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없는 해설 음악회.. 13년 만에 '원조'가 돌아왔다

김호정 2021. 2.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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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 'KT와 함께하는 마음을 담은 클래식'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 첫 공연 마쳐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KT와 함께하는 마음을 담은 음악회'에서 해설하고 있는 김용배씨. [사진 예술의전당]

“아프리카 북단에 모로코라는 나라가 있죠.”
26일 오전 11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케스트라가 그리그 ‘페르 귄트’ 모음곡 중 ‘아침 기분’을 연주한 후 해설자인 김용배씨가 나와 처음 한 말이다. 그는 인사말 없이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다. 희곡 ‘페르 귄트’의 주인공인 페르 귄트가 모로코에서 맞이한 아침을 그린 음악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후 김씨는 무대 한 켠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아서도 음악을 설명했다. “제가 아침에 이런 멜로디를 작곡했다면 어떨까요.”건반의 ‘도’부터 올라가‘시’까지 차례로 눌렀다. 멜로디 같지 않은 멜로디에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그런데 작곡가들은 이 음계를 가지고 이런 멜로디를 만들어내죠”라며 거꾸로 ‘도’부터 내려오면서 이번에는 리듬을 바꿨다. 베르디 ‘리골레토’ 중 아리아 ‘그리운 그대 이름’의 멜로디가 됐다. 그는 같은 음계를 또 다른 리듬으로 연주했다. 이번에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3악장 멜로디였다. 두 곡은 이날 공연에서 연이어 연주된 작품들이었다. 김씨는 음악에서 멜로디의 구성 방법과 활용을 이렇게 설명해냈다.

‘해설 음악회 원조’가 돌아왔다. 이날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전 음악회의 새로운 시리즈 첫 무대였다. 이름은 ‘KT와 함께하는 마음을 담은 클래식(이하 마음 클래식)’. 매달 네번째 금요일 오전 11시에 김용배씨의 해설로 열린다.

피아니스트인 김씨는 예술의전당의 원조 '11시 맨'이었다. 2004년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부임한 후 4년 3개월동안 예술의전당의 오전 음악회인 ‘11시 음악회’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오전 공연이 단발성으로 열린 적은 있어도 시리즈로 계속되는 일은 드물던 때였다. 김씨는 2008년 12월을 마지막으로 ‘11시 음악회’를 떠났고, 이 음악회는 방송인 유정아, 피아니스트 조재혁을 거쳐 비올리스트 김상진이 진행을 맡아 지금도 매달 둘째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11시 음악회를 만든 김씨가 13년만에 예술의전당 오전 공연으로 돌아온 무대가 '마음 클래식'이다.

해설음악회


이날 공연에서도 13년 전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그는 2004년 당시 낯설었던 낮 공연, 또 해설 음악회를 진행하며 세가지 원칙을 지켰다. ‘인사말’‘대본’‘외국 연주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김용배 ‘11시 콘서트’에서 해설은 음악에 대한 본론으로 직행했고, 짜여진대로 말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내용을 전달했으며, 한국 연주자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최대한 많이 제공했다.

‘마음 클래식’도 그 원칙을 이어받는다. 김씨는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관객이 음악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가야한다”면서도 “교육적이지만 교육받는 느낌이 없도록 하는, 그 경계를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분위기를 띄우는 인사말 대신 음악에 대한 설명으로 공연 시간을 채우는 이유다. 그는 또 “낮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끝나고 저녁 공연이 보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26일도 그는 베르디 ‘리골레토’여주인공 질다의 만토바 공작에 대한 사랑을 설명했지만 결론이 어떻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김씨는 “그래야 관객들이 ‘리골레토’ 전막 공연을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김씨가 2004년부터 진행했던 ‘11시 콘서트’는 낮 공연의 전형이 됐다. 무엇보다 흥행 성적이 좋았다. 공연 51번 중 첫 공연을 제외한 50번이 매진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전국의 거의 모든 공연장에 낮 공연이 있다. 그리고 예술의전당과 다른 형식으로 독창적 공연을 만들기도 한다. 굉장한 선순환”이라고 했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서 공간이 낮에 놀고 있는 게 아쉬워 기획했던 건데 이런 선순환을 보게 돼 기쁘다.”

그는 예술의전당 사장 퇴임 후 서울 목동의 KT체임버홀에서 12년동안 해설 음악회를 진행했다. 이 음악회가 지난해 막을 내리면서 장소를 예술의전당으로 바꿨고 목동에서 호흡을 맞췄던 KT심포니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이택주가 ‘마음 클래식’에 함께 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의전당 낮 공연은 ‘목금토’ 체계를 갖췄다. 매월 둘째 목요일 ‘11시 음악회’, 넷째 금요일 ‘마음 클래식’, 셋째 토요일 ‘토요 콘서트’다.

26일 음악회는 차이콥스키 발레 음악 ‘호두까기 인형’ 중 2인무인 ‘파드되’ 연주로 끝났다. 이 곡 역시 ‘도’음에서 차례로 하행하는 음계를 사용한 멜로디였다. 김씨는 “작고 단순한 재료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는 점, 시작이 간단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음악이 몇년도에 작곡됐고, 형식은 어떻다는 식의 설명은 없었다. 그는 “앞으로도 ‘마음 클래식’은 이처럼 음악을 관통하는 메시지 전달을 하려 한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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