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 조승우와 박신혜의 여정

2021. 3.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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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와 박신혜 두 사람은 찰나의 빛을 찾는 여정에 함께 오르기로 결심했다.
「 DARKNESS & LIGHT 」

조승우, 가장 보편의 사람

Q : 이름이 많이 보이는 요즘입니다. 방영을 앞둔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이하 〈시지프스〉) 소식만큼 유기견 입양도 화제였어요. 새 가족 곰자와 많이 친해졌나요

A : 공개 입양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뉴스가 많이 돼버렸어요. 저는 그냥 강아지를 입양했을 뿐이에요. 이런 보호소가 있고, 입양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알린 것으로 제 몫은 한 것 같아요.

Q : 한태술에 대해 ‘감정 기복이 크고 불안정한 모습에 연민과 애정이 생겼다’고 했어요. 본인에게도 그런 일면이 있기 때문일까요

A : 주위에 그런 사람 많지 않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늘 불안하고, 쫓기듯 살다가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에 얽매여 있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 끌렸을 수 있죠.

Q : 천재 공학자 CEO인 한태술과 다르게 실제로는 ‘컴맹’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A : 해외 ‘직구’도 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메일도 보내고, 책도 사서 보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손이 무딘 탓에 타자는 확실히 좀 느리지만요(웃음).

Q : 도전해 보지 않은 장르, 새로운 캐릭터로 살 수 있다는 점이 배역을 택하는 데 얼마나 매력적인 요소인지

A : 그보다 작품이 갖고 있는 전체적인 에너지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느낌이었죠. 대본만 봐도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투과한 2040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구현됐을까? 〈눈먼 자들의 도시〉 속 풍경 같을까? 그 안에서 무언가를 구하고 찾으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지 호기심이 생긴 거죠. 배우의 안테나는 항상 새로운 걸 갈망하는 면이 있잖아요? 거기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면 선택하는 거죠.

Q : 디스토피아적 상황에 처하면 실제로 조승우는 열심히 살아남으려 할까요

A : 스스로 살려는 의지와 목적이 있다면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그런 상황에 적응해서 뭐든 하지 않을까 싶어요.

더블 스포트라이트 프린트 롱 코트는 Fendi.

Q : 함께 출연하는 박신혜의 액션 연기를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A : 액션 장면이 많이 부각됐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박신혜란 배우가 갖고 있는 감성과 해석력이에요. 시공간을 오가는 작품이다 보니 설정과 감정선 배치를 연결하기 쉽지 않은데, 현장에서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항상 신혜 씨더라고요. 드라마에 나온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전문가를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라고 부르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신혜 씨가 그런 역할이었어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Q : 서해와 태술, 두 사람의 관계성을 표현하자면

A : 서로 믿음이 생겨나는 과정이 있어요. 그 감정이 어느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될지는 나중에 알 수 있겠지만 그 근간에 존재하는 감정은 연민입니다. 연민이 둘을 깊은 관계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Q :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믿는 일은 조승우에게 가능한가요

A :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깊이는 저도 알 수 없죠. 더 감출 게 없어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요. 그건 진짜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블랙 니트 베스트와 더블 스포트라이트 프린트의 롱 코트, 슬림 핏 팬츠는 모두 Fendi.

Q : 〈비밀의 숲〉 시즌 2는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으로’라는 말로 열고 닫습니다. 낙관과 비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A : 요즘 제가 진짜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긍정적인가 하면 부정적이고, 소심하면서도 겁 많고, 예민한 한편 무디기도 한데 다들 이런 면은 갖고 있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나약하기 때문에 인간 조승우의 인생에서 모자란 부분을 공연하고 연기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삶의 균형을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내가 어떻게 해, 몰라 난 못해’ 이러다가 또 조금씩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찾아내며 이겨내죠.

Q : 〈와니와 준하〉(2001), 〈후아유〉(2002)로 20년 전에 당시 청춘 스타로 떠올랐어요 스타요?

A : 아뇨. 그때 저는 충무로의 블루칩, 기대주 같은 거였어요. 〈춘향뎐〉의 ‘이도령’이었죠. 〈클래식〉 이전까지는 아무도 저를 몰랐어요.

Q : 당시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또 달랐어요.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당신을 새롭게 알게 되고, 예전 필모그래피를 되짚어가는 어린 팬도 많죠. 배우로서 기쁜 일일지

A : 그런 마음은 있어요. 어린 친구들이 내 과거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그래도 이 사람이 선택했던 작품들이 그렇게 촌스럽거나 너무 별로라서 못 봐주겠다는 생각은 덜 하지 않을까. 그런 작품을 내가 하지 않았나 싶은 거죠. 물론 지금 학생인 사람에게 나는 진짜 ‘아저씨’지만요. 첫사랑만 실패 안 했어도 스무 살짜리 애가 있을 수 있는 나이잖아요.

