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추장 고을의 하얀 동화

남호철 2021. 2. 2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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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이어지는 전북 순창 여행 로드
섬진강이 흐르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내룡마을 장군목유원지 현수교 아래 요강바위(왼쪽 아래)가 하얀 눈에 덮여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섬진강은 금강·낙동강·영산강·한강과 함께 국내 5대강으로 꼽힌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발원해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200㎞가 넘는 강 길이만큼 다양한 경치를 보여주는데 전북 순창의 섬진강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순창 적성면에서는 적성강으로 불린다.

섬진강이 임실군을 지나면 바로 순창군으로 접어든다. 동계면 구미리. 강을 사이에 두고 걷기 길인 ‘섬진강 문화생태 탐방로’와 자전거길인 ‘섬진강 자전거길’이 지나간다. 섬진강 문화생태 탐방로는 임실군에서 구례군까지 총 88㎞로 그 중 26㎞가 순창 구간이다.

이 구간 풍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장군목 유원지다.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을 대표하는 여행 명소다.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동북쪽으로 용궐산, 남쪽으로 무량산의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풍수의 형상을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으로 부르는 데에서 유래했다. 마을 사람들은 장구의 목처럼 좁아진다고 해 장구목이라고도 부른다.

폭이 넓고 수심이 얕은 이곳 섬진강은 천혜의 수석공원을 펼쳐놓으며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오랜 세월 물길이 다듬어낸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즐비하다. 움푹 파인 요강바위를 비롯해 물살에 파이고 닳아 이뤄진 오목한 돌개구멍 바위들이 강줄기를 따라 3㎞가량 펼쳐진다.

요강바위는 장군목 한 가운데 놓여 있다. 바로 앞 내룡마을 사람들은 이를 수호신처럼 여긴다. 바위 가운데 둘레 약 1.6m, 깊이 2m가량의 동그랗게 구멍이 파여 있어 요강처럼 생겼다. 마치 누가 기계로 파놓은 것처럼 정밀하다. 무게도 무려 15t에 달한다. 눈 이불을 뒤집어쓴 요강바위는 색다르다. 하얀 테두리 속 검은 구멍이 심연처럼 느껴진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 너머 눈 덮인 현수교는 설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건장한 아이를 갖길 원하는 부부가 바위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도 전해진다. 6·25전쟁 당시 주민 5명이 요강바위 속에 몸을 숨겨 적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도 있다. 한때 요강바위가 수억 원의 값어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중장비를 동원한 도석꾼에게 도난당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제자리를 되찾았다.

내룡마을 뒤 용궐산 암벽에 공사 중인 나무데크 ‘하늘길’.


장군목 동북쪽은 용궐산이다. 용이 하늘을 나는 듯한 형상이다. 원래는 용골산이라 불렸는데 ‘용의 해골’이라는 뜻이 좋지 않다는 주민들의 개명 요구에 따라 변경됐다. 이곳 등산로가 인기다. 굽이도는 강줄기의 멋진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여기에 웅장함을 자랑하는 용궐산 암벽을 따라 하늘길이 공사중이다. 500여m 규모의 하늘길은 아찔함과 동시에 섬진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나무데크길이다. 맞은편은 벌동산이다.

장군목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채계산이 위치한다.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와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 옥택리 경계에 위치해 있는 채계산은 적성산, 화산 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 그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채계산이다. 적성강변 임동마을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적성면 국도 24호선 위 아찔한 높이의 채계산 출렁다리.


이곳에 출렁다리가 들어섰다. 순창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국도 24호선 위에 지난해 3월 정식 개통했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기둥이 없는 무주탑 산악현수교로 국내 최장인 270m를 자랑한다. 높이 또한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 75m, 가장 높은 곳이 90m여서 짜릿함을 더한다.

데크 계단을 따라 다리 입구에 다다른다. 길게 늘어선 다리가 불안감을 준다. 하지만 풍동실험을 통해 최대 초속 66m의 바람에도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하니 한 발짝 내디뎌본다. 마치 공중을 걷는 기분이다. 다리 옆으로는 풍경이 탁 트였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과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순창 하면 고추장, 고추장 하면 순창이다. 순창은 전국 장류생산량의 43%를 차지하는 장류의 본고장이다. 눈은 고추장민속마을도 하얗게 덮었다. 집집마다 마당을 채운 장독대에 소담스럽게 내린 눈이 한옥의 처마 끝 고드름과 어우러져 겨울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민속마을 옆에 자리잡은 순담투어스테이션 공원 내 나선 언덕이 하얀 생크림 케이크처럼 보인다.

여행메모
장군목 매운탕·순창시장 순대골목
강천산·향가유원지도 둘러볼 만

하얀 생크림케이크 같은 순담투어스테이션공원 내 나선 언덕.

수도권에서 전북 순창 장군목유원지로 가려면 순천완주고속도로 임실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30번 국도를 타고 임실군 강진면으로 가서 동계 방면으로 가면 된다. 채계산 출렁다리에는 무료 주차장이 잘 마련돼 있다. 입장료도 없다. 채계산~책여산 종주 산행도 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밖에 강천산, 훈몽재, 향가유원지 등도 둘러볼 만하다.

장군목유원지 요강바위 인근에 섬진강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민물고기와 민물새우로 매운탕을 끓이는 음식점이 있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순창시장에는 소규모 순대골목이 형성돼 있다. 당면 대신 선지를 주재료로 넣은 피순대로 끓인 순대국밥 내장국밥 머리국밥이 주 메뉴다.

순창에는 숙박시설이 많지 않다. 순창읍내 '금산여관'이 있다. 80년 된 한옥이 네모난 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정겹다. 현대식 숙소보다 불편하지만 감성적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금산여관 옆에는 카페 '금산객잔'이 자리한다.

순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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