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백신의 시간이 오고 있다
코로나백신 26일 국내 첫 접종… 정쟁과 가짜뉴스 뒤로하고 접종률 높이는 데 힘 모아야
백신 접종은 모두를 위한 선택… 올 연말 백신 대장정 끝에는 잃어버린 일상 되찾게 되길
예전 칼럼을 읽다가 놀랐다. ‘한계상황이다. 사람은 피곤하고 물자는 부족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11개월 전인 지난해 3월, 대구·경북 지역의 코로나19 대유행 때 나는 이렇게 썼다. 지금으로 보면 코로나 초기 단계인데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들은 그때 이미 지쳤고, 서울 이태원의 유명 식당이 문을 닫으며 자영업자의 위기가 예고됐다. 이후 이태원 클럽 발 확산에 이어 광복절, 추석·설 연휴를 지나며 계속 들었던 말은 “이번이 최대 고비”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왔고, ‘앞으로 1주일’이 방역의 분기점이었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우리는 실제로 ‘이번만’ 잘 참고 지나가면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1주일, 한 달, 6개월, 1년을 버텨왔다.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이었다. 빛이 비칠 만하면 이내 어둠이 짙게 깔렸다. 기다리는 건 백신뿐이었다. ‘게임 체인저’가 될 백신만 나오면 바이러스와 싸우는 인류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라 했다. 그 기다림이 길어지는 동안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과 피로가 쌓여갔다.
드디어 백신이 온다. 바로 오늘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위탁 생산 중인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출고된다. 26일에는 국내 첫 접종이 이뤄진다. 역사적인 일이다. 뛸 듯 기뻐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 백신이 온 건 다행이지만 많이 늦었다. 정부는 K방역의 성과에 취해 한시라도 빨리 백신 물량을 확보할 생각을 못 했다. 안이한 판단이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8일 세계 최초로 백신을 접종한 영국에 비해 국내 접종 시기가 80일 가까이 늦어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를 생각하면 80일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 아스트라 백신의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효능이 입증되지 않아 막판에 이들이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안타깝다. 중증 사망자가 많은 이들이야말로 백신이 시급한데 말이다. 진작 화이자나 모더나 등 다른 백신을 들여왔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전 국민이 맞을 충분한 물량을 확보했다지만 언제 무슨 백신이 얼마나 들어올지 확실히 답을 못 내놓고 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백신이 유일한 희망인 것은 분명하다. 영국은 올봄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간다.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많은 51만명이 넘는 코로나 사망자가 나온 미국도 정점을 지나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우리는 3차 유행의 종식이냐, 이보다 규모가 큰 4차 대유행의 시작이냐의 고비에 서 있다. 이런 시점에 시작되는 백신 접종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초기의 오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백신 접종에 차질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백신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정쟁의 도구로 삼는 정치권도 자중해야 할 것이다. 불안감을 높이는 가짜뉴스도 더 이상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집단면역이 생기려면 전 국민의 70% 이상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신을 맞은 90세 마거릿 키넌은 “내가 맞았으면 당신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95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100세인 남편 필립공도 초기에 접종해 백신의 불신을 잠재웠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선두에 섰다. 접종을 앞둔 우리는 어떠한가. 아직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이 원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백신의 시간이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전환점이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에게도, 일상의 불편을 감수해온 시민에게도, 요양병원에서 위태롭게 견뎌온 이들에게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시간이다. 이제 불필요한 정쟁과 가짜뉴스를 뒤로하고,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모두의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한다.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하고, 국민은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 좋겠다. 순서가 돌아올 때 가능한 한 맞자. 나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위한 선택이다. 백신 접종으로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마음도 다잡아야 한다. 백신 대장정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올 연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부디 잃어버린 소중한 일상을 되찾고, 마스크 없이 서로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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