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확인한다고?' 쿠바의 입국심사는 이렇다

이희동 2021. 2. 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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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백수가 얼떨결에 간 쿠바] 올라, 쿠바

지난해 2월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다녀온 쿠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 직후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싣지 못했던 여행기를 1년을 맞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이희동 기자]

각자 또 함께 여행

드디어 쿠바 가는 날. 새벽에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버스로 인천공항까지 향했다. 아직 코로나19 31번 환자가 거론되기 전이었지만 버스에는 손세정제가 배치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설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쿠바에 입국 못 하는 건 아니겠지? 지난해 2월 19일 당시 쿠바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이 청정지역이었다.

인천공항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페북으로만 봐오던 <시사in> 고재열 기자와 가이드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같은 일행으로 보이던 이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대부분 혼자 온 듯 보였는데, 그래도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재열 기자를 알고 <시사in>을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각자의 정체성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기 때문이었다.

이 유대감은 이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국립공원 산악구조대부터 시작해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 스튜어디스, 드라마 작가, 금융전문가 등 생전 처음 본 다양한 직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금세 친해졌다.

매 끼니 때마다 마신 모히토와 밤마다 마신 럼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바탕에는 분명 동료의식이 있었고, 이는 우리의 쿠바 여행을 단순히 패키지 여행을 넘어선 그 무엇으로 만들었다. 고재열 기자가 기획하고 있는 여행 플랫폼의 목적이 단순한 여행을 넘어 40대 이상의 사회인이 새로운 인연으로 활력을 찾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따로 또 같이 여행의 힘
ⓒ 박종삼
 
수속을 마친 뒤 멕시코시티 행 아에로멕시코에 올랐다. 우리의 일정은 인천에서 멕시코시티를 거쳐 쿠바 아바나로 들어가는 것으로 비행시간만 17시간, 환승 대기 시간도 무려 6시간이었다. 여행을 가는 데 이렇게 꼬박 하루가 걸리니 아직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가지 않을 수밖에.

오랜만에 장시간 비행기를 탔기 때문일까?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는 잠을 자둬야 했지만 낯선 곳에 가는 설렘 때문인지 눈이 말똥말똥했다. 팔팔한 20~30대도 아니고 분명 다음날 퍼질 텐데 이걸 어쩐다. 어떻게든 한숨 자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창밖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내 방송이 들려왔다.

비행기는 이제 멕시코시티 상공을 날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서울만큼 번잡한 도심과 함께 뿌연 스모그가 눈에 띄었다. 멕시코시티는 분지여서 공기 순환이 잘 안 된다고 하더니 얼핏 봐도 우리의 뿌연 미세먼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드디어 착륙. 환승을 해야 했지만 프로세스상 공항을 나와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공항 직원들은 우리가 코로나가 확산 중인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하는 듯했고, 그만큼 우리도 덩달아 긴장해야 했다. 설마 입국 거부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우리 모두는 별일 없이 입국심사를 통과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멕시코 땅을 밟게 되었다.

무법천지 멕시코시티?
 
 비록 공항 근처지만 어쨌든 여기는 멕시코
ⓒ 박종삼
 복잡한 멕시코시티 도로
ⓒ 이희동
 
쿠바 아바나행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무려 6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공항에서만 있을 수 있겠는가. 내 평생 언제 또 멕시코에 올지 모른다며 우리 일행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멕시코시티 도심을 잠깐이라도 다녀오자고 가이드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가이드는 멕시코시티의 치안이 너무 좋지 않다며 공항에서 짐 맡길 곳을 찾았다. 눈뜨고 코 베가는 곳이 멕시코시티라며 한순간에 배낭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보관소는 만원이었고, 가이드는 도심행을 포기하자고 했다. 어쨌든 공항을 벗어나면 가이드가 모든 걸 챙길 수밖에 없는데 아직 일행 얼굴도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평소 같았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혼자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저어됐지만, 무엇보다 공항에 내려 들려오는 낯선 스페인어에 주눅이 들었고, 굳이 달러를 멕시코 페소화로 환전해야 한다는 것도 나를 주저케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 <시카리오> 등에서 봤던 무법천지 멕시코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잘못된 편견일 가능성이 높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도심을 포기하는 대신 공항을 나와 잠깐 그 주위를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와 닿은 것은 매캐한 매연 냄새였는데, 역시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무감각해졌다. 그러니까 이곳 멕시코시티 사람들도 멀쩡하게 사는 거겠지.

멕시코의 거리를 돌아다녀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에서도 그랬듯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개들이었다. 꽤 큰 개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19세기 말 조선에 처음 왔던 서양인들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을 신기한 듯 기록했었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무엇 때문에 개를 묶기 시작했을까? 이웃이 사라지면서 생긴 현상은 아닐까?

다시 공항에 들어와 쿠바행 비자를 사고 출국 심사를 한 뒤 공항 라운지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생전 처음 가본 라운지에서 무제한으로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었지만 나가서 보지 못한 멕시코시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돌아올 때는 밤이라고 하니 더더욱 나갈 수도 없을 테고, 과연 나는 또 멕시코 땅을 밟을 수 있을까?
 
 눈뜨고 코 베간다는멕시코시티 광장의 모습
ⓒ 윤승훈
 
포르노? 여행자보험?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는 인천에서 타고 온 비행기의 절반 크기였고, 기내 안에서 들리는 언어도 온통 스페인어뿐이었다. 그래도 국제선이라 은근히 기대했지만 기내식도 간단한 빵과 샐러드뿐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는 그리 멀지 않았다. 눈을 잠깐 붙이려 했으나 이내 도착 기내방송이 나왔고, 나는 부랴부랴 입국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과 여권번호를 적고 소지한 제품들에 대해 체크를 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포르노물 소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입국심사지에 포르노물이라.

아마도 그것은 공산주의 국가 쿠바의 특성인 듯했다. 포르노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겠지. 모든 걸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포르노 아니던가. 제국주의가 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다면 자본주의는 포르노와 맥도날드 등을 앞세워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비행기 착륙. 드디어 쿠바였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거의 하루 만이었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여행자보험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쿠바의 무상의료 때문에 오는 이들 때문에 생긴 것 같았다. 영화 <식코>를 보면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간단한 수술을 받기 위해 쿠바로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와 관련된 거겠지.

심사대를 거치자 이번에는 아시아인들만 따로 분류하더니 또 다른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다. 코로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행선 추적을 위해 쿠바에서 묵는 숙소의 주소를 적는 것이었는데 매우 형식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쿠바에서 코로나는 딴 세상 이야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그 모든 수속을 거치고 짐을 찾은 뒤 공항에서 나왔다. 열대의 나라답게 후덥지근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쿠바의 상징 형형색색 올드카. TV에서나 볼 수 있는 그 50년대 차들이 저리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니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쿠바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쿠바공항에서 더 작성해야 했던 서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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