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CNN 의학기자 "美엔 이게 없었다, K방역 성과 일등공신"

2021. 2. 24. 14: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경외과 전문의 산제이 굽타 인터뷰
미국 확산세 꺾였지만 '공감피로' 우려
정부가 과잉대응한다면 그게 잘하는 것
한국 방역 성과 이끈 것은 시민들 책임감
아스트라제네카 포함 5개 모두 좋은 백신
산제이 굽타 CNN 의학전문기자는 23일 화상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신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줌 캡처]

"한국인들의 책임감이 방역에 있어서 (다른 나라와) 큰 차이를 만들었다. 이는 백신만큼 중요한 일이다."
CNN에서 20년째 의학전문 기자를 맡고 있는 산제이 굽타는 23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자신뿐 아니라 이웃, 공동체를 향한 한국인들의 책임감이 정부의 방역 성과를 끌어올렸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백신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유일한 조건이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기본적인 것들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2일 미국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50만 명을 넘었다. 백악관에는 조기가 걸렸고,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가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열었다.

굽타 기자는 지난 1월 중순 이후 급등세는 꺾인 모습이지만 전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전히 확진자 수는 많은 편이라 언제든 다시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망자 5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보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현실감각을 잃고, 바이러스 창궐을 당연한 현실로 여길 수도 있어 문제라고 봤다.
굽타 기자는 지난 한 해 CNN 화면에 가장 많이 나온 기자 중 한 명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현재 에모리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도 역임하고 있는 그는 2001년 입사해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에볼라·메르스 등 여러 감염병의 현장을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 내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할 때는 거의 매일 뉴스에 출연하며, 정부보다 감염병 정보를 더 충실히 전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는 미국이 백신을 만드는 데까지는 정말 잘했지만 배분에는 실패했다며, 한국에서는 과학에 기반을 둔 접종 우선순위 원칙을 세울 것을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직 신경외과 의사인 산제이 굽타는 2001년 CNN에 입사, 사스·조류인플루엔자·에볼라·메르스 등 여러 감염병의 현장을 취재했다. [CNN]

Q : 지금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 세가 주춤한 모습이다. 이제 괜찮아질까.

A : 신규 확진자 수, 입원환자 수, 사망자 수 등 대부분 지표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 여전히 너무 높은 편이다. 언제 갑자기 다시 확진자가 급증할지 모른다. 또 다른 걱정은 50만 명이라는 숫자 자체다. 코로나19로 인한 누적 사망자가 50만 명을 넘었다. 숫자가 너무 크다 보니 사람들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같은 이야기를 50만 번 반복해 들려주면 사람들이 더 집중하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는 예전만큼 공감하기 힘들어하는, 이른바 '공감 피로(empathy fatigue)' 현상이 시작될 수 있다.

Q : 그래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 코로나19 대응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

A : 트럼프 행정부는 항상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백신만 있으면 다 해결될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가게 문을 닫고 통행을 제한하려면 사람들에게 상황이 심각하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문제를 최소화해선 그렇게 할 수 없다. 백신 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과잉 약속'을 하고 '과소 배포'를 했다면, 새 정부는 '과소 약속'을 하고 '과잉 배포'를 하려는 차이점이 보인다. 이런 공공보건의 위기 속에선 정부가 과잉대응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게 잘하는 것이다. 눈앞에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대통령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는 것부터 사실 큰 차이다. 아직도 마스크 쓰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지난해 11월 산제이 굽타 CNN 의학전문 기자는 뉴스에서 ″첫 확진자가 같은 날 나온 한국과 미국의 대응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 국가 전체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노스 다코타 한 개 주의 사망자 수보다 적다″고 언급했다. [CNN]

Q : 그동안 방송에서 한국의 방역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 한국 정부뿐 아니라 한국 시민들을 높게 평가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책임을 지는 철학이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한국 시민들이 정부의 방역 성과를 끌어올렸다. 반면 미국은 마스크 쓰기나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기본적인 일에는 투자하지 않았고, 백신 같은 큰 것 한 방만 노렸다. 백신은 물론 아주 중요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한 조건이 아니다. 백신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여유가 생겼다.

Q :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A : 데이터를 봐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국과 EU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아스트라제네카를 비롯한 5대 백신의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아주 놀랍다. 다 합쳐서 7만5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는데, 단 한 명도 사망자가 없었다. 발생한 환자 수도 위약 집단에서보다 적었다. 모든 백신이 목표를 달성했다고 본다. 다만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이 초기에 승인됐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코로나19가 지금처럼 퍼지지 않았고 변이 바이러스도 많지 않을 때 임상시험이 이뤄졌다. 반면 아스트라제네카나 존슨앤드존슨 백신은 코로나19 상황이 더 심각해졌을 때 시험을 했기 때문에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엔 모두 좋은 백신이며 미국에서도 곧 승인을 받을 것이다.

Q : 백신 접종을 먼저 시작한 미국에서 시사점을 얻는다면.

A : 미국이 백신 개발에 기여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배분에 실패하며 성과를 다 망쳤다. 권력 분산 차원에서 연방제를 하는 미국은 그동안 50개의 주 정부가 서로 협조하며 잘 지내왔다. 그런데 팬데믹같은 국제적인 위협 앞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노출했다. 한 주에선 가능했던 일이 옆 주로만 건너가면 할 수 없었고, 큰 혼란이 벌어졌다. 코로나19에는 일관된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 누가 먼저 맞을지에 대해 우선 명확하게 해두는 게 중요하다. 누가 이 질병에 가장 취약할지, 과학에 기반을 둬 배포 전략을 짜야 한다. 미국의 경우 요양원 인력, 필수직종 종사자 등 지역마다 우선 접종 대상이 다르다 보니 어떤 곳에는 백신이 부족하고 어떤 곳에는 넘치는 결과가 빚어졌다. 미국 사례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Q : 코로나19 이전의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A : 그럴 수 있다. 정상에 가까운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속성상 그렇다. 100여 년 전인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도 그랬다. 팬데믹이 끝난 뒤 1920년대 동안 사람들의 활동이 급격히 왕성해졌다. 실내에만 있다 보니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이다. 당장 지난해 가을 이후 중국 우한에서도 사람들이 콘서트장을 가는 등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다만 좀처럼 마스크를 쓰지 않던 나라인 미국 같은 곳에서도 앞으로 마스크 쓴 모습이 일상에서 이어질 것 같다. 또 한동안은 대규모 실내행사를 규제하거나, 마스크를 쓰거나, 해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일도 계속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장기적으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