉고 화려하게 빛나 중국에서는 천자를 상징해 심대성이라 불리고 그리스에선 ‘화성에 맞선다’는 의미로 이름 지은 안타레스(Antares) 주변에 화성이 머무르는 것을 ‘형혹수심(熒惑守心)’이라 부르며 최악의 흉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진시황이 죽기 1년 전에도 형혹수심이 일어나 진나라의 멸망을 예언했다고 하죠. 하지만 화성은 단순히 불길한 존재만은 아닙니다. 고대 중국인들이 화성을 형혹성이라 부르면서도 ‘예절’이라는 상반된 속성을 부여하고, 인도인들이 분노인 동시에 금욕의 신으로 여겼듯이, 그리스인들을 따라 이 별에 전쟁 신의 이름을 붙인 로마인들 역시 이 별을 다양한 모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로마인들이 그리스인들에 비하여 무예를 숭배하고, 수호를 위한 전쟁을 더욱 중시했기 때문이죠.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 신 아레스는 난폭하고 충동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을 가졌습니다. 혐오스럽고 야만적인 존재였죠. 하지만 여기서 영감을 얻은 로마의 전쟁 신 마르스는 다릅니다. 유피테르와 함께 로마의 고대 3대 신 중 하나이자 로마의 수호자이며, 평화를 지키고 국경을 안정시키는 존재였죠. 로마인들은 그들에게 새해의 시작인 3월에 그 이름을 붙이고 첫날에 마르스의 탄생과 마르스의 어머니 유노를 기리는 축제를 열었어요. 로마에서도 화성은 재앙을 알리는 존재였지만, 화성이 재앙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재앙을 예언하며 이에 대비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했죠. 이는 마르스의 창이 가진 힘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창은 유피테르의 번개나 넵튠의 삼지창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인 동시에 전쟁·재앙을 예지해 대비하게 하는 힘이 있었죠. 로마에는 왕정시대에 세워진 왕의 집무실에 마르스의 창이 보관돼 있었다고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암살 같은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창이 스스로 진동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때로는 화성을 두려워하고, 때로는 존경하며 바라봤죠.

100여 년 전, 퍼시벌 로웰이라는 천문학자가 있었습니다. 일본과 조선을 여행하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말을 처음 쓰고 노월(魯越)이란 한국 이름을 가졌던 그는, 사재를 털어 천문대를 만들고 화성을 관측하며 수많은 스케치와 관측 기록을 남겼죠. 그의 스케치와 기록에는 화성의 극지방에서 연결되는 거대한 수로와 이를 만든 지적 존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화성을 볼 때마다 외계인을 떠올렸죠. 하지만 반세기가 지나 화성에 탐사선이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수로도, 외계인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로웰의 수로는 그의 상상에 불과했던 거죠.

고대로부터 재앙의 상징으로 여겨진 화성! 역사에는 화성과 전쟁·재앙의 관계를 상징하는 무수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정말로 화성이 재앙을 가져왔다고 믿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과학적으로 볼 때 화성과 재앙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단지 다른 행성들처럼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죠. 이건 어쩌면 로웰의 수로처럼 화성을 형혹성이라 부르며 재앙이 올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불안이 낳은 결과는 아닐까요.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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