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은 안 주고 돈만.." 콘텐츠들 넷플릭스로 몰리는 까닭

하성태 2021. 2.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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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연간 5500억 투자 예고한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

[하성태 기자]

 (왼쪽부터) 정병길 감독, 박현진 감독, 윤신애 대표, 이정재, 황동혁 감독, 박해수, 이준, 정우성 대표, 배두나, 박은교 작가, 연상호 감독, 박정민, 양익준, 김현주, 유아인, 원진아, 김은희 작가, 김성훈 감독.
ⓒ 넷플릭스
 
"인터넷 동영상 업계의 공룡이 온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 점쳐지던 2015년 10월, 영화진흥위원회 '코비즈' 뉴스에 이런 제목의 기획 글을 기고했다. 당시만 해도 넷플릭스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일본 서비스를 갓 시작한 상태였고, 지금처럼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당시 "빅 데이터를 활용하고, 자체 킬러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며, 빠른 전송 속도를 자랑하는 넷플릭스는 한국 방송 플랫폼과 콘텐츠 환경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인가"란 자문에 "그렇다"라고 답했더랬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넷플릭스의 진출 이후 방송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지형 변화로 여러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넷플릭스가 과연 견고했던 국내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시장을 OTT로 대체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미국 시장은 넷플릭스의 점유율 상승과 함께 인터넷과 모바일을 위시한 OTT 서비스들이 기존 방송사들을 위협한지 오래다."

그때도 유튜브가 대세였으나 지금처럼 압도적인 수치는 아니었다. 국내 VOD나 OTT 시장은 걸음마를 뗐으나 지상파나 케이블 콘텐츠를 '다시보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사업자들 역시 큰 매력을 못 느끼던 상황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주력했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플랫폼과 콘텐츠란 양 날개국내 상황을 보면, 당시조차 젊은 소비층은 물론 중년층까지 모바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킬러 콘텐츠가 플랫폼의 이동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tvN이나 JTBC의 예능과 드라마가 입증해내고 있었다. 소비자가 움직이고 있었으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OTT 사업자들은 반응 속도가 느렸다.

반면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당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와 수준 높은 콘텐츠 소비 방식을 지닌 한국은 단연 독보적인 시장"이라며 한국 시장 진출을 가시화하면서 2016년까지 최대 전 세계 200개 국가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얼마 후인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깜짝'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진출 초반, 업계 분위기는 냉담했다. 한국 대기업과 밀착한 언론들은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넷플릭스는 하나하나 국내 콘텐츠로 일종의 실험을 거듭했고, 한국 진출 3년 만인 2019년 1월 <킹덤> 시즌1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코로나19 '집콕' 시대를 지나 2021년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2억 명을 넘겼고, 국내 가입자도 무려 380만을 돌파했다. 월간 실사용자 수는 900만을 넘겼다는 조사 결과(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조사)도 나왔다. 전 세계를 점령한 공룡이 빠른 속도로 국내 업계를 집어 삼킨 상황이 됐다.

의견은 안 주고 돈만 주는

"우리 모두가 <킹덤>의 좀비에 쫓겼고,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와 함께 춤추며, <인간수업>에서 10대들이 처한 현실을 마주하고, <사랑의 불시착>을 시청하며 사랑스러운 커플의 탄생을 지켜봤다. <스위트홈>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들과 맞서 싸웠고, <승리호>와 함께 우주를 지켜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바로 한국이 있었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자 겸 콘텐츠 최고 책임자가 지난 25일 'See What's Next Korea 2021' 행사에서 전한 메시지다. 그러고 보니 그간 꽤나 굵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한국 서비스 5주년을 기념한 이날 행사에서 데드 사란도스는 "수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의 훌륭한 이야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목도했다"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약 77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80편 가량의 한국 콘텐츠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에 소개했다.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최근 약 80개 국가에서 일일 콘텐츠 순위 1위를 기록한 영화 <승리호>의 공개로 확인된 바 있다. 이날 넷플릭스는 1년간 5500억 원(약 5억 달러)을 투자, 13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인다고 발표하며 그 라인업을 소개했다. 라인업 자체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 면면을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해보자.

우선, 스타들의 참여. <킹덤> 시리즈 김은희 작가부터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까지, 그리고 제작자로 나선 배우 정우성을 필두로 배우, 감독, 작가 할 것 없이 일급 창작자들이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나서고 있다.

"의견은 안 주고 돈만 주신다."(김은희 작가)

창작자 입장에서 넷플릭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담겨 있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간섭을 안 해도 되나 했다"던 김은희 작가의 웃음 끼 가득한 소감은 작금의 넷플릭스가 어떤 마인드인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한 마디일 것이다.

