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가 보여준 욕망..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이현파 기자]
▲ 청하의 첫 정규 앨범 < Querenc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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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랩스타 드레이크(Drake)는 2017년 3월, < MORE LIFE >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20곡이 넘게 실린 이 앨범은 발표와 동시에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드레이크는 이 앨범을 '앨범' 대신 '플레이리스트'라고 규정했다. 라우브의 < I Met You When I Was 18 > 등의 플레이리스트 앨범도 있다. 이러한 앨범들은 '랜덤 재생'을 해도 어색함이 없다.
취향에 맞는 싱글을 선택한 뒤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듣는 개인화의 시대다. 그러나 싱글의 시대에도 앨범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케이팝 신에서, 유기성을 고려한 앨범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아티스트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앨범'이다. 최근 발표된 청하의 첫 정규 앨범 < Querencia > 역시 그 고민이 묻어 나온다. 'Querencia'는 투우장의 황소가 휴식을 취하는 곳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심리적 안식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청하는 2017년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이후, 케이팝 신에서 굳건한 위치를 다진 여성 솔로 가수다. 특색있는 가창을 선보이며, 퍼포먼스를 음악과 일치시키는 데에 매우 능했다. 'LOVE U'처럼 매너리즘에 빠진 순간도 있었지만,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래퍼 창모, 그루비룸, 88 RISING의 리치 브라이언부터 크리스토퍼(Christopher), 폴킴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한 협업을 시도했다. 청하가 최근 수년간 커리어에서 보여준 다채로움은 첫 정규 앨범으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 앨범을 4개의 SIDE로 나눈 후, 다양한 페르소나를 선보이고자 한 것이다.
야망을 펼치는 무대
타이틀곡이자 'SIDE A'의 주인공인 'Bicycle'은 듣는 이의 의표를 찌르는 선택이다. 도입부에서는 퍼즈 사운드로 문을 열더니, 알앤비와 트랩을 교차하면서 여러 차례 변곡을 맞는다. 청하가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영어 랩을 선보였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복수의 장르를 한 곡에 결합하는 케이팝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싱글이다. 그러나 청하의 절륜한 퍼포먼스에 비해, 인상적인 멜로디가 결여되어 있다. 감상에 있어 더 인상적인 곡들은 수록곡 가운데에 있다.
21곡의 트랙으로 채워진 < Querencia >는 몹시 다채롭다. 하우스와 라틴, 레게, 신스팝과 알앤비, 발라드가 공존한다. 이 중에서도 'Masquerade'와 'PLAY'과 같은 라틴 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래퍼 '과이나(Guaynaa)'가 피쳐링한 'Demente'는 곡 전체가 스페인어로 이뤄져 있다. 시장의 흐름에 발을 맞추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이며, < Querencia >가 다국적 앨범이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영국 NME 매거진은 이 앨범에 별 다섯 개를 부여하면서, 청하의 음악 스펙트럼을 '세계 여행'에 부여했다.
이 세계 여행에 약간의 응집력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SIDE'의 구분이다. 각 SIDE를 대표하는 브릿지 트랙의 적극적인 활용은 레이디 가가의 < Chromatica >(2020)가 떠오르기도 한다. 음악적 파트너 빈센조(VINCENZO)가 만든 'Savage' 이후, 딥 하우스 'Stay Tonight'와 리햅(R3HAB)의 'Dream Of You'가 이어지는 구성은 절묘하다. 그리고 여기서 템포를 조금 늦춘다. 수민(SUMIN)과 슬롬, DJ SOULSCAPE의 합작품 '짜증나게 만들어'는 가장 멋진 레트로 넘버다.
무지갯빛 파티가 마지막으로 달려 가면서, 청하는 마지막 파트에서 숨을 고른다. 팬송 '별하랑'에 이어지는 SIDE D 'Pleasure'에서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하는 곡들이 주를 이룬다. 검정치마가 참여한 'X(걸어온 길에 꽃밭 따윈 없었죠)의 편곡은 청하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 한다. 백예린과 구름 콤비가 만든 신스팝 'All Night Long'의 공간감 역시 지금까지 청하의 음악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인디 뮤직의 정서다. 여기에 얹히는 청하의 보컬은, 그가 많은 아티스트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제시한다.
< Querencia >는 규모와 청각적 즐거움을 두루 갖췄다. 이만큼 매력적인 순간을 여러 차례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는 몇 되지 않는다. 청하의 보컬이 어떤 곡과도 불협화음을 빚지 않는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느껴지는 응집력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지 못한다. 태연의 < My Voice >처럼 대놓고 백화점식 구성 앨범을 내세운 경우도 있지만, < Querencia >의 경우 콘셉트를 추구했기에 구성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SIDE D를 장식하는 발라드 '솔직히 지친다'가 트랙의 전후 흐름 가운데에서는 붕 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한계는 있지만 < Querencia >는 분명 보기 힘든 야망을 펼친 무대다. 이 야망이 그 너머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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