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동산 대책 '현금 청산'이 정당한 보상이라는데

강승태 2021. 2. 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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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공급 대책 3가지 논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살짝 돌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서울 구로, 영등포, 관악, 동작 4개 자치구가 만나는 곳이다. 사거리에서 어떤 곳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자치구가 달라진다. 1번 출구 방향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면 바로 관악구다. 안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아파트 건설 현장이 있다. 관악 강남아파트다.

요즘 강남아파트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받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 재건축의 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역세권 단지다. 사업 규모는 약 2만4558.1㎡.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1974년 준공된 강남아파트는 1995년 처음 재건축 조합이 설립됐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사업 중단과 재추진을 반복하며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비교적 적은 대지면적에 가구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도 여러 번 바뀌었다. 점점 슬럼화가 되고 있을 무렵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나섰다. 당시 S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SH 자금 100억원을 지원하며 강남아파트 정비에 나섰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강남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공공이 참여하면서 사업 속도가 빨라졌다”며 “정비계획 입안에서 관리처분계획까지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 여러 재건축 사업장 중 가장 짧은 기간”이라고 말한다. 이곳은 머지않아 ‘힐스테이트관악뉴포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총 1143가구로 조합원 물량 878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모두 공공임대로 운용할 예정이다. 관악 강남아파트는 공공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재건축·재개발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강남아파트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까. 정부의 대규모 공급 정책을 두고 한쪽에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출한다. 한편에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택지개발계획을 발표해 시장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2·4 공급 대책을 둘러싼 논란을 쟁점별로 살펴본다.

서울 관악구 강남아파트는 공공이 개입해 재건축에 성공한 단지로 꼽힌다. <윤관식 기자>
▶논란1. 현금 청산 위헌 논란 ▷정부 “정당한 보상”이라지만…

2·4 부동산 공급 대책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대책 발표 후 부동산을 취득하면 현금 청산 대상자가 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자유로운 부동산 거래를 막는 것은 엄연한 국민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현금 청산이 “헌법상 정당한 보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홍 부총리는 “현행 토지보상법 체계상 기존 소유자 재산에 대한 보상은 현금 보상이 원칙”이라며 “감정평가 후 실시하는 보상은 헌법상 정당 보상”이라고 주장했다.

토지보상법(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보상에 관한 법률) 제63조에 따르면 공공 사업을 위한 토지를 수용할 때는 ‘현금 보상’이 원칙이다. 헌법 제23조에는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요한 단어는 ‘정당한 보상’이다.

토지보상법에서는 공공 사업에서 현금 보상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재개발 지역에서 현금 보상이 과연 정당한 보상인지가 논란이다. 홍 부총리는 정당한 보상이라고 강조하지만 재개발 구역 빌라 소유자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분양권을 얻을 목적으로 빌라를 구입했다는 점에서 현금 청산이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3기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형 공익 사업을 시행하면 감정평가를 통해 보상금이 책정된다. 감정평가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공시지가 기준법이다.

문제는 공시지가가 현재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는 점. 서울은 공시지가와 시세 간 격차가 많이 줄었지만 다른 대다수 토지는 여전히 공시지가와 시세 간 격차가 크다. 이 때문에 감정평가 시 ‘그 밖의 요인 보정’이라는 작업을 통해 최대한 시세에 맞게 보상을 한다.

공공 재개발 진행 중 현금 청산을 할 때 이 같은 과정이 진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재개발 구역 빌라는 시세 대비 수억원 이상 웃돈이 반영돼 거래된다. 현금 청산을 하면 이 같은 프리미엄을 반영해야 할지도 논란이다.

▶논란2. 민간 참여 동력 있을까 ▷포기하는 구역도 상당할 듯

“(조합 입장에서) 이익이 되니 사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2·4 공급 대책에 대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평가다.

하지만 정작 시장 반응은 다르다. 공급 확대 열쇠를 쥔 민간 조합은 물론 일선 지방자치단체 목소리조차 무시한 일방통행 정책에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이미 순조롭게 진행 중인 사업 구역마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정부는 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 동의 요건을 4분의 3에서 3분의 2로 낮췄다. 하지만 동의 요건을 완화한 것만으로 시장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시장 반응을 보면 공공 재개발 찬반을 둘러싼 주민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공공이 개입하면 사유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관악구 강남아파트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일부에 국한된 사례다. 이 때문에 강남권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는 대부분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중이다. 다른 지역 재건축 단지나 재개발 구역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 한 재개발 조합장은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같은 정비 사업은 상가·주택·토지 소유자와 세입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대립이 불가피하다”며 “공공이 이를 슬기롭게 해결할 역량과 추진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논란3. 지역 지정 안 했는데 ▷선거 변수에 공급 확대 순항할지 의문

정부는 26만3000가구를 공급하기 위한 신규 택지지구 20곳을 상반기 중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규 택지지구 외에도 공공 재개발 구역 역시 2분기 내로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계획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입지 선정 작업이 끝났지만 지자체와 구역 경계 설정 등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발표를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선거다. 올해 4월에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내년 3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을 우려도 적잖다.

최근 주요 공공택지에서는 잇따라 사업이 표류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이 경기도 성남 서현동 공공주택지구 사업에 내린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역 주민 536명이 국토부를 상대로 낸 공공주택지구 지정취소 소송1심에서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500가구 규모 개발 사업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8·4 공급 대책 발표 당시 정부가 서울 시내 핵심 주택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노원구 태릉골프장 개발 역시 표류 중이다. 주민들은 물론,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까지 나서 개발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 추정치만 나왔을 뿐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이 없다. 시범 사업 지역 선정을 위한 공모를 수렴한 후 민간 호응도에 따라 정책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여러 정치적 변수와 맞물리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의견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7호 (2021.02.24~2021.03.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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