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고 살벌한 사이, 형과 처음이자 마지막 듀오 무대"
쇼팽 국제콩쿠르서 형과 공동 3위
조성진보다 10년 앞서 한국 첫 입상
"아등바등 죽어라 연습하는 스타일
복권 긁듯 연주 잘되는 날 기다려"
2005년 문화계의 뉴스는 단연코 ‘동동 형제’였다. 그해 10월 25·21세던 피아니스트 임동민·동혁 형제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3위에 입상했다. 조성진보다 10년 앞선, 한국인 최초 입상이었다.
대형 콩쿠르에 형제가 나란히 주목받는 일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당시 콩쿠르 주최측은 본래 알파벳 순서로 돼 있던 연주 순서를 바꿔 둘을 다른 날 연주하도록 했다. 네 살 차이 형제는 이 결정적 무대 이전부터 함께였다. 임동민이 12세, 동혁이 8세에 피아노를 함께 시작했고 94년엔 모스크바로 같이 유학을 떠났다. 96년엔 쇼팽 청소년 콩쿠르에서 1위(임동민), 2위에 입상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 같은 악기를 다뤄온 형제가 한 무대에 선다. 지난 1월 롯데콘서트홀 오전 공연인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에서 연주했고, 연주곡을 새로 정해 이달부터 본격적인 듀오 공연 투어에 나서고 있다. 이달 20일 통영을 거쳤고, 다음 달 3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이어 5일 대구, 6일 부산, 7일 인천, 9일 제주, 14일 광주에서 공연한다.
17일 만난 임동혁은 “피아노를 시작한 이래 형과 한 피아노에서 연주해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8세에, 임동민은 12세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임동혁은 “음악회 1·2부를 나눠 연주한 적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둘은 한 피아노에 앉아 슈베르트 환상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라흐마니노프 모음곡을 들려준다. 임동혁에게 형과 함께 걸어온 피아니스트의 길에 대해 물었다.
Q : 오랫동안 형제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는데, 왜 함께 연주한 적이 없나.
A : “모르겠다. 제안도 없었다. 성격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가.(웃음) 쇼팽 콩쿠르 후 한국에 들어와 쇼팽 협주곡 1·2번을 각각 연주하는 식으로 한 무대에 선 경우만 있었다.”
Q : 형과 동생이 어려서부터 같은 악기를 연마하는 집의 풍경은 어땠나.
A : “살벌했다. 옆방에서 언제나 피아노 소리가 들리니까. 어떻게 보면 숨 막히는 환경이었다. 다르게 보면, 둘이 같이 한 건 동기부여도 될 수 있다. 우리는 둘 다였던 것 같다. 우리는 피아노를 시작하자마자 설렁설렁하는 기간 없이 함께 대회에 나가고, 치열했다.”
Q : 서로 연습과 연주를 들었나.
A : “서로 들었다. 특히 형은 지금도 그렇고, 예전부터 자신의 연주를 들어봐 달라 하곤 했다. 몇 년 전에도 내가 있는 독일까지 찾아와서 연주를 점검해달라고 하더라.”
Q :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위로가 되지는 않았나.
A : “위안이 됐던 적보다는, 고려할 점은 많았다. 예를 들어 쇼팽 콩쿠르에 나갔을 때도 같은 곡을 치지 않으려 서로 곡을 바꿔야 했다. 결선곡에서 형이 협주곡 1번을 치면서 나는 자연히 2번을 골랐다. 역대 입상자 중에 2번을 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피해를 봤다거나 억울하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Q : 30년 만에 함께 연주하는 의미는 어떤가.
A : “나는 평생 피아노를 아등바등 쳐온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무대를 매번 피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하는 무대는 아무래도 압박이 덜하다.”
Q : 무대에서 긴장을 많이 하나.
A : “본인이 본인을 힘들게 한다. 가스불 꺼졌는지 확인하고도 몇 번씩 켰다 끄는 사람처럼 피아노를 친다. 연습할 때 잘 되는 부분도 믿지 않는다. ‘분명히 잘 안될 거야’ 하면서 잘 안될 때까지 다시 해보고 ‘거봐, 잘 안 되잖아’하면서 죽어라 연습하는 스타일이다.”
Q : 무대 경험을 그토록 쌓았는데 불안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
A : “오히려 어릴 때보다 나를 더 못 믿게 됐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음악이 됐다. 이제는 악마가 와서 ‘연습한 만큼 무대에서 칠 수 있게 해주겠다’ 하면 모든 걸 주고 싶을 정도다. 실력 발휘를 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억울하다.”
Q : 어떻게 해결하나.
A : “평생 연습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200%, 300% 해놓으면 무대에서 90%가 나온다. 남들은 잘 모르는데, 난 정말 연주 앞두고 시계 계속 보고 마음을 새까맣게 졸이면서 온종일 연습한다.”
Q :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무대 위 인생을 계속하는 이유는.
A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 복권 긁는 느낌이다. 꽝이 많기는 하지만, 가끔 당첨되면 우와! 그 기분을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에 똑같은 곡으로 두 번 연주했는데 첫날 연주는 시작하는 순간 ‘아, 오늘 연주 진짜 잘되겠다. 정말 좋다’ 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대 위 순간이 있고, 거기에 따라 엄청난 음악이 나오기도 한다.”
Q : 형 임동민은 2008년부터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극도로 긴장하는 무대를 떠나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은 안 해봤나.
A : “후배들을 몇 번 가르쳐봤는데 정말이지 쥐잡듯 잡았다. 레슨 끝내고 나오면 친구들이 ‘너 10년은 늙었다’고 하더라. 나 혼자 지지고 볶으면서 무대에 서는 게 낫다. 평생 있을 곳이 여기인 것 같다.”
Q : 형과의 듀오 무대는 또 볼 수 있을까.
A :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듯하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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