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했는데' 범행 장소 찾느라 헤맨 경찰..신고자는 사망

최모란 2021. 2. 24. 15: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앙포토


"흉기로 위협을 받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범행 장소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 신고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고 보고 관련 경찰들에 대한 감찰에 나섰다.


'코드 0' 발령하고도 현장에 50분 뒤 도착한 경찰
24일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0시 49분쯤 경기남부경찰청 112신고센터로 "(상대방이) 흉기를 들고 나를 찌르려고 한다"는 A씨(49·여)의 신고가 접수됐다. 접수 요원이 신고자의 위치를 묻자 A씨는 "모르겠다. 광명에 있는 B씨(53) 집"이라고 말했다.
접수 요원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코드 0'를 발령했다. '코드 0'는 납치·감금·살인·강도 등 강력범죄가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위급사항 최고 단계다.

신고를 접수한 광명경찰서는 현장으로 경찰관 21명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장소인 B씨의 집을 곧바로 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고 접수 50여분 만인 오전 1시 42분쯤 범행 현장에 도착했지만 A씨는 이미 B씨에 의해 살해된 상태였다.
B씨는 "A씨와는 알고 지낸 사이인데 A씨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아서 말다툼을 벌이다 너무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B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이날 검찰에 송치했다.

유가족이 올린 국민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화면 캡처

A씨의 유가족은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찰이 제때 출동하지 않아 어머니가 숨졌다"며 "경찰이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니 관련 경찰들에 대한 처벌과 사과를 원한다"고 글을 올렸다. 이 청원 글에는 이날 오후 2시 현재 3164명이 동의했다.


GPS 오작동에, B씨 정보 전달 누락까지
경찰은 즉시 해당 접수 요원과 출동 경찰관 등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신고를 받은 접수 요원은 '코드 0'를 발동하면서 A씨의 위치를 전파했지만, 현장 경찰관들이 범행 현장인 B씨의 집 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 당시 B씨의 위치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 신고 접수 시스템은 휴대전화 통신사 기지국과 와이파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한다. 지도 위에 신호 영향권이 표시되는 식이다.
기지국은 최대 반경 수 ㎞까지, 와이파이는 공유기 주변으로 50~100m 내외 위치를 표기한다. GPS는 수 m 내 위치 파악이 가능해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이날 A씨의 GPS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경찰들은 기지국과 와이파이 신호로 측정된 위치를 가지고 B씨의 집을 찾아다녔다. B씨의 집 주거지는 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곳으로 600가구가 산다. 경찰은 불이 켜져 있는 곳 등 의심되는 집 44가구를 실제 수색하기도 했다.

현장 확인이 늦어지자 광명경찰서 112상황실은 신고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B씨의 이름을 언급한 것을 확인하고 B씨 이름으로 주소를 검색했다. 이후 A씨의 딸에게 "B씨를 아는지"를 묻고, 주소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B씨를 검거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본 B씨가 '다른 남자와 통화한다'고 생각해 A씨의 휴대전화를 뺏고 전원을 껐다고 한다"며 "휴대전화 전원이 꺼지면서 GPS 위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GPS 위치 추적의 경우 2G폰 등 휴대전화에 GPS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고층건물 실내, 지하 등의 경우 위치 파악이 힘들다고 한다. 경찰은 GPS 위치 추적에 오류가 있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경기남부경찰청


최초 접수 요원이 광명경찰서에 상황을 전파하면서 핵심 정보인 B씨의 이름이 누락된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경찰은 A씨 시신의 상태와 B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A 씨가 신고 전화를 한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접수 요원이 B씨의 이름 등을 신속하게 전달했다면 경찰관들이 현장에 더 일찍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GPS 오류가 있긴 했지만, 접수 요원이 B씨의 이름을 사전에 현장에 알렸다면 현장에 더 일찍 도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감찰 조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난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엄중히 문책하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