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될수록 분열, 인간 네트워크의 역설

김현길 2021. 2. 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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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휴먼 네트워크 / 매슈 O.잭슨 지음, 박선진 옮김 / 바다출판사, 480쪽, 1만9800원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작은 마을에서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른 시민에서 시작됐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급속히 전해진 이 소식에 광범위한 시위는 들불처럼 번졌다. ‘휴먼 네트워크’는 이처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연결된 세상을 다루는 책이다. 하지만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동시에 극명히 분열”되고 있는 세계의 이면을 함께 짚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작가이자 교수인 클레어 베이 왓킨스는 12학년(한국의 고3) 때 비행기에서 라스베이거스 출신의 한 소년을 만난다. 미국 네바다 주 ‘톱 100’ 졸업반 학생 선발 면접을 위해 친구 라이언과 이동하던 그는 소년과의 만남에서 교육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년이 그들에게 낯선 해외 경험, 방과 후 활동, 가정교사, 대학 예비 과정 같은 학습 이력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왓킨스는 이같은 경험이 담긴 ‘아이비리그는 다른 행성에 있었다’는 글을 2013년 3월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대도시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온 라이언과 내게, 이 라스베이거스 소년은 마치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행성에서 온 것 같았다. 그때 우리가 몰랐던 것은 또 다른, 우리가 아직 본 적 없는 더 먼 행성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연결하면서 분열하는 네트워크

‘휴먼 네트워크’에 등장하는 왓킨스 이야기는 교육에서 네트워크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왓킨스는 대도시에서 한 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 살았지만 대학 진학 정보는 거의 없었다. 경제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정보였다. 왓킨스의 고향에선 25세 이상 인구 중 13%만 학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나의 부모처럼 대학에 다닌 적이 없는 대다수의 부모는 대학 입학과 재정적 보조의 복잡한 내용들을 보고 겁을 먹거나 아예 모른 척하기도(때론 노골적으로 반대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에 지원할 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여기까지 보면 교육 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육 불평등은 책에 나온 네트워크의 여러 문제 중 하나다. 책은 ‘무리 짓고 분열하는 인간관계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처럼 인간 네트워크 작동 메커니즘과 그 영향을 폭넓게 다룬다. 네트워크 구조에서 어떤 경우에 영향력의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앞부분과 네트워크가 발생시키는 불평등 및 잘못된 정보의 확산 문제를 다룬 뒷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중 전염병과 금융위기에서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다룬 앞부분은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 특히 중세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배 세력으로 부상하는데 있어 다른 가문의 핵심 연결자로 기능하면서 네트워크에서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는 내용은 흥미를 더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이 연결되는 세상에서 갈수록 더 쪼개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진단하는 중·후반부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저자는 인간 네트워크가 유발하는 다양한 문제의 밑바닥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동종선호(homophily)’가 깔려 있다고 본다. 인종, 성별, 나이, 교육, 소득 등에서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하고 예측 가능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다. 저자는 사소한 편향이 연쇄적으로 파급 효과를 낳아 거대한 결과로 이어지는 데 동종선호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행동의 연쇄는 집단 간 분열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그리고 집단 간 규범과 행동의 차이가 더 커질수록 이들 집단 사이의 골도 더욱 깊어진다…우리 사회에 만연한 깊은 분열은 사회 구성원들의 신념과 의견을 양극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기회, 고용, 그리고 삶의 질에서의 불평등을 영속화시키는 데 일차적인 역할을 한다.”

끼리끼리가 만드는 불평등과 양극화

끼리끼리의 부작용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먼저 국가별 인종 분리 수준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분리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생산성이 낮다. 특히 남아공, 콜롬비아, 터키, 과테말라, 에콰도르, 파키스탄, 짐바브웨처럼 인종 간 분리지수가 매우 높은 국가들 중에서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는 없다.

앞서 언급된 교육 불평등은 노동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녀 세대의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줄인다. 그 과정에서 동종선호의 행동 양식과 정보의 견고한 네트워크는 자녀 세대의 교육 기회와 행동폭을 더욱 좁힌다. 우정, 직장 동료 관계처럼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접근하거나 얻을 수 있는 호의, 자원, 정보 등 ‘사회적 자본’에서의 격차도 벌어지는 것이다. 이는 부의 세습보다 강력하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능력주의의 함정’에 대한 논의도 네트워크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특기할 점은 저자가 과세나 소득 재분배가 근본 치료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도 그 자체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동종선호를 해소하는 것이 직접적인 처방이라고 설명한다. 정보와 기회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이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부모들에게 초기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아이들의 학습을 어릴 때부터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또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보다 집단 전체의 행동을 바꿔 네트워크 전체에 변화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한 궁극적인 목표는 계층 간 이동의 확대다. “계층 이동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의 보건, 복지, 법 집행 비용을 감소시키고 경제적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적 계층 유동성은 날로 확대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동종선호는 정치의 양극화 같은 여론 분열의 원인도 된다. 기술 발달로 더 많이 연결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비슷한 집단 안에서 맴돈다. 정보에 따라 전파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팀 코치가 해고됐다’ ‘새로운 스타워즈 영화가 촬영에 들어갔다’ 같은 기정사실이나 밈(meme) 같은 정보는 전염병 전파처럼 다른 집단으로도 쉽게 전달될 수 있지만 ‘기후 변화가 재앙이 될 가능성은 얼마인가?’ ‘백신은 얼마나 위험한가?’처럼 믿음이나 의견과 같이 다양한 가치의 영향을 받는 정보는 주변의 동종선호 영향이 강하다. 가짜뉴스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비용이 ‘0’에 근접하는 반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발굴하는 진실 보도에 대한 보상이 사라지는 것도 정치와 정보의 양극화를 부채질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한국의 사례를 비교적 자주 언급한다. 각종 통계에서는 물론이고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의 차이를 설명할 때 한국이 처한 상황, 싸이의 ‘강남 스타일’ 흥행 요인 분석 등에서 한국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같은 언급이 아니더라도 네트워크로 인한 문제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조국 사태’나 교수 자녀 논문 공저자 등재 같은 데서 확인된 교육 불평등 문제를 비롯해 정치의 양극화는 국내에서도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다. “우리가 은연중에 ‘구조적 문제’라고 모호하게 말하는 것들에 정확한 형상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역자의 말처럼 사회 문제를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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