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잠·무기 개발 한다는데..9·19 합의 자화자찬한 외교부

유지혜 2021. 2.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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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23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제네바 군축회의 연설에서 군비 통제 분야의 성과로 9ㆍ19남북 군사합의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해안포 사격을 지시하고 지난해 북한군이 DMZ 내 우리 측 감시초소에 총탄 사격을 가하는 등 수차례 군사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외교부 제공]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유일한 다자 군축협상 포럼인 제네바 군축회의(CD)에서 9ㆍ19 남북 군사합의 등을 군비 통제 분야의 성과로 강조했다. 북한이 핵 무장을 공언한 데 대한 비판은 없었다.

23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진행된 군축회의 고위급 회기 연설과 관련,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 차관은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일상화를 목표로 그동안 대북 관여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분야 성과로서 9ㆍ19 군사합의를 소개했다”고 밝혔다.

최 차관은 실제 연설에서 “우리의 지치지 않는, 망설임 없는 노력이 북한과 미국이 관여하는 외교적 모험을 시작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9ㆍ19 남북 군사합의는 군비 통제를 통해 비무장지대(DMZ)를 보다 안정적인 완충지대로 만들고, 관련 당사자들이 비핵화 과정 진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北 수차례 합의 위반했는데 9ㆍ19 합의 자화자찬
최 차관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 및 평화기획비서관을 역임하며 9ㆍ19 군사합의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9ㆍ19 합의 당시 최 차관도 평양에 갔고, 남북이 군사합의에 서명한 뒤 구체적인 내용을 원격으로 브리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수차례 9ㆍ19 군사합의를 위반했다. 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해안포 사격을 지시한 것도, 지난해 북한군이 DMZ 내 우리 측 감시초소(GP)에 총탄 사격을 가한 것도 명시적 합의 위반이었다. 정부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개성 연락 사무소 폭파나 서해상 해수부 공무원 사살 역시 합의 위반이나 다름없는 도발 행위였다.

그런데도 9ㆍ19 군사합의를 성과로만 과시하는 것은 다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달 당 대회에서 전술핵 무기 개발, 핵잠수함 건조 등을 공공연히 언급하며 핵무장 의사를 명확히 밝혔는데, 최 차관의 연설엔 이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평화적 방법을 통한 완전한 비핵화 달성”이라든지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는 나라로서” 등으로 관련 내용을 언급했을 뿐이다. 비확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를 다지는 게 군축 회의의 목적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블링컨 '북한 비핵화' 강조와 대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군축회의 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촛점이 북한의 핵프로그램 제거 및 폐기에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표현이었다. [연합뉴스]

최 차관의 이같은 연설 내용은 전날(22일) 이뤄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군축회의 연설과도 대비됐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으며, 평양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라고 표현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초점이 북한의 핵프로그램 제거 및 폐기에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통상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쓸 때는 주한미군 철수 등까지 염두에 두는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그가 언급한 WMD에는 생ㆍ화학무기도 포함한다.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탄도 미사일’로 표현, 사거리를 특정하지 않은 점도 주목된다. 대북 정책 리뷰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장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중ㆍ단거리 탄도 미사일’까지 포괄적으로 공식 문제 삼을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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