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재원은? 기본소득·신복지가 불붙인 거여의 증세논쟁

오현석 2021. 2. 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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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차기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두 사람은 국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에 소요되는 재원 조달 방식을 두고선 각기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에 불과한 복지 지출을 향후 2배 이상 늘려야 한다”(이재명 경기지사) “중장기적으로는 약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감내해야 한다. 보험에 든다고 생각하셔야 한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부 예산 집행 규모를 늘리자는 확장적·적극적 재정정책이 174석 거여(巨與)의 정책 기조로 자리매김하면서 증세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면서다.

여권에선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재정 지출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구상도 잇따라 나왔다. 이 대표는 18세 이하 아동수당 지급과 만 5세 의무 교육 등 이른바 ‘신(新)복지’ 정책을 발표했고, 이 지사는 단계적으로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하는 동시에 복지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다만 나랏돈을 더 푸는 재정정책을 뒷받침할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이 지사는 전면적인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조세 특혜’를 줄여 추가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당내에선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복지 제도와 연동시키자는 의견과 부유층의 세금을 한시적으로 올리자는 ‘부자 증세론’까지 백가쟁명식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①전면 증세론

이재명 경기지사는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절반에 불과한 복지를 증세를 통해 늘려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청 제공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 입장은 “OECD 절반에 불과한 복지를 증세를 통해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은 가계소득지원 덕에 가계부채비율은 가장 높고, 국가부채비율은 가장 낮다”는 게 이 지사 생각이다.

이 지사는 복지를 강화하면서 기본소득 정책도 함께 시행하자는 입장이지만, 무게는 전 국민에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쪽에 더 실려 있다. “기본소득목적세를 걷어 전액 공평하게 배분한다면 80∼90%의 압도적 다수는 내는 세금보다 받는 소득이 많기 때문에 증세에 동의하기 쉽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범여권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기본소득연구포럼이 23일 개최한 토론회에선 증세를 위한 입법 구상도 나왔다. 이 모임의 대표의원인 소병훈 민주당 의원은 “기본소득은 현존 복지제도를 뒤흔드는 의도에서 제안된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숙제”라며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국토보유세법, 탄소세, 로봇세 등을 입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3일 기본소득연구회의 토론회에서 유종성 가천대 교수가 제시한 GDP 10% 증세 방안. 다만 소병훈 의원은 "이 방안은 연구모임의 확정안이 아니다"라며 "향후 추가적인 연속 토론회를 통해 구체적인 증세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날 토론회에선 구체적인 증세 안도 제출됐다. 발제자로 나선 유종성 가천대 교수는 “기본소득은 부자증세만으로는 어렵다.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며 모든 소득 원천에 5% 과세를 골자로 하는 기본소득세 신설을 제안했다. 유 교수는 이외에도 공시지가의 1%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국토보유세와 순 자산 20억원 이상 부유층에 대한 부유세를 조합해,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212조원가량의 추가 증세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증세론에 대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자칫 조세 저항을 불러오거나, 불필요한 논란으로 지지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이 지사 측은 “선거 땐 증세를 언급하지 않는 게 좋다지만, 국민은 정치인보다 수준이 높다”며 “표 떨어진다고 증세 얘길 피하려 들면 국민들께서 신뢰하지 않으실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②조세 특혜 축소론

여권 내부에선 증세가 아닌 방식의 재원 마련 방안도 거론된다. 일정 요건을 갖췄을 때 낮은 특례 세율을 적용하거나 세액감면·세액공제·소득공제를 통해 세금을 깎아주던 조세 특혜를 줄이자는 구상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오전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국민 생활기준 2030'으로 이름 붙인 '신복지 체제' 구상을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득·주거·교육·의료·돌봄 등 전 분야에서 국민 생활의 최저기준을 보장하고 적정 기준을 지향하는 내용의 ‘신복지’를 제안한 이 대표는 재원 확보 방안으로 조세 특혜 축소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특히 부유층이 더 이익을 보는 ‘역진적 특혜’와 한 주체가 중복해서 조세 감면을 받는 ‘중복 특혜’를 줄여 복지 확대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저항이 가장 적으면서도 실현이 용이한 방법부터 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조세 특혜를 줄이는 것도 실질적으론 증세와 다름없어 조세 저항이 생길 수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지난 2013년 8월 박근혜 정부가 세법 개정안으로 곤욕을 치른 게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서민·중산층 공제금액을 늘리기 위해 근로자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금을 더 걷는 기준점을 연 소득 3450만원으로 정하면서 반발이 시작됐다. 여기에 “개정안의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란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끝내 박근혜 정부는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선을 5500만원으로 끌어올리며 사실상 백기투항 했다.


③실시간 소득 파악론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시간 소득 파악을 통해 기존의 '신청자 입증 복지'가 아닌 '발굴하는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여권 내 일각에선 증세가 아닌 ‘제3의 길’을 통해 복지를 강화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고 있다. 국세청 데이터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개개인의 소득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복지’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증세는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와 잠재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실시간으로 소득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적재적소에 지원하는 ‘발굴하는 복지’로 전환해 국가 살림살이를 효율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우리나라 예산 가운데 당해년도에 쓰이지 못하는 불용액이 평균 20조원에 달한다”며 “우리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민간에서 돈 쓰듯이 국가 예산도 사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실시간 소득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지난 22일 실시간 소득 파악을 기반으로 ‘전 국민 사회보험’ 도입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기본소득 정책과 상충한다고 보진 않으나, 현실성을 고려했을 땐 소득 중심의 사회보험 정책을 더 많은 고민을 담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④ 부자 증세론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유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3년간 올리는 사회연대특별세법을 다음 주 중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이 의원은 "계속되는 국채 발행은 가능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 부감을 전가하는 반도덕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오종택 기자

5선 중진인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부유층과 대기업의 세금을 한시적으로 올리는 사회연대특별세 법안을 다음 주 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2022~2024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이 법안은 세후 소득 1억원 이상 고소득층 57만 명과 상위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3조~5조원가량을 더 걷는 게 골자다. 증가한 세수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데 우선해서 집행하고, 이후 4차 산업혁명에서 낙후된 산업을 신산업 분야로 전환하는 데 쓰인다.

이 의원은 “최근 코로나19 피해 지원 예산을 계속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는데, 계속되는 국채 발행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반(反)도덕적 방식”이라고 법 취지를 설명했다.

여권 내 일각에선 소비에 매겨지는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근 부가가치세를 3% 인상해 1인당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2% 인상해 자영업자 손실보상 기금을 마련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오현석·남수현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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