조승우가 입은 루스 핏의 글렌 체크 코트는 [Le]moho. 박신혜가 입은 화이트 블라우스와 레더 베스트는 모두 Lemaire.

Q : 방금 비유는 아저씨 같았습니다(웃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청춘이라는 시기, 실제 조승우는 어땠나요. 26세 때 연기한 〈타짜〉(2006)의 고니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데

A : 20대 때 주변 연출가, 감독들이 항상 제게 했던 이야기가 ‘애늙은이 같다’는 거였어요. 공연도 〈렌트〉나 〈헤드윅〉 같은 공연도 했지만 〈지킬 앤 하이드〉나 〈맨 오브 라만차〉같이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든 역할도 20대 때 했고요. 너무 청춘답게 못 보낸 것 같아 아쉽기도 한데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반려견 단풍이를 입양했을 때 제가 25세였거든요. 이후 여러 동물 친구들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돌이’가 됐고요. 어쩌면 그 애들이 제가 흥청망청 살지 않도록 지켜준 걸지도 몰라요.

Q :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보여준 뜨거운 멜로 연기는 그때라서 가능했다고 말한 적 있죠. 멜로 연기하는 조승우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요

A : 20대 초반에는 여과하지 않고 내 감정을 불태우며 덤빌 수 있었어요. 살면서 제일 힘든 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멜로가 정말 어려워요.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어렵죠.

Q : 무대와 TV,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고 흥행작 또한 많은데도 조승우는 대중적인 배우라는 인상은 아닙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A : 제가 친근하지 않다는 건 인정합니다. 무대를 병행하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한 편 끝내고 한참 얼굴을 안 비추다가, 또 11년 만에 tv 광고에 쓱 나왔다가 또 안 보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런 제 이미지가 좋아요. 조금씩 늘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거니까.

조승우가 입은 루스 핏 글렌 체크 코트는 [Le]moho. 베이지 치노 팬츠는 Navy by Beyondcloset. 박신혜가 입은 화이트 블라우스와 레더 베스트, 팬츠는 모두 Lemaire. 슈즈는 Rekken.

Q : 무기한 휴간을 발표했던 공연 전문 잡지 〈더 뮤지컬〉의 실질적인 마지막 호 표지에 등장했어요. 조승우라는 사람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A : 뮤지컬 배우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잡지였어요. 주연뿐 아니라 앙상블 배우까지 고르게 다뤄줬고, 제가 정말 꼬맹이였던 2000년에 창간해 함께 뮤지컬의 발전과 흥행을 지켜봤죠. 〈시지프스〉 촬영 막바지에 광고까지 겹쳐 정신없었는데 휴간한다고 하니 마음이 철렁해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종이 잡지를 좋아하기도 해요. 갓 인쇄된 책 냄새, 한 장 한 장 넘길 때 뽀드득거리는 소리 같은 것이요.

Q : 사회적 거리 두기의 기준이 공연계에 유독 엄격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맨 오브 라만차〉 무대에 오르는 기분은

A : 공연이 한 달 동안 세 번 연기됐거든요. 속은 타들어가는데 묵묵히 기다리고 있어요. 평소라면 나가서 뭐라도 했을 것 같은데, 예정된 출연작이 있다 보니 괜히 자기 밥그릇 챙긴다는 소리 들을까 봐요. 1200석짜리 좌석에 듬성듬성 마스크 쓰고 앉은 관객을 보면 눈물 나지 않을까요? 커튼콜 때 울 것 같아요.

Q : 조승우도 ‘최애’ 작품인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역할에 도전해 보지 못했다거나, 작품 오디션에 떨어진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많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동력이나 기쁨이 되는지

A : 왔다 갔다 합니다. 애매한 나이인가 싶어요. 하고 싶어서 가슴이 막 뛰다가도 그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현실적인 요소들이 있거든요. 도전하고 싶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간혹 20대 배우들이 할 만한 역할을 제안받기도 하는데 이미 지나온 나이를 회상하고 말투와 감정을 복기해야 한다는 게 제게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맨 오브 라만차〉 세르반테스의 대사는 50세가 되면 꼭 하고 싶어요. “나는 50년 동안 생을 직시해 왔소”라는 대사인데 지금까지는 생략하고 있거든요. 류정한 형에게 “형, 그 대사 좀 해봐요. 형은 50년 살았잖아” 하고 조르면 절대 안 해주더라고요(웃음).

박신혜가 입은 오버사이즈 핏 재킷과 스커트는 모두 Juun.J. 이너 톱은 Ych. 워커는 Dr. martens. 조승우가 입은 화이트 셔츠와 블랙 코트, 블랙 팬츠, 블랙 타이는 모두 Prada.

