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몸국 vs 설렁탕

2021. 2. 2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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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례 말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잔치가 시작되면 돼지부터 잡는다.

돼지고기 국물에 몸을 넣고 배추, 고추, 파, 마늘 등 양념에 간을 하면 돼지 국물의 느끼한 맛을 잡으며 시원한 몸국이 된다.

제주에서는 돔베고기와 몸국이 잔치의 주메뉴다.

몸국이 돼지고기 국물이면 설렁탕은 쇠고기 국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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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호 전 언론인


여러 차례 말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잔치가 시작되면 돼지부터 잡는다. 가마솥에 고기를 삶고 이를 썰어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고기를 써는 일, 즉 칼을 잡은 사람을 도감이라고 한다. 잔칫집 주방에서 최고 권력자다. 도감은 하객 한 사람에게 한 접시씩 1인분을 썰어준다. 이때 접시가 아니라 도마에 썰어줘 돔베고기라 한다. 돔베는 도마의 제주어다. 도감에 잘 보여야 맛있는 부위를 썰어주고 어쩌면 한 접시 더 얻어먹을 수 있다. 칼잡이 맘이다.

잔치 규모에 따라 돼지를 여러 마리 잡기 때문에 솥이 크다. 고깃국물이 많이 생긴다. 그 국물에는 돼지머리, 내장, 순대도 삶는다. 그사이 진한 돼지고기 국물이 우러난다. 그 국물에 모자반을 넣는다. 모자반은 제주어로 몸이다. 몸은 이른 봄에 채취해 바닷바람에 말려 두고두고 국을 끓이거나 무침을 하는 제주의 주요 식재료다. 돼지고기 국물에 몸을 넣고 배추, 고추, 파, 마늘 등 양념에 간을 하면 돼지 국물의 느끼한 맛을 잡으며 시원한 몸국이 된다.

몸국 국물에는 돔베고기를 썰다 부서진 조각이 들어가고 뼈에 붙어있던 살점, 어쩌다 터진 순대 내용물이 섞이게 된다. 이것들이 몸, 배추와 함께 몸국의 건더기가 된다. 메밀가루를 풀어 국물이 걸쭉해진다. 몸국은 육지에서 잔치국수에 해당한다. 제주에서는 돔베고기와 몸국이 잔치의 주메뉴다. 잔칫집 돼지고기 솥은 잔치 하루 전부터 끓기 시작한다. 잔치가 끝나기까지 4~5일 동안 끓는다. 잔치 뒤끝이 될수록 국물은 진국이 된다.

설렁탕은 소의 머리, 뼈, 내장 등을 고아 만든 국물이다. 몸국이 돼지고기 국물이면 설렁탕은 쇠고기 국물이다. 설렁탕은 조선 시대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임금이 선농단에서 농사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소를 잡아 참석자들과 끓여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설렁탕의 맛도 국물이 좌우한다.

몸국과 설렁탕은 가정에서 해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돼지나 소의 머리, 고기, 뼈, 내장 등 많은 고기를 넣을 솥이 없고 국물이 우러나도록 오랜 시간 끓일 수 없다. 그렇게 끓인들 보관할 수 없었고 보관한들 같은 돼짓국, 쇠고깃국만 며칠씩 물리도록 먹을 수 없다. 몸국과 설렁탕은 모두 행사 음식으로나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진 지 모른다. 집에서 만들 수 없으니 지금은 다량으로 만드는 음식점에서나 사 먹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 요리하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몸국과 설렁탕을 잘하는 맛집을 알아두는 게 현명하다.

5년 전 제주로 이주하고 아직 돼짓국이 영 어색한 나는 설렁탕이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관공서 주변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제주시청 주변에서 2대가 이어온 집을 찾았다. 제주 시내 갈 때마다 자주 갔는데 지금은 문을 닫았다. 쇠고깃국은 제주에서 열세다.

제주 사는 조카가 족탕을 먹으러 가잔다. 물론 돼지족탕이다. 양념 넣고 졸인 족발도 아닌 족국이다.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그 뒤 몸국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제주도 돼짓국에 길들여지고 있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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