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③] '시지프스' 한태술, 이런 '짬뽕맛집'이 다 있나!
여기에 터미네이터·맨인블랙을 더하면?
'조승우의 힘'이면 잡탕 아니고 국가대표 짬뽕
신화라는 게 원래 맛있는 짬뽕이기는 하다. 하물며 자신이 죽으면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아내에게 당부하고, 자신을 잡으러 온 사신 타나토스를 토굴에 가둬 세상에 죽는 이가 없게 만들고, 분노한 제우스의 명에 의해 전쟁의 신 아레스가 타나토스를 구하고 타나토스 손에 끌려 저승에 잡혀가고도, 지하세계 죽은 자들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소포네에게 장례를 치르지 않는 괘씸한 아내를 핑계 삼아 지상에 올라와 장수를 누린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 아닌가.
JTBC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연출 진혁, 극본 이제인·전찬호) 1, 2회가 방송된 시점에서 시지프스는 한태술로 읽힌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퀀텀앤타임’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인물로, 여전히 자신을 엔지니어로 소개하는 천재공학자다. 추락하는 비행기의 전기 동력기를 고쳐 261명의 생명을 구하고도 고장 난 게 있어 고쳤을 뿐이라고 말하는, 아는 건 절대 아는 척해야 하고 틀린 건 반드시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엄청난 거부로 회사 출근도 이사회 참석도 빼먹기 일쑤인 악동 회장이다.
누구 생각나는 이 없는가. 아이언맨이자 세계적 기업 스타크 인터스트리의 회장 토니 스타크, 부자인 것도 제멋대로 괴팍한 성격인 것도 엔지니어인 것도 같다. 토니 스타크에게 불의의 사고로 인공심장이라는 핸디캡이 있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을 초능력자로 만들어 주는 미래 기술이 발전했듯, 아직 다 밝혀지진 않았지만 한태술에게는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과 후회에서 비롯된 정신적 후유증이 생명을 압박할 만큼의 질병이 돼 있고 죽었다고 알려진 형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곧 ‘시간 이동’에 관한 미래 기술을 만들 듯하다. 순전히 ‘퀀텀 앤 타임’, 양자와 시간이라는 회사명에서 유추한 개인적 상상일 뿐이지만 말이다.
공교롭게도 토니 스타크의 실존 모델이라는 엘론 머스크가 테슬라 CEO이고, 형이 동생을 부르는 ‘태술아~’가 자꾸 ‘테슬라’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 그런가. 한국판 테슬라 CEO, 한태술, 연상작용은 억지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닌 뇌 담당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에서 끝났다면 ‘짬뽕’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1980년대, 볼 것이라고는 지상파(전파 송출 방식에 의하자면 당시엔 공중파) TV 3개 채널밖에 없던 시절,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 지켜 시청했던 외화 ‘맥가이버’의 주인공 맥가이버의 모습도 한태술에게서 보인다. 주변의 사물과 재료들을 이용해 즉석 폭탄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고 깨진 비행기 조종석 유리창이든 동력기든 아주 쉬운 방법으로 ‘간단히’ 고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을 보면 ‘맥가이버’라 불렀다, 특히 훈훈한 매력의 ‘공대 오빠’들에게.
그리고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이 또한 개인적 추측에 바탕 한 것이지만. 가까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테넷’의 주인공, 이름도 없이 주도자라 불리는 그 남자. 미래의 자신이 보낸 이들과 함께 미래의 재앙을 막기 위해 현재에서 고군분투하는 주도자.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고, 그러함에도 마치 운명처럼 주도자의 길을 닦아 나간다. 멀리는 SF영화의 시조새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 암울한 미래 인류 저항군 사령관인 존 코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급파한다.
‘시지프스: the myth’의 어떤 점에서 두 인물 중 한 명 혹은 둘 다를 발견했는가 하면, 먼저 한태술의 형 한태산이 ‘퀀텀 앤 타임’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것을 기념한 행사에 찾아왔을 때다. ‘태술아, 태술아’를 부르던 그 형은 현재의 한태산일까 미래 또는 다른 차원에서 온 한태산일까. 형은 ‘너와 나 말고도’ 여기에 온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나 차원(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을 이동한 사람처럼 말했고, 동생 한태술 또한 이동해 온 사람으로 보는 듯이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의 한태술은 현재 시점의 인물이어서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헛소리라 여겼고, 그래서 형을 믿지 않았고 내쳤다.
또 하나의 장면은, 한태술에 누군가 침입했고 그림 뒤의 벽에 ‘형을 찾지 마요, 그럼 당신 죽어’라고 써놓은 사건이다. CCTV라는 기계가 보기에 한태술이 아니고서야 보안 경계 태세가 작동해야 마땅하고 자신을 알기에 ‘눈에 띄게’ 그림을 거꾸로 걸어(남 보기엔 제대로) 메시지를 전한 것 아닐까. 필자의 추론대로면 미래의 한태술 또한 현재에 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자신이 없다. 다만 한태술은 인류의 주도자든 저항군이든 그들을 돕는 역사적 개발자든 미래에서도 주요 인물이라는 것, 그의 양자역학을 이용한 시간 기술이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정도는 가늠된다. 그래서 성동일이 연기한 미래 저항군의 대장쯤으로 보이는 인물도 영화 ‘맨 인 블랙’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요원K 역할로 보이는 단속국 제7과장(최정우 분)도 한태술에게는 호의를 베풀거나 예우한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한태술을 쫓는 출입국외국인청은 흡사 ‘맨 인 블랙’의 비밀조직 MIB를 연상케 하며 ‘시지프스: the myth’에 짬뽕 재료를 추가한다. ‘기억을 잊게 하는 빛’을 대신할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는 것은 잔인하고 상상력이 부족해 보여 아쉽다.
본안으로 돌아와 시지프스 한태술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에 그의 실존 모델인 테슬라 CEO, 맥가이버를 합해 놓은 것도 모자라 ‘테넷’의 주도자나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마저 호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정말 묘하고 놀라운 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여러 캐릭터가 따로 놀거나 어설피 ‘동거’ 한다면 분명 시청자 불만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거부감이 없는 것은 기본, 심지어 이 독특한 매력에 벌써 빠져들었다. 상상력 부족, 복제에 짜깁기라는 비판 대신 드라마 호평이 이미 시작됐다.
‘조승우의 힘’이다. ‘비밀의 숲2’ 시즌1보다 한층 정적인 표현으로 우리를 사로잡더니, 이번엔 깨알 과장 연기 원맨쇼를 보여 준다. 정적 표현 뒤 움직임이 많은 활동 연기를 보여 주니 신선미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정말이지 연기를 차지게 한다. 억양의 흐름, 말의 장단, 다양한 표정과 툴툴대는 다리 동작에까지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집중시킨다. 만일 배우 조승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다소의 과장이었다면 꼴불견이었을 것이다, 딱 작품에 ‘덕’이 되는 만큼으로 기막힌 완급조절로 에너지를 표출시키고 있다. ‘수트케이스’ 들고 ‘이동’해 온 강서해 역할의 박신혜, 액션 좋은 배우와의 합은 또 어떨지 벌써 기대한다. 당분간 즐겁겠다, 볼만한 드라마가 시작됐고 오늘 3화가 방송된다.
데일리안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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