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당대표 7개월..반토막난 지지율, 재보선으로 반등할까
중도·진보 모두 지지율 이탈
문대통령 지지율과 같은 흐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음 달 초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대권 행보에 나선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60.77%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권을 거머쥐었던 그의 7개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 대표를 거쳐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는 ‘문재인 모델’을 택했지만, 지지율만 놓고 보면 초라한 성적표다. 지난해 4월 총선 직후 40%대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반토막 났고, 지난달에는 추격자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역전당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가 자기 색깔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면서 지지율을 깎아 먹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거대여당의 당 대표로서 정책과 입법 추진 과정에서 본인의 본래 강점인 중도 확장성을 살리지 못했고, 강성 친문 지지층의 지지도 잃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특히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친문 대표 주자를 자처했는데, 임기 후반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이 대표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23일 현 시점에서 놓고 보면, 대선 주자로서 당 대표에 도전했던 이 대표의 결정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최대 강점은 안정감과 균형감을 기반으로 한 ‘중도 확장성’이다. 하지만 7개월 남짓 임기 동안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유례없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부각된 상황에서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 대표 취임 이후 가장 큰 이슈가 추미애·윤석열 갈등이었는데 그때 보여준 리더십이 없다”며 “중도층이 이해할만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양 극단이 싸우고 있는데 나서지 못하는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어차피 추·윤 갈등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풀어야할 이슈였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는 분석도 있다.
추·윤 갈등이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이 대표가 지지율 상승의 디딤돌로 삼으려 했던 개혁 입법의 성과도 빛이 바랬다.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을 필두로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여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법안들이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계가 강하게 반대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이 대표가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면서 올 초 임시국회에서 처리됐다.
이 대표는 이달 초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입법 성과를 열거하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개혁을 실현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같은 입법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권주자로서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법안 통과는 엄밀히 따지자면 원내 사안”이라며 “입법 성과가 있었다 해도 당이 한 것이지 ‘대권주자 이낙연’의 공으로 돌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이 대표 특유의 신중한 태도와 일부 개혁 법안의 내용 면에서의 후퇴로 지지층 마음을 얻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검찰개혁 이슈에 대해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강성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선 한때 이 대표를 향한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당 지도부 출신의 한 의원은 “강성 지지자들은 당이 나서서 윤 총장을 공격하라고 주문했는데 이 대표로서 수용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렇다 보니 강성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호남 지역의 한 의원은 “180석을 만들어줬음에도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게 안 되는 인상이 강했다”며 “그래서 ‘사이다’ 스타일의 이재명 지사와 비교하는 시선이 많다”고 했다.
새해 첫날 이 대표가 야심차게 제기했던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최악의 악수로 판명 났다. 촛불 민심을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지지층들은 적폐청산 이슈를 적극 지지해왔다. 이 때문에 어설픈 ‘국민 통합’을 기치로 내건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 사면은 이들이 이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한 중진 의원은 “사면론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합의나 당내 의견 조율 과정이 생략되면서 절차적 문제가 컸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정치는 내용 못지않게 의식이 중요하다”며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다음에 청와대에 건의하는 형태가 돼야 했다. 정무적 판단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와 한 배를 탄 이 대표에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종의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문 대통령 지지율과 이 대표 지지율의 동조화 현상이 목격된다. 지난해 1월 50%에 육박하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21대 총선 직후인 5월에는 60% 초반까지 올랐다가 그 뒤로 꾸준히 내림세다.
이 대표와 문 대통령 지지율의 동조화 현상은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을 민주당이라고 밝힌 응답자들의 지지율을 분석해보면, 경쟁자인 이재명 지사는 지난해 1월만 해도 지지율이 10%를 밑돌았으나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달 40%를 넘어섰다. 반면 이 대표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60%대의 높은 지지율로 출발했지만, 꾸준히 하락해 지난달 27.1%를 기록하며 이 지사에게 역전당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 측도 지지율 하락을 문 대통령 지지율과 연결해 보고 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지지율 하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국민은 이 대표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치 행보보다 전반적으로 문재인정부와 같이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 안팎에선 결국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성적표가 대선주자로서 이 대표의 지지율 반등 여부를 판가름할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임기를 마친 뒤 선거대책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아 보선을 직접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서울과 부산을 모두 야권에 내주면 대권주자로서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반면 민주당 소속 전직 시장들의 귀책 사유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거나 파급력이 큰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면 향후 대권 레이스에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대표 스스로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어느 순간부터는 여의도로 출근하지 않고 바로 선거 현장으로 뛰기 시작할 것”며 “제가 늘 얘기한 대로 후보보다 이 아무개가 더 많이 뛰는 것 같더라는 얘기를 듣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시 기초의회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힌 뒤 “서울시장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말 안 해도 (여러분이) 알 거다. 열심히 해서 반드시 이겨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민주당의 4·7 보선 승패는 친문그룹 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제3후보론’과도 연동돼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곧바로 ‘이낙연 책임론’이 분출할 수 있다. 이 대표의 대선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고, 친문 그룹에서 더는 이 대표가 이 지사의 대항마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제3후보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보궐선거는 사실상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며 “이 대표로서는 적어도 한 곳에서는 이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판 이현우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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