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나혼산' 나들이, 김광규 자체가 예능이다
[이준목 기자]
▲ 26일 방송된 MBC 예능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
ⓒ MBC |
혼자 보내는 평범한 일상의 모든 순간조차도 예능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 배우 김광규 말고 또 있을까? 지난 26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는 오랜만에 '무지개의 조상' 김광규가 출연해 유쾌한 웃음을 안겼다.
이날 방송분에서 김광규는 특별한 연출이나 다른 게스트 없이 나홀로 쇼핑을 즐기고 일반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깨알같은 재미를 이끌어냈다. 어느새 무지개 모임의 최연장자가 된 김광규는 초면인 막내 화사와 엄청난 나이차를 확인하고 잠시 당황하지만 곧바로 "우리 다 친구하기로 했잖아"라고 쿨하게 받아넘긴다. 조카나 자식뻘인 후배 연예인들과 초면에 '야자타임'을 하자는 짓궂은 장난도 화기애애한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여유는 바로 김광규이기에 가능했다.
이어진 방송에서는 김광규의 일상이 공개됐다. 사극 드라마 준비를 위하여 인사동을 찾은 그는 <나혼자산다> 초창기인 2회에 방문하여 달마도를 구입했던 액자 가게를 오랜만에 다시 들렀다. 김광규는 "그때 달마도를 구입하고 가위가 눌렸다"는 반전 고백으로 멤버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박나래가 "달마도는 원래 액운을 막아준다고 하지 않냐"고 질문하자, 그는 "내가 (머리가) 달마라서 그런가보다"라는 자폭 개그로 화답하여 큰 웃음을 줬다.
▲ 26일 방송된 MBC 예능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
ⓒ MBC |
민망해진 김광규는 "집에 먹이 있어서"라고 변명했다. 사장님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8만 원대의 순송연을 추천했으나 김광규는 향기만 한 번 맡아보고는 "그냥 만 원짜리로 하겠다"고 단호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사장님의 끈질긴 유혹은 계속됐다. 원래 붓만 사러왔던 김광규였지만 하나둘 구입 품목이 늘어나 결국 서예 용품만 무려 30만 원어치를 구매하고 말았다.
김광규는 스튜디오에서 "7~8년 만에 가봤는데 가게에 손님도 많이 없고 '임대(를 한다는 안내문)'도 여기 저기 붙어있고 해서, 사실은 (사장님을 위해 )좀 팔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숨은 속내를 밝혔다. 방송이 나간 이후 지나친 호객행위로 비판받을 수도 있었던 사장님을 향한 작은 배려로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필방을 나온 김광규는 꽃집에 들러 그림의 모델이 될 난을 구입했다. 이후에는 액자가게를 재방문하여 인테리어를 위한 해바라기 그림도 구입했다. 액자가게 사장님은 김광규가 첫 개시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놀라는 김광규에게 사장님은 "개시도 못하고 들어갈 때가 많다"며 코로나19 이후 어려워진 상인들의 상황을 설명했고, 남 일같지 않았던 김광규는 "많이 파셔야할 텐데"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켜보던 <나혼산> 멤버들이 "인사동의 천사가 됐다"며 칭찬하자 김광규는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광규 특유의 허당미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았다.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한 카페를 찾은 김광규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집에서 맨날 혼밥만 하지말고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핫플레이스를 한 번씩 가보라는 추천을 받았다"며 방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잠시 후 김광규는 방금 전 그릇에 물티슈가 담겨 있었던 것을 잊고 직원에게 그릇의 용도를 질문하는 허당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로도 김광규는 수저로 저어서 먹어야하는 자몽에이드를 심심한 맹물처럼 들이켜고 '아보카도'를 '아카보도'로 발음하는 등 핫플레이스 적응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켜보던 장도연은 "과거에서 여행 온 사람같다"라며 웃음을 참지 못했고 박나래는 한술 더 떠 "별에서 온 그대 김수현같다"고 표현했다. 김광규는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으며 "고맙다. 수현이랑 통화 한 번 해야겠다"라며 능청스럽게 화답했다.
▲ 26일 방송된 MBC 예능 <나혼자 산다>의 한 장면 |
ⓒ MBC |
한동안 진지하게 그림 연습에 집중하던 김광규는 허기를 느끼고 홍게를 넣어 끓인 라면 먹방을 선보이는 것으로 마무리를 장식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김광규의 평범한 하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 없이 소소한 웃음을 준 시간이었다.
김광규는 2013년 <나 혼자 산다>의 첫 고정 편성 때부터 정규멤버로 활약하며 이 프로그램이 인기 관찰예능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원년 공신 중 한 명이다. 한때 김광규는 솔로탈출을 목표로 약 3년 만에 <나 혼자 산다>의 하차를 선언했으나 이후로도 여전히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싱글 중년 남녀 연예인들만이 출연하는 <불타는 청춘>의 실질적 고정멤버로도 장기간 활약중이다.
김광규는 지난해 10월 추석특집을 통하여 <나 혼자 산다>에 오랜만에 깜짝 등장하며 화제가 됐다. 이후로도 프로그램에 가끔씩 출연하여 실질적으로 복귀한 멤버 대접을 받고 있다. 초창기 멤버 중에서 <나 혼자 산다>에 꾸준히 재등장한 것은 김광규 뿐이다. 김광규는 추석특집 출연 당시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한 또다른 이유가 절친 이서진과 함께 출연했던 <삼시세끼>와 방영 시간대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속사정이 폭로되며 '프로그램에 칼 꽂고 나갔다'는 놀림을 받아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나 혼자 산다> 제작진과 팬들에게 여전히 김광규는 시청률 치트키와 같은 소중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중년 싱글남으로서의 일상이 주는 자연스러운 리얼리티와 공감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어필하는 김광규 특유의 사람 냄새나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유명인들의 싱글라이프를 주제로 다룬 관찰예능은 젊은 유명인들의 개인 홍보나 인맥 과시에 치우치며 부자연스럽게 변질되었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그에 비하며 김광규는 소박한 자신의 싱글라이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항상 풍성한 에피소드를 만들어왔다.
그가 예능에 첫 출연하던 2013년이나 2021년의 현재나 김광규의 일상과 캐릭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나혼자산다>에서 세대차이가 한참 나는 동생들의 장난을 넉넉하게 품어주는가하면, <불타는 청춘>에서는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에게 '러브라인의 디딤돌' 취급을 받는다고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살신성인하며 상대가 가장 먼저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존재다. 가장 평범해보이지만 어쩌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희소성이야말로, 김광규가 <나혼산>과 <불청>을 넘나들며 어디서나 호감을 얻는 인물로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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