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웃의 '백신 양보' 메일..美여성 살린 '텍사스 기적'
지난 1월, 텍사스 오스틴에 사는 에밀리 존슨(68)은 악몽 같은 한 달을 보냈다. 20년 전부터 앓고 있던 심장병이 악화하면서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수술 전 반드시 백신을 맞아야 하는데, 접종 일정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극심한 백신 물량 부족 사태를 겪고 있었다. 백신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접종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던 때다. 고령자인 존슨도 우선 접종자였지만 백신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주일간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존슨은 다급한 마음에 지역 네트워크인 '넥스트 도어'에 도움을 요청했다. “심장 수술을 앞두고 급하게 코로나19 백신을 맞아야 합니다. 도와주세요.”
존슨의 안타까운 사연에 지역 주민들의 위로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백신을 내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수술은 미뤄졌다.
백신을 찾아 헤매던 그때 낯선 사람으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을 인근 지역 주민이라고 소개한 크리스티 루이스(58)는 메일에서 “오늘 아침 10시 45분, 백신을 맞을 예정이다. 그런데 나보다도 당신에게 백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백신을 양보할 테니 연락 달라”고 적었다.
사실 루이스는 자가면역질환자로 누구보다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하는 최우선순위자였다. 심지어 사지 마비로 누워있는 아들도 돌보고 있었다. 루이스도 오랜 기다림 끝에 백신을 맞게 됐는데, 그 기회를 선뜻 존슨에게 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루이스는 존슨에게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걸 이해한다”면서 “당신은 앞으로 긴 고통과 싸워야 한다. 그 시작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 센터가 형평성을 이유로 존슨의 접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존슨보다도 루이스가 더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의료진을 찾아가 존슨의 사정을 설명하며 예약자 변경을 호소했다.
결국 의료진도 물러섰다. 접종 센터는 예외 규정을 적용해 루이스가 맞을 백신을 존슨에게 접종했다. 존슨은 지난 5일 2차 백신까지 맞으면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루이스와 존슨의 사연은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루이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자(母子)도 이웃의 도움으로 힘든 순간을 극복해왔다”면서 “받은 만큼 베풀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다.
안타깝게도 루이스는 아직 백신을 맞지 못했다. 지난 16일 접종 예정이었지만 텍사스를 덮친 겨울 폭풍으로 백신 공급이 또 지연되면서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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