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가수로 선생의 시대착오

2021. 3. 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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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들이 경쟁하면서
상식 벗어나지 않게 결정돼
공존 느끼게 해야 건강 사회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가수로’ 선생은 치질 전문의다. 줄을 잇는 환자를 보며 세상은 치질 만발의 연옥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고관대작이든 장삼이사든, 있는 자든 없는 자든 치질에 시달리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결단코 이 세상에서 치질이란 질병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치질과 자존심』, 이청준).

‘가수로’ 씨는 기어서 움직이던 사지보행(四肢步行)의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하게 되어 치질을 앓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구 중력의 힘과 신체의 무게감이 결합하여 무게중심이 아래 방향으로 쏠리는 복압(腹壓)이 이유라는 거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에게 치질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믿음을 확고하게 한다. 그래서 ‘서지 말고 엎드려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처방을 한다. 환자들이 모두 그의 말을 잘 따르는 건 아니다. 꽤 알려진 언어학자인 환자도 그런 부류다.

언어학자는 인간이 직립하게 된 것은 부끄러운 부위를 내보이지 않으려는 행위의 결과로 본다. 창자 끝의 그 부위를 가리고 싶은 의식이 누운 자세에서 힘을 주게 만들고, 상체가 위로 들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동작으로 귀결됐다는 거다. 그래서 직립은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고 동작이며, 부끄러움을 감추고, 부끄럽지 않으려는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직립보행은 새로운 모빌리티를 선물했다. 눕거나 기지 않고 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이동력을 얻었다. 낮은 곳도 높은 곳도 갈 수 있고, 물을 건너고 허공을 도약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립으로 확보한 두 팔은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로서 본성을 일깨웠다. 사면팔방을 돌아가며 볼 수 있으니 넓은 시야를 소유할 수 있게 되고,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곳을 몽상하게도 되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를 노래하고, “산 너머 언덕 너머 더욱더 멀리…행복이 있다”(『산 너머 저쪽』, 칼 부세)는 시를 지으며 또 다른 행복을 꿈꾸게 되었다.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하여 평등·공정·정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을 할 때 더 나은 공동체로 갈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능력도 생겼다.

소통카페 3/1

그러나 치질 전문의는 그런 것을 믿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서 치질을 박멸하겠다는 그의 희망을 신념과 원칙으로 강화할 뿐이었다. 그와 다른 생각은 사소한 장애 거리로 알 바 아니고, 원칙의 집행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결국 그는 자존심 때문에 사지보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치질이 없는 세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자존심부터 이 세상에서 깡그리 박멸을 해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각오를 마음속으로 다짐하기에 이른다.

가수로 씨를 닮은 사람이 자주 출몰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은 비정상이다. 직립한 인간이기에 자연스럽게 가지는 다양한 생각을 무시하고 특정 신념을 공공(公共)의 가치로 표준화하려는 시도는 신중해야 한다. 더욱이 불가역의 대못을 박겠다는 공언은 직립인간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공동체의 정의를 관장하는 법무부의 장이 ‘총장은 장관의 명을 받들면 된다’ 면서 검찰을 장악하려는 인사를 노골적으로 펼친 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하여 청와대 민정수석을 패싱하고, ‘우리 편’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이례적으로 일요일에 발표한 것은 또 다른 적폐로 등록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개혁이라는 분위기를 잡으며 공동체에 심대하게 영향을 미칠 법안들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수 있게 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개혁은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정교한 준비를 거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동참 속에서 도전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인간과 공동체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시대착오적 우리 편 인사와 편 가르기 입법으로는 국가의 대계를 달성할 수 없다. 다른 생각들이 시간을 가지고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게 결정돼 공존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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