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로 사는 법, 김연경_요주의 여성 #6

양윤경 2021. 2. 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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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등은 없었다. 우리가 김연경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인스타그램 @kimyk10

전 세계에서 ‘1등’을 하는 기분은 과연 어떤 걸까? 김연경 선수를 바라볼 때마다 막연히 궁금했다. 온 힘을 다해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을 내리치고 득점을 확인한 뒤 두 주먹을 쥐며 포효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처럼 압도적으로 크고 강하고 역동적인 여성을 본 적 있었던지!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 당당한 태도, 어떤 질문도 시원하게 격파해버리는 솔직한 언변과 유머감각은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나 도드라진다. 김연경의 자신감은 바로 ‘실력’에서 나오며, 그 실력은 부단히 노력하고 도전했던 시간을 통해 만들어졌다. 더불어 숱한 ‘미담’에서 드러나는 인품과 대인배의 면모는 다시 한번 ‘세계 최고 김연경’을 우러러보게 만든다. 숫자로 짚어보는 No.1 김연경의 발자취와 빛나는 매력.

포효하는 김연경.
포효하는 김연경.
「 100년 」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김연경에 대한 설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표현은 일본의 다츠가와 미노루 감독의 말이다. 한편 이정철 감독(전 IBK 기업은행 감독)은 “100년이 아니라 200년이 지나도 김연경 같은 선수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명실상부 세계 배구계의 ‘톱’인 김연경의 위상은 축구계의 메시나 호날두와 비견되기도 한다. 김연경 선수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메시보다 호날두가 좋다”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호날두가 더 잘생겨서.
「 3번째 」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난 김연경 선수는 세 자매 중 막내. 배구를 했던 큰 언니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본인의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은 가족 덕분이라며, 특히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믿고 지원해주신 부모님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다.
「 192cm 」
키 192cm라는 월등한 신체조건을 가진 김연경 선수.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를 하는 김연경 선수의 머리가 기표소 밖으로 훌쩍 튀어나온 모습이 사진에 찍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김연경 선수가 학창 시절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다는 걸 아는지? 중학교 3학년까지 키가 170㎝에 못 미쳐 주로 수비를 맡으며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 낙담하는 대신 기본기를 쌓는데 충실했던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갑자기 키가 크면서 자연스레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 207점 」
김연경이 가는 곳에는 승리가 있다. 2011-2012 유럽배구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과 MVP, 2014-2015 시즌 터키리그 MVP 등 김연경 선수가 세운 기록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빛나는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신기록. 8경기 동안 무려 207점을 득점하며(경기당 평균 25.9점) 여자배구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성적은 4등으로, 이례적으로 메달권이 아닌 팀에서 MVP가 선정되며 ‘갓연경’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사건이었다.
「 10번 」
김연경 선수의 등번호. 2005년 흥국생명에 입단하면서 10번을 단 이후, 해외 리그에서나(일본 JT 마블러스, 터키 페네르바체, 중국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국가대표 선수로 뛸 때나 늘 그의 유니폼에는 10이 새겨졌다. 그리고 지난해 11년 만에 국내 무대로 돌아온 김연경은 다시금 그간 흥국생명이 비워 둔 10번의 주인이 되었다.
「 2014 」
일명 김치찌개 회식 사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중국을 꺾고 값진 금메달을 얻었으나, 배구협회가 예산을 핑계로 김치찌개 집에서 회식을 진행하자 이에 화가 난 김연경 선수가 사비로 선수들을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갔다는 이야기는 어느덧 전설이 되었다. 김연경 선수는 여자 배구팀에 대한 열악한 지원과 필드의 부조리한 관행에 대해 과감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리스펙’ 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위인!
「 2,000,000,000원 」
전세계 여자, 남자 배구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 김연경 선수가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며 받은 최고 연봉은 20억을 웃도는 금액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0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연경 선수의 연봉은 3억5천. 바로 한국 프로배구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 제도로 인해 자신의 연봉이 높아지면 피해를 볼 지 모를 다른 선수들을 위해 ‘통 크게’ 자기 몫을 포기한 것. 그가 20억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에 돌아온 건 단 한가지,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국가 대표로 출전하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이번 무대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김연경.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 개최가 묘연한 상황이 안타깝다.
「 6개 」
김연경 선수의 유튜브 채널 '식빵 언니'에서.
김연경은 타투를 좋아해? 김연경 선수의 몸에는 총 6개의 타투가 있다고 전해진다(확인 불가). 허리선 살짝 아래에 있는 레터링 ‘Sicut erat in principio’는 라틴어로 ‘처음과 같이’라는 뜻으로, 20대 초반에 초심을 잃지 말자는 뜻으로 새겼다고. “친구랑 술 먹고 한 우정타투“도 있다. 왼쪽 발목 바깥쪽에 보이는 화살에 찔린 심장 모양의 타투가 바로 그것. 김연경 선수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왜 ‘식빵언니’인지는 모두 다 알리라 생각한다)에서 실제로 타투 받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오른쪽 발목에 자신이 태어난 안산 집 좌표를 새겼다.
「 No.1 」
무엇보다 김연경 선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숫자는 바로 ‘1’이 아닐까. 김연경이 특별한 건, 단지엄청난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배구를 알리고, 한국 배구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일인자’의 품격이 느껴진다. 10년 전부터 태광 일주학술문화재단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배구 꿈나무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첫 번째 김연경컵 유소년 배구대회를 여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는 중. 최근에 불거진 시끄러운 사건 속에서도 묵묵히 코트를 달리며 팀원들을 격려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세계 최고’ 김연경 선수의 남다름을 본다. 우리들의 히어로, ‘거인’ 김연경이 맘 편히 투지를 불사르고 활짝 웃을 수 있길!
「 +갓연경 명언록 」
꿈을 향한 투지를 북돋아주는 갓연경의 어록. 2017년에 펴낸 김연경 자서전 〈아직 끝이 아니다〉(푸른책)에서 만날 수 있다.

“모두가 바라는 꿈에는 저마다 지나가야 할 과정이 있다. 그때마다 현실은 꿈에 대한 의지를 시험해보는 것처럼 포기할 만한 이유나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에 설득당해서는 안 된다. 마음 속에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현실을 마주하고 보란 듯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손끝에 닿아 있는 꿈을 보게 될 것이다.” 45p

“그때 나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다. “기자 분들이 선수의 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여자 배구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부분 ‘미녀 3인방’ ‘미녀들의 대결’ 등 ‘미녀’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남자 배구에선 ‘미남 대결’이란 말이 없잖아요. 왜 여자 배구만 유독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는 거죠? 선수들 모두 먼저 배구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178p

“역전은 유리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끝났다는 절망스러운 순간에 투지를 가지고 싸웠을 때 선물처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을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온다면 역전을 노리며 투지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257p

*찬양하고 애정하고 소문 내고 싶은 별의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요주의 여성’은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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