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메모리즈⑱] 학폭, 해답은 이 영화 안에 있을지도..
배구계에서 시작된 학교폭력 폭로, 일명 ‘학투’는 연예계로 옮겨붙었고 다시 축구 등 스포츠계로 확산하고 있다. 건조한 겨울, 진화하기 힘든 산불이 능선을 타고 넘으며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형국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한두 명도 아니고,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다수의 폭로가 이어지기도 하고, 폭로된 가해행위의 내용 역시 언어적 폭력에서 신체 폭행을 넘어 집단따돌림, 성폭력까지 충격을 더해가고 있다.
봇물 터지듯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대응 방식이 통일되고 있다. 학폭 부인, 강력한 법적 대응 예고. 분명 “너무나 억울해서” “결코 사실이 아니라서” 강력한 부인 및 자비 없는 법적 처벌을 선언하는 이들이 있을 텐데, 너무나 일괄적으로 동일 입장문을 내놓다 보니 되레 신뢰성에 의문이 가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학투 초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자리를 내놓은 스포츠 선수들이 결코 칭찬받을 일을 했던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을 한 것임에도 ‘보기 드문 대응’이 돼 버렸다.
사건의 진실에 따른 필연적 결과보다는 전문적 자문에 의한 ‘획일화’ 속에 피해자 시각에서 생각해 봤다. 그 모든 폭로가 거짓일 수는 없을 텐데, 모두가 법적 무고죄를 각오하고 그저 한 사람 인생에 ‘물 먹이자고’ 지어낸 얘기를 주장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은 동일하게 ‘강력한 법적 대응’ 선언을 듣고 있다.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가해에 가해를 얹는 일이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처음과 달리 점점 씁쓸해지는 상황 속에,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받는다.”
지난 2017년 말 개봉해 1441만을 울린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 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덱스터스튜디오,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염라대왕(이정재 분)이 한 말이다. 당시엔 이 대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이번에 알았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많고,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은 일부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째서 사과한 사람 중 극소수만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사과를 받은 사람이 옹졸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해도 그 말로는 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잘못을 당한 사람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과 진심으로 잘못한 상대를 용서하는 것은 다르다. 사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용서받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사과는 상대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하라, 그래야 ‘진정한 사과’라는 말이 있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승법 제1조 1항에 의거,
이승에서 인간이
이미 진심으로 용서를 받은 죄는
저승은 더이상 심판하지 않는다.”
저승이 있는지 없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저승에서의 심판을 두려워해 내가 잘못한 상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받아 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용서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면, 저승까지 가기도 전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적어도 그 일에 대해 마음은 편하지 않을까. 결국,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니 깨끗하게 인정하고 상대의 꽁꽁 언 마음이 풀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
피해자에게도 전하고 싶은 대사가 있다. “지난 일에 대해서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아라”. 가해자가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면 역시나 나를 위해 그를 용서하는 건 어떨까. 새로운 눈물은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해, 나와 같은 상처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흘리자.
마지막으로 떠오른 대사는 이것이다. 염라대왕이, 죄책감에 집을 떠나 15년간 남도 돕고 착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잊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 어머니와 동생 수홍(김동욱 분)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못한, 죽어서야 잘못을 빌기 원하는 자홍(차태현 분)에게 하는 말이다.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용기를 촉구하는 말이다.
“나는 이미 네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무려 15년이나 말이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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