드라마 <인간수업>이나 <스위트홈> 모두 스타 마케팅과 관계없이 소재와 완성도로 승부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실 해외의 경우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스타를 내세우지 않고 소재 만으로 승부한 콘텐츠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의 예처럼 넷플릭스의 진입 장벽을 낮춰준 것이 유명 영화인이란 사실을 간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넷플릭스는 진입 장벽 따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품 하나로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과 동시에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우로서 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는 것"(<지옥>의 유아인)이라거나 "한국 배우로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 소개된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막중한 만큼, 한층 높은 완성도를 갖추려는 다짐을 한다"(<고요의 바다>의 배두나)는 배우들의 소감이 이제는 특별하지 않게 됐다.

콘텐츠의 여러 다양성 

그리고 장르의 다양성. 한국형 우주 SF로 전 세계인의 눈도장을 찍은 <승리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아니었다. <옥자> 이후 <사냥의 시간>을 비롯해 <콜>, <차인표>, <승리호>까지 모두 넷플릭스란 플랫폼에서 최초 공개된 작품일 뿐이다. 박정훈 감독의 <사냥의 밤>도 최근 넷플릭스행을 확정했다. 

이제는 다르다. <악녀> 정병길 감독의 액션영화 <카터>와 <좋아해요> 박현진 감독의 로맨스 드라마 <모럴센스>(가제)는 넷플릭스가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는 작품이다. <킹덤> 시리즈의 인기를 잇는 전지현 주연의 <킹덤: 아신전>을 필두로 오리지널 시리즈(드라마)의 면면도 화려하다.

정우성이 제작하고 배두나, 공유가 출연하는 SF <고요의 바다>,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주연이 <D.P>, <인간수업> 김진민 감독의 <마이네임>, 이제훈 주연의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 정리사입니다>, 이정재, 박해수가 출연하고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오징어 게임>, 유아인, 박정민이 출연하고 <부산행>, <반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는 <지옥> 등 웬만한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사의 라인업을 능가한다.

여기에 백종원 또한 일종의 토크쇼를 겸비한 듯한 리얼리티 예능으로 넷플릭스에 진출했고(<백스피릿>), 한국 시트콤의 전성 시대를 이끌던 제작진이 시트콤을 선보이며(<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이수근은 박나래에 이어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했다(<이수근의 눈치코치>). 넷플릭스가 이제는 백종원과 이수근, 그리고 청춘 시트콤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마지막으로, 소재의 다양성. 지난해 <인간수업>과 <스위트홈> 모두 지상파나 케이블이라면 편성 받지 못했을 드라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시청자들 역시 이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표현 수위나 소재 모두 넷플릭스는 지금 한국 동시대 시청자들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중이다.

올해 라인업의 면면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기존 <킹덤: 아신전> 외에도 <고요의 바다>는 SF 드라마, <마이 네임>은 범죄 느와르를 표방했고, <오징어 게임>은 서바이벌 생존게임을 소재로 했고, <지옥>은 최규석 작가와 연상호 감독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어떤 소재든 그 표현 수위가 지상파나 케이블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지옥>의 연상호 감독은 "거대한 세계관이 담긴 <지옥>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상상을 현실화 할 수 있었다"고 말했고,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상상력이나 시간 제약 없이 창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마음껏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남은 숙제

남은 숙제도 없진 않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이른바 'K-콘텐츠'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도드라진다. 지난해 5월 미 <타임지>가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등 '넷플릭스 최고의 한국 드라마' 10편을 따로 소개했을 정도다.

그런 K-콘텐츠의 바람을 타고 글로벌 OTT 사업자들의 한국 진출이 가시화되고 K-콘텐츠 관련 투자 소식이 잇따르는 중이다. '마블' 콘텐츠 등을 등에 업은 디즈니플러스가 이미 2021년 한국 진출을 선언했고, 중국의 아이이치도 김은희 작가가 집필하고 전지현이 출연한 드라마 <지리산>의 해외 판권을 확보했다.

또 스튜디오 드래곤과 함께 <간 떨어지는 동거>란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를 공동 제작한다. 이민호, 윤여정이 출연하는 <파친코>의 제작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던 애플TV 플러스도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는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소식이다.

최근 <미나리>의 윤여정은 한 인터뷰에서 "과거 미국 대중문화계를 선도했던 유태인들처럼 한국인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것"이란 취지의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렇게 넷플릭스를 거점 삼은 K-콘텐츠가 2021년엔 더 넓은 플랫폼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갈 전망이다.

물론, 선두주자인 넷플릭스 입장에서야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이 필수겠지만. 이에 대해 넷플릭스 김민영 한국 및 아태지역 콘텐츠 총괄은 "다양한 콘텐츠가 생성돼 동반 성장하는게 우리로서 좋은 현상"이라며 "OTT는 파이를 키워나가야 할 때"라고 답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계와 극장 업계가 역대 최악의 상황을 견디는 사이, 넷플릭스는 확장 일로를 거듭했고,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 클라스>, <승리호>의 세계적 인기를 견인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26일 한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넷플릭스가 여기서 더 얼마만큼 한국의 구독자를 늘릴 지는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질적, 양적 확장성에 있어 분명 또 다른 영역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리라. 2021년 악재를 딛고 재도약을 다짐하는 영화계나 무한 경쟁에 돌입한 드라마 시장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공룡의 한반도 상륙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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