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부진 토트넘, 최악의 시나리오 피하려면

이준목 2021. 2. 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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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손흥민, 팀의 재정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이준목 기자]

토트넘 홋스퍼는 최근 깊은 부진에 빠져있다. 지난 주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1-2로 패한 것을 비롯하여 공식전 7경기 1승 6패에 그쳤다. 한때 선두권을 달리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의 순위는 9위(승점 36)까지 떨어졌고,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에서도 에버턴에 패하여 16강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말까지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던 토트넘이었지만, 현 상황이라면 또다시 빈 손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유로파리그 출전도 불투명하다.

부진이 계속되면서 사령탑인 주제 무리뉴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스페셜 원'으로 불리는 무리뉴 감독은 첼시-포르투-인테르-레알 마드리드 등 여러 명문클럽을 거치며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바 있다. 토트넘에서 2년차를 맞이한 올시즌 초반 팀이 손흥민과 해리 케인의 폭발적인 화력을 앞세워 승승장구하자, 어느 팀이든 부임 2년 차에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는 무리뉴 감독의 징크스가 재조명받기도 했다

하지만 새해들어 토트넘이 각종 대회에서 부진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무리뉴 감독은 현지 언론과 도박사들이 전망하는 '경질 후보' 1순위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입지가 급추락했다. 무리뉴 감독의 주특기인 수비와 역습 위주의 '실리축구'가 시즌 초반 이후 상대팀에게 분석당하며 위력이 급감했다. 여기에 플랜B의 부재-선수단과의 불화설-자극적인 언론플레이 등 이전부터 지적되었던 무리뉴의 고질적인 문제점들까지 덩달아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토트넘이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주축 선수 한 명인 손흥민의 거취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EPL 진출 이후 매년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진가를 증명한 손흥민은 올 시즌도 프리미어리그 23경기에 나서 13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토트넘은 시즌 초반 손흥민의 맹활약에 고무되어 아직 2023년 6월까지 계약이 남아있음에도 손흥민과 재계약을 추진했지만 정작 이후로 협상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최근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이탈리아 유벤투스 등 여러 유럽 명문 구단들과 연결된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왔음에도 아직까지 우승 트로피가 없다는 게 옥의 티로 남아 있다. 이는 손흥민의 '영혼의 파트너'로 꼽히는 케인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덧 전성기에 접어들며 월드클래스 공격수로 자리잡은 두 선수에게는 더 큰 야망을 펼치기에 토트넘은 너무 좁은 무대가 되어버렸다. 만일 올 시즌도 토트넘이 무관으로 시즌을 마감하거나,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 진출권마저 놓치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경우, 손흥민과 케인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이 토트넘을 떠나려고 하는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관건은 결국 토트넘이 지금의 무리뉴 체제를 계속 믿고 가야할 지 여부다. 토트넘으로서는 최근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무리뉴 감독을 내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리뉴 감독은 토트넘과 계약기간 아직 2년 남아있는데 계약 해지 조항이 없어 경질 시에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뉴를 경질한다고 당장 마땅한 대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판단을 신중하게 한다. 우승에 대한 갈증 때문에 전임 포체티노를 내치고 무리뉴를 데려왔는데 일각에서 커리어가 더 나은 감독은 유럽에서도 찾기 힘들다. 현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브랜든 로저스(레스터시티)나 율리안 나겔스만(RB 라이프치히)는 모두 현재 맡고있는 소속팀이 있어서 거액의 위약금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토트넘이 몇몇 대회에서 우승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도 판단을 신중하게 한다. 리그컵(카라바오컵)에서 결승에 진출했고, 유로파리그에서도 32강 1차전에서 볼프스베르거(오스트리아)를 대파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이 유력한 상태다. 유로파리그 우승을 따내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본선진출권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무리뉴 감독은 이 두 대회에서 모두 여러 차례 우승해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리그컵 결승상대는 이 대회에서만 4연패에 도전하는 절대강자이자 현재 EPL 선두이기도 한 맨체스터 시티다. 유로파리그도 맨유-아스널-AC밀란등 쟁쟁한 강호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서 아직 토트넘이 우승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토트넘이 올시즌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은 대회이자, 무리뉴 감독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리그컵 결승전이 예년보다 훨씬 늦어진 4월 26일 웸블리에서 열리는데, 이때는 이미 시즌 막바지라 감독을 교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올시즌은 토트넘이 무리뉴 체제를 끝까지 유지할 가능성에 좀 더 무게가 쏠리는 이유다.

토트넘이 또다시 빈손으로 시즌을 마감하거나, 무리뉴 체제가 계속된다면 손흥민도 올시즌 이후에는 거취 문제를 신중하게 다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손흥민은 무리뉴 체제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중용받고 있기는 하지만, 과도한 혹사나 공격 의존도 등으로 부담도 적지않은 상황이다.

델레 알리-크리스티안 에릭센 등과 호흡을 맞추며 창의적인 공격이 돋보였던 포체티노 시절에 비하여, 무리뉴 체제에서의 토트넘은 케인 외에는 손흥민의 부담을 덜어줄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토트넘이 최근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이유도 무리뉴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토트넘 선수들의 스타일이 맞지않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축구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공격전술은 단조로운 역습에만 의존하는 반면, 기복이 심하고 실수가 잦은 수비수들을 데리고서도 수비적인 전술만 고집하고 있으니 팀이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토트넘이 올 시즌 컵대회-유로파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손흥민과 무리뉴 둘 중 한 사람이 팀을 떠나는 것이다. 어차피 무리뉴 감독은 단기간에 '윈 나우(Win now)'를 추구하는 우승청부사이지, 한 팀에서 4~5년 이상 장기집권하며 선수육성이나 리빌딩에 강점이 있는 지도자는 아니다.

어느덧 서른의 문턱에 접어든 손흥민도 한창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시기에 팀의 재정비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손흥민에게 올 시즌 남은 몇 달은 '무관의 토트넘 레전드'로만 남을 것이냐, '우승트로피를 노리는 월드클래스 선수'에 도전할 것이냐를 놓고 중요한 선택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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