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5연승, 한국 농심배 되찾았다
중국·일본 바둑대표 줄줄이 제압
"신진서의 시대 도래한 것 같다"
“커제가 파마를 시작했네요.” “커제가 미용실을 열었어요.”
25일 오후 4시쯤. 신진서 9단이 하변에서 커제 9단의 대마를 끊고 공격에 나서자 바둑 유튜브 채널에 일제히 올라온 댓글들이다. ‘커제가 파마한다’는 말은 중국 네티즌이 커제를 비꼴 때 쓰는 표현이다. 커제는 바둑이 불리해지면 머리를 손으로 배배 꼬는 버릇이 있다. 대국이 끝날 무렵엔 파마한 것처럼 머리가 헝클어질 때도 있다. 여기에 한국 네티즌은 한술 더 떠 “미용실을 열었다”고 표현한다. 25일 열린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오후 4시 30분쯤 커제가 돌을 거둘 때까지 헝클어진 그의 머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신진서가 파죽의 5연승을 거두며 한국 팀에 농심신라면배 우승컵을 안겼다. 25일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에서 온라인 대국으로 열린 농심신라면배 최종라운드 13국에서 신진서가 중국의 커제에 185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했다. 이로써 한국은 통산 13번째이자 3년만에 농심신라면배 우승을 확정했다.
농심신라면배는 한·중·일 3국의 바둑 국가 대항전이다. 각국 대표 5명이 데스매치 형식으로 승부를 겨룬다. 13국을 앞두고 일본은 전원 탈락했고, 중국은 커제만 남았으며, 한국은 네 번째 주자인 신진서와 마지막 순번인 박정환 9단이 남은 상태였다. 13국에서 신진서가 승리해 박정환은 한 판도 두지 않고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신진서는 오래전부터 한국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지만, 국제 대회 성적은 미치지 못했다. 농심신라면배 19회와 21회 한국 대표로 출전했지만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 팀의 네 번째 주자로 나와 중국과 일본 선수 5명을 차례로 쓰러뜨렸다. 말 그대로 ‘올킬’이었다.
신진서는 지난해 11월 24일 ‘한국 킬러’로 통하는 중국의 탕웨이싱을 물리쳤고, 지난 22일부터 이어진 최종 라운드에서 일본 랭킹 1, 2위 이야마 유타와 이치리키 료를 모두 꺾었다. 중국 랭킹 2위 양딩신도 이겼고, 이날 대국 전까지 상대 전적 4승 10패로 크게 밀렸던 중국 1위 커제마저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11월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통한의 패배를 안겼던 커제에게 통렬히 설욕했다.
이번 대회에서 신진서는 매번 상대를 압도했다. 두텁게 판을 짠 뒤 상대의 실수를 기다려 정확히 응징했다. 커제와 최종전에서도 미세한 적은 있었지만 불리한 적은 없었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최명훈 9단은 “앞으로 몇 년은 신진서 9단이 무적 시대를 구가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에서 해설한 이현욱 9단도 “신진서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진서는 대국 후 인터뷰에서 “커제가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작년 삼성화재배가 끝난 뒤 커제가 나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고 들었다. 커제에게 그 말을 돌려주겠다. 커제는 나에게도 고마운 존재다.” 신진서의 올해 목표는 세계 대회에서 지지 않는 것이다. 아직은 그 목표를 지키고 있다.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은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고 (주)농심이 후원한다. 우승 상금은 5억원이다. 준우승 상금은 없다. 제한시간은 각자 1시간에 초읽기 1분 1회가 주어진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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