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딜쿠샤' 정초석과 은행나무에 얽힌 사연

김재중 2021. 2.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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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 127편 1절 말씀 새긴 이유..독실한 기독교인 앨버트 테일러, 한국인 반대 속 딜쿠샤 완공 감사
복원된 딜쿠샤 전경


딜쿠샤 정초석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3.1운동을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W. 테일러가 1923년 서울에 짓고 살았던 붉은 벽돌집 ‘딜쿠샤’ 정초석에는 시편 127편 1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딜쿠샤를 세울때 테일러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항의와 무당의 저주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은행나무와 샘골이 있던 땅을 당시 한국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었던 앨버트 W. 테일러는 그런 역경을 딛고 딜쿠샤를 잘 완공한 것이 하나님의 도움 덕분이라는 믿음으로 딜쿠샤의 정초석에 시편 127편 1절을 새겨 넣었던 것이다.

딜쿠샤 입구 권율 장군 집터에 있는 은행나무.

실제로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딜쿠샤 입구의 권율 장군 집터에는 지금도 수령이 420년이나 된 둘레 6.8m, 높이 24m의 대형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남아 있다. 권율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로 행주대첩을 이끌었다.

딜쿠샤 입구 은행나무 옛 모습.

1919년 2월 28일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 T. 테일러가 세브란스병원에 태어났다. 이때 앨버트 W. 테일러는 AP 통신으로부터 고종의 장례식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들과 아내를 보러 병원에 온 앨버트는 우연히 침대 속에 감춰져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한국어에 능통했던 앨버트는 이것이 기미 독립선언서라는 것을 알아챘고, 즉시 관련 기사를 작성해 독립선언서와 함께 동생 윌리엄에게 전달했다. 윌리엄은 독립선언서와 기사를 구두 뒷축에 숨겨 도쿄로 건너간 뒤 미국에 보내는데 성공했고 뉴욕타임즈 1919년 3월 13일자에 보도됐다. 이처럼 3·1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주역 앨버트 W.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가 26일 역사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동아일보에 실린 앨버트 테일러의 독립운동가 재판 보도 관련 기사.

서울시는 앨버트 W. 테일러가 서울에 짓고 살았던 가옥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 독립의 숨결을 기억하는 역사 전시관으로 조성해 3.1절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1942년 앨버트 W. 테일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며 방치된 지 약 80년 만이다.

지하1층~지상2층의 붉은 벽돌집 ‘딜쿠샤’는 2017년 8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연극배우인 테일러의 아내 메리 L. 테일러가 붙인 이름이다.

딜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는 1896년(고종 33) 조선에 들어와 평안도 운산 금광 감독관을 지내고 충청도의 직산 금광을 직접 운영한 광산 사업가였다. 또한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보도해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의해 테일러 부부가 추방된 후 ‘딜쿠샤’는 장기간 방치된 채 훼손됐다.

서울시는 딜쿠샤의 원형 복원을 위해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 2020년 12월 완료했다. ‘딜쿠샤 전시관’은 총면적 623.78㎡ 규모로 조성됐다.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당시 가구와 벽난로 등을 그대로 재현하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한국 생활상과 앨버트 테일러의 언론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의 전시실로 구성했다. 1920년 7월 13일 동아일보 ‘법정잡관’ 코너는 앨버트가 손병희, 최린, 길선주 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판을 취재해 세계에 알렸다고 소개하고 있다.

‘딜쿠샤’는 1920~30년대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벽돌을 세워서 쌓는 프랑스식 ‘공동벽 쌓기(rat-trap bond)’라는 독특한 조적방식이 적용되어 한국 근대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공동벽 쌓기’란 벽돌을 세워서 쌓아 벽돌의 넓은 면과 마구리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하는 조적 방식으로, 단열·보온·방습·방음에 유용하며 구조적 안정성에서도 효과적이다.

3월 1일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딜쿠샤 전시관’은 매주 화~일요일 09:00~18:00 운영된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한 해설 관람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일 4회 관람이 진행되며, 1회당 관람가능 인원은 20명이다. 사전 관람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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