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끝을 미리 보는 눈

2021. 2.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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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얼마나 되시나요.

그는 멀리 보는 눈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끝을 미리 보는 눈은 없었습니다.

끝을 미리 보는 눈을 통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고 지혜를 얻길 원합니다.

끝을 미리 보는 눈은 은혜로만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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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얼마나 되시나요. 보통 매의 눈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매는 사람보다 최대 8배나 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매의 황반에는 사람보다 다섯 배나 많은 시각세포가 존재합니다. 놀랍게도 매보다 시력이 더 좋은 동물은 타조라고 합니다. 타조는 10㎞ 이상 떨어진 물체를 볼 수 있고 42m 정도 떨어진 거리를 지나는 개미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이 온몸의 등불이라 하셨습니다. 눈이 밝은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육안보다 중요한 것은 심안입니다. 특히 끝을 미리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만 봅니다. 그런데 심안으로 끝을 미리 볼 수 있다면 삶은 훨씬 바르고 성숙해질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중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 바흠은 소작농으로 살며 늘 땅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조금씩 자기 땅을 만들던 그는 1000루불만 내면 종일 발로 밟는 땅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바키시루라는 동네에 도착해 촌장에게 그 돈을 내고 길을 떠납니다. 촌장은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일러주면서 그를 보냅니다. 그는 종일 뛰다시피 길을 재촉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늦은 오후가 돼 해가 지는데도 출발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돌아오다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의 시신을 묻는 데 필요한 크기의 땅뿐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땅에 누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숨이 차도록, 멀리까지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멀리 보는 눈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끝을 미리 보는 눈은 없었습니다.

끝을 앞당겨 보는 마음의 눈을 갖길 원합니다.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은 자신보다 앞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온 이들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아울러 자신도 언젠가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있다는 걸 생각하고, 내려올 때의 모습을 미리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건강하다면 더 늙어 병들었을 때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모습을 미리 보는 눈이야말로 가장 복된 눈입니다. 이 눈이 밝으면 욕망과 아집, 교만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끝을 미리 보려고 노력했던 분입니다. 그는 65세가 됐을 때 깨달았던 ‘인생은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를 실천하려고 1년 뒤인 1956년 4월 26일을 사망 예정일로 선포하고 스스로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은 자의 마음으로 명상과 사색을 했고 이를 일기처럼 기록했습니다. 기록은 1974년 10월 18일까지 이어졌고, 그의 사후 ‘다석일지’로 출간됐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중 제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9년 2월 24일 자 한 언론의 부고 기사였습니다. ‘김운성씨 별세’를 알리는 부고였습니다. 동명이인의 부고를 보면서 저는 제 끝을 미리 보는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언젠가 ‘김운성 목사 별세’라는 소식이 전해질 것입니다. 이는 확률 100%의 사실로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나친 욕망으로 제동장치가 망가진 자동차처럼 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끝을 미리 보는 눈을 통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고 지혜를 얻길 원합니다. 때론 멈추고, 때론 비우며, 때론 침묵하고, 때론 배려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때론 바보처럼 지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끝을 미리 보는 눈은 은혜로만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눈을 영안이라고도 부릅니다.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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