Q : 〈내부자들〉에서 우장훈은 안상구(이병헌)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냐고 묻습니다. 50세의 조승우는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요

A : 완벽하지도 않고, 특별한 것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하고 추구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어떤 선을 넘지 않고 묵묵히 잘해내고 있구나, 그런 이야기만 들어도 참 좋을 것 같아요.

Q : 〈시지프스〉 첫 회는 어떻게 볼 예정인가요

A : 공연을 마친 후 넷플릭스에 올라온 걸 보게 되지 않을까요. 아휴, 그런데 떨려서 못 보겠어요, 떨려요.

박신혜가 입은 블랙 블라우스는 Ych.

단순한 열정, 박신혜

Q : 엄청난 액션 연기로 돌아왔어요. 〈#살아있다〉에서의 액션은 맛보기에 불과했네요

A : 격하게 준비했어요. 〈시지프스〉 무술 팀 감독님이 남자들이 하듯 치고받는 액션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촬영 시작하기 두 달 전부터 몸을 만들고, 한 달 반 전부터 합을 짜고 외웠어요.

Q : 운동을 익힐 때 몸으로 부딪히는 스타일이라죠. 배우면 정석대로 해내고요. 이번 기회에 특기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겠어요

A : 잘 외운다는 칭찬은 많이 받았어요(웃음). 거의 대역 없이, 위험한 장면 외에는 모두 직접 소화했어요. 액션 신은 몸을 써서 화면을 장악할 수 있잖아요. 잘될 때면 엄청난 희열을 느꼈어요.

Q : 몸 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는 당신도 한계를 넘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A : 원 테이크로 찍는 액션 신에선 OK 사인이 날 때까지 연달아 몇 번씩 치고받아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진짜 힘들긴 했죠(웃음). 저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몸 쓰는 연기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몸을 잘 못 쓴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동글동글하고 아담하고, 집에만 있게 생겼다고.

Q : 실제론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굉장히 오랫동안 즐겨왔죠

A : 혼자 밖에서 하는 운동을 정말 좋아해요. 어린 시절 데뷔해 많은 작품을 거치는 동안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사람들이 제 본모습을 모르는 게 당연해요.

Q : 강서해는 훈련으로 단련된 전사이자,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태술을 지키는 구원자입니다. 서해를 연기하는 동안 내적으로도 강한 에너지를 품은 상태였나요

A : 저는 서해라는 인물을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다’고 정의했어요. 서해는 겉으로 강해 보여도 투박하고 본능적이고 순수한 친구예요. 벙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직 세상을 잘 모르죠. 본인이 완벽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오히려 색다른 느낌의 따뜻함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승우가 입은 그레이 트렌치코트는 Emporio Armani.

Q : 평소 좋아하던 강인한 캐릭터가 있다면

A :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올드 가드〉를 봤어요. 연기가 무척 중성적이고, 신체 조건도 완벽하게 어울리더라고요. 예전에는 전사라고 하면 안젤리나 졸리가 떠올랐는데 언젠가부터 샤를리즈 테론이 정말 멋져요. 스칼렛 요한슨의 액션 연기가 민첩하고 날카롭다면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은 투박하죠. 타격감과 무게감이 남달라요. 그런 느낌을 참고하기도 했어요.

Q : 극의 스케일이 블록버스터영화급으로 어마어마한데요. 촬영 중 거대한 시공간과 다차원적 서사에 자극받기도 했나요

A : 사방이 블루 스크린이라는 무한 세계에서 먼지를 마시며 연기했는데 역시 생소했어요(웃음). 할리우드 현장에서나 보던 촬영 방식을 접하니 재미있기도 했고요. 와이어를 타고 블루 스크린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 같은 건 다 어떻게 나올지, 촬영을 마친 지금도 궁금한 것투성이죠. 영화 〈콜〉에서도 블루 스크린 촬영을 해봤는데 그땐 제가 좀 ‘멘붕’이었어요. 차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아빠가 사라지는 장면이었는데, 차 밖의 카메라 무빙에 맞춰 두리번거리며 연기해야 했어요. 블루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차가 분해돼 가는 상태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정말 연기 디테일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 같아요.

Q :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며 극을 완성하는 일은 ‘케미’라 불릴 만큼 흥미로운 작업이죠. 조승우 배우는 어떤 타입의 동행자였나요

A : 같이 연기할 때면 대단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완벽하면서도 유연한 사람이라고 느꼈고요. 사실 조승우 선배가 뮤지컬 〈스위니 토드〉, 드라마 〈비밀의 숲 2〉를 끝내고 휴식기를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시지프스〉 촬영에 임했거든요. 그런데도 대사 NG가 거의 없어요.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촬영 내내 어떤 핑계도 댈 수 없었죠. 조승우 선배는 저에게도 ‘배우’예요.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서 연기했던 배우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게 꿈같기도 했어요.

