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면서 어떻게.." 이들이 자발적 저소득층 된 이유
[이정희 기자]
▲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건' 편의 한 장면 |
ⓒ EBS |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 7조 1항.
아이를 낳았을 때 출생신고 기간을 놓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현행법상 출생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이 사실을 알고 괜히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출생신고는 부모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아이의 출생을 인정 받는 과정이 절벽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할 수도 있다. 출생 신고를 한다고 해도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18일 방송된 EBS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부모로 산다는 건' 편에는 자녀의 양육부터 가정의 생계까지 모두 혼자 책임져야 하는 한국의 한부모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복지와 자립 사이의 딜레마
'미혼모'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혹 당신의 선입견은 이 단어를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 살 지윤이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고 엄마에게 묻는다. "'미혼모'가 나쁜 뜻이냐"고. 그런 지윤이에게 엄마는 "멋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하린씨가 지윤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지만 아직도 받아쓰기가 서툰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치는 김하린씨는 올해 27살이다. 지윤이를 낳기로 결심한 10년 전 그날 이후, 하린씨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대출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한부모 지원 단체와 정부기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냉장고, 세탁기, 옷장까지 모든 게 지원 물품이다. 하린이와 엄마가 먹는 것도 대부분 지원된 것이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딜레마에 놓여있다. 한부모가족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대상은 중위소득 60% 이하여야 한다. 여기에 복지급여는 중위소득의 52% 이하만 받을 수 있다. 2020년 2인 가구 기준 중위 소득(전체 가구 중 소득을 기준으로 50%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의 52%는 155만5830원이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 법정 근로시간을 근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소득이 182만2480원인 상황에서, 턱 없이 적은 기준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지윤이 엄마 김하린씨는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 오히려 지원이 깎인다. 지윤이 엄마만이 아니다. 많은 한부모 가정들이 복지와 자립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린씨는 현재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가 보기에 떳떳한 어른이 되기 위해 하린씨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하린씨가 취업을 하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 것이다. 당장 지윤이의 학업을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의 도움도 끊어진다. 지윤이를 키우며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건' 편의 한 장면 |
ⓒ EBS |
그래도 지윤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받은 하린씨는 나은 상황이다.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로 충분히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법은 여전히 '미혼부'의 아이를 혼외자 취급한다. 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송절차를 거쳐야 한다. 8살 사랑이를 키우는 김지환씨는 사랑이의 주민번호를 받기 위해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들쳐업고 1인 시위를 하며 일명 '사랑이 법'을 쟁취해낸 김지환씨, 하지만 그건 소송 과정을 간소화하는 임시방편일 뿐 여전히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 국제아동인권센터에 따르면 2015~2018년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파악한 출생 미신고 아동은 1086명이다. 법의 그늘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환씨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20대 남성이 아기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20대 남성은 지병으로 사망했고, 그 옆에 아기 역시 아사로 사망했다고 한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기는 미연고자로 남았다. 출생신고라도 됐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지환씨로 하여금 '미혼부'들의 출생신고 소송을 돕는 데 나서도록 했다.
사람들은 행정적 절차를 따르다 제대로 안 돼서 지환씨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혼자서는 아직도 복잡한 소송절차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지환씨는 '사랑이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 한다.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라 국가가 권리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출생통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의 아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필수 예방접종조차도 돈을 내고 해야 했다. 갓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전남 목포에서 사는 최경훈씨는 두 아이를 키우며 잦은 결근으로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 두게 되었다.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다니겠느냐"며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기고, 여러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건 경훈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 <다큐 잇> '대한민국에서 한 부모로 산다는 건' 편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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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가족협회에서 근무하는 정수진씨는 근무 조건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부산역 1층에서 함께 모여 식당을 연 한부모들 역시 '이심전심'의 조건 덕분에 눈치를 덜 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조차 구하는게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자립이 어렵고, 막상 자립을 하면 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또 힘든 상황은 많은 한부모에게 '저소득층'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한부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정수진씨가 안타까운 건 도와주고 싶어도 연락조차 쉽지 않은 한부모들의 현실이다. 한부모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여가부, 보건 복지부 등 각 정부부처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운 상태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 '정상 가족'이 무엇이냐고. 여전히 3~4인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가족을 정상이라고 보는 거냐고. 그리고 말한다. 엄마 혼자 키워도, 아빠 혼자 키워도 자신들도 가족이라고. 자신들 역시 정상가족이고, 보통의 가족이며, 일반적인 가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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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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