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부엔디아 대령으로부터의 교훈

2021. 2. 24.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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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말이다. 가상의 도시 마콘도를 중심으로 한 가문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펼쳐 보이는 이 소설은 콜롬비아의 역사를 집약해서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인용한 문장은 몬카타 장군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한 말이다. 부엔디아 대령은 내전 상태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그는 고향인 마콘도에 돌아오자마자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때 친구였던 반대파의 장군 몬카타를 처형한다. 처형되기 전날 몬카타는 부엔디아 대령에게 마콘도의 역사상 가장 폭군적이고 악질적인 독재자가 될 거라고 경고한다.

몬카타 장군은 부엔디아 대령이 적들을 너무 미워하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그들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이는 부엔디아가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가 자유파의 투사가 된 것은 보수파가 선거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쁜 짓이었고, 그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의 반대편에 서기로 작정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적들을 너무 미워하고 그들과 오래 싸우고 너무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몬카타 장군은 말한다. 미워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미워할 수는 없다. 사랑하기 위해서도 생각해야 하지만 미워하기 위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듯 미워하는 사람도 닮아간다. 상대방을 닮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의 기능이 아니고 생각의 기능이다. 깊이 사랑해서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서 닮아가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게 한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일어난 사람들이 때로는 그들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예를 흔하게 본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겸손한 권력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민주사회는 권력이 집중하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고 한다. 나쁜 짓에 분노하여 싸운 사람들은 악을 응징한다는 명분과 의를 점유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나쁜 짓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더 위험한 권력이 되기도 한다.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이 기만과 최면에서 깨어난다. 부엔디아 대령이 그런 인물이다. 그는 긴 세월 숱한 전투 끝에 나쁜 사람이 보수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파에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어느 쪽 사람이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잡으려 싸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청난 권력 속에서 고독을 느끼고 드디어는 방향감각을 잃기에’ 이른 그는 마침내 마콘도로 돌아와 황금물고기를 만들며 지낸다.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40년이 걸렸고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영광의 수렁에 빠져 돼지처럼 허덕였다’는 역설적인 문장으로 마르케스는 그의 치열한, 그러나 비참한, 헛된 삶을 정리했다.

특정 이념이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쁜 일을 하기 위해서 특정 이념을 이용한다. 물이 해치기도 하고 불이 살리기도 한다. 그 반대도 물론 성립된다. 물이나 불이 문제가 아니고, 지나친 것이 문제다. 큰 물, 집중된 불이 재앙을 부른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한도 안에서만 어떤 이상이든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이 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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