Q : 콜〉과 〈#살아있다〉〈시지프스〉로 이어지는 최근 필모그래피는 박신혜의 또 다른 결을 보여줘요. 최근 작품 선택에 있어 이전과 달리 생각하거나 보게 된 것들이 있나요

A : 20대 땐 할 수 있는 장르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30대가 되니 자연스럽게 폭이 넓어져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게 됐어요. 액션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인터뷰한 적 있는데 이렇게 〈시지프스〉를 만난 것처럼 불현듯 기회들이 스르르 찾아왔죠. 그 무렵 제게도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요. 20대엔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인생 경험이 부족하다고 여겼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이다음엔 30대가 된 한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나 가족 드라마처럼 편안하고 솔직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더블 스포트라이트 프린트의 롱 코트는 Fendi.

Q : 〈#살아있다〉 때 했던 말이 있어요. “지금껏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태도로 당차게 현실을 극복하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유빈이는 그 반대”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힘을 빼고 연기한 유빈 역을 경험하며 달라진 관점이 있을까요

A : 자신에게 놓인 환경과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역을 표현해 본 건 처음이었어요. 유빈에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한 발자국 나아가겠다는 마인드가 없었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죠. 유빈을 계기로 캐릭터보다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 메시지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됐어요. 요즘 저는 작품 메시지를 먼저 보는 것 같아요.

Q : 〈미남이시네요〉 등을 계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어 여자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아시아 투어’를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의 당신은 대중과의 거리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같아요. SNS에 공유하는 본인의 아주 사적이고 편안한 순간들처럼요

A : 〈미남이시네요〉가 아이돌 밴드에 대한 드라마이다 보니 당시 팬미팅을 하면 열기가 대단해서 제가 아이돌이 아닌데도 아이돌이 된 것 같았어요(웃음). 하지만 그때도 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편안한 거리감은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이제는 SNS 등을 통해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않고도 더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죠. 전 여전히 팬들과 만나는 시간으로부터 에너지를 많이 얻어요. 사생활도 제가 정한 선에서는 얼마든지 공유하는 편이에요.

Q : 지난 인터뷰를 보면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를 간혹 꺼내더군요. 무엇을 보완하거나, 더 잘했으면 했나요

A : 제가 이제 서른인데 18년을 일했어요. 그동안 이 분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얼굴이 등장했고요. 제가 가지지 못한 얼굴과 느낌을 지닌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죠.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저를 대중에게 보이며 살아왔기 때문에 새로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별수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같이 나이 들어가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수밖에요. 가진 에너지를 다르게 바꾸기 위해 무리하지 않으려고요.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사람, 그게 진짜 나니까.

Q : 오랜 고민 끝에 단순한 결론을 냈네요

A : 포기가 빠른 편이에요. 안 되면 안 되나 보다 인정해요. 잡고 늘어지면 힘든 건 결국 나 자신이더라고요.

블라우스와 브라톱, 아우터웨어, 쇼츠, 사이하이 부츠, 헤어 액세서리는 모두 Sacai.

Q : 많은 동료가 당신의 성격을 칭찬해요. 나영석 PD는 〈삼시세끼〉 시절 ‘가장 강렬했던 게스트’로 당신을 꼽으며 ‘신인류’라 일컫기도 했어요. 행동이 거침없고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도 예의와 정도를 기가 막히게 지킨다고요

A : 노력한 거예요.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데, 사람들과 어색하고 불편한 걸 정말 싫어해요. 그래서 내가 불편할 것 같은 건 상대방에게도 안 하고 내가 편안하게 느낀 선은 지키려 해요. 그런데 제가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친한 마당발은 아니에요. 이런 이야기 언젠가 꼭 한 번 하고 싶었어요(웃음). 저는 작품 마치고 난 뒤 동료들에게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하는 성격도 못 돼요. 일할 때는 편하고 즐겁게, 끝난 뒤엔 ‘쿨’하게. 그런 게 제게 잘 맞아요. 연기를 마치고 개인생활로 돌아오면 나 혼자 하는 걸 좋아하죠.

Q : 배우로 사는 삶이 근사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A : 팬미팅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고 있어요. 사회에는 아직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아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보내요. 그런데 나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에 팬들이 힘을 보태주는 순간이 있어요. 제 인생에 일어난 가장 근사한 일인 것 같아요. 연기 활동은 수많은 희열과 후회로 이어졌지만, 나누는 일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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