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전세계 알린 벽안의 기자..가옥 '딜쿠샤'와 돌아왔다

김현예 2021. 2.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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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2살의 청년은 아버지를 따라 배에 올랐다. 광산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조선. 1897년 서울에 살기 시작한 앨버트 테일러와 조선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4살이나 어린 아내 메리 테일러를 만난 건 그로부터 20년 뒤의 일이었다. 신혼살림은 서울 충정로7길 부근의 '작은 회색 집'에서 시작했다.


3·1운동과 앨버트 테일러

앨버트 테일러.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세계에 알렸다. 사진 서울시

#1919년 2월 28일. 미국 AP통신 임시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앨버트는 고종의 국장(國葬) 취재를 마치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가 아들을 출산해 병원을 들른 그에 눈에 병원 침대 속 감춰진 종이뭉치가 들어왔다. 한국어를 할 줄 알았던 그는 단박에 '독립선언서'를 알아봤다. 황급히 기사를 쓴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동생에게 기사와 독립선언서를 전달했고, 같은 해 3월 13일 뉴욕타임스에 3·1운동이 보도된다.

벽안의 이방인이 해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해 4월 15일 당시 수원(지금의 화성시) 제암리에서 만세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주민을 집단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사건 다음 날 현장을 방문해 불타는 마을을 촬영하고, 생존 주민을 취재해 일본의 탄압을 세계에 알렸다.


3·1운동을 세계로 알린 사나이…'딜쿠샤'를 짓다

앨버트 테일러 가옥인 '딜쿠샤'의 옛모습. 사진 서울시

서울에 살던 앨버트는 한양 도성 성곽을 따라 산책하다 '은행나무골'로 불리던 곳에 땅을 사들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란 이름도 붙였다. 1924년 붉은 벽돌집이 완공됐지만 2년 뒤 낙뢰로 불에 탔다. 앨버트는 1930년 같은 자리에 다시 집을 지었다.

일제의 압박은 그에게도 이어졌다. 1941년 앨버트 가족은 일제에 의해 연금됐고, 이듬해 강제 추방됐다.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6년 뒤 캘리포니아에서 숨을 거뒀다. 아내 메리는 생전 한국을 그리워하던 앨버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유해와 함께 그해 한국을 방문했다. 앨버트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장됐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딜쿠샤'

오는 3월 1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딜쿠샤' 전시관. 온라인 사전예약으로만 관람이 가능하다. 사진 서울시

방치되다 국가 소유가 된 딜쿠샤는 이후 집 없는 서민들의 공동주택으로 쓰이기도 했다. 잊혀지던 딜쿠샤를 찾아낸 것은 2005년의 일이었다. 앨버트의 아들이 서일대 김익상 교수에게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1년 뒤인 2006년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66년 만에 서울을 찾아 딜쿠샤를 돌아봤다.

2015년 브루스 테일러마저 사망하자 이듬해 서울시는 원형복원에 들어갔다.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딜쿠샤가 등록되면서 복원속도는 빨라졌다.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딜쿠샤는 지하 1층~지상 2층의 건물로,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복원 공사를 마쳤다. 서울시는 이번 3·1절을 기해 '딜쿠샤'를 개방하기로 했다. 앨버트가 강제 추방된 지 약 80년 만이다.


딜쿠샤 전시관 돌아볼까

앨버트 부부가 사용하던 당시 유물들. 앨버트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는 당시 사용하던 유물을 기증했다. 사진 서울시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의 삶의 흔적이 담긴 1920년대를 복원했다. 2층 전시실엔 당시 언론활동을 비롯해 딜쿠샤의 건축 복원 과정을 볼 수 있게 해놨다. 3월 1일을 기해 공개되는 딜쿠샤 전시관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입장은 무료지만 사전 예약을 해야만 둘러볼 수 있다. 하루 4차례 관람이 진행되며, 1회당 가능 인원은 20명이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을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이자 유물 기증자인 제니퍼 테일러는 “이번 개관으로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서대문형무소, 경교장 등 딜쿠샤 전시관 인근 항일운동 관련 클러스터를 통해 독립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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