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다 실기한 대일외교..관계개선·피해자 사이에 낀 정부

김영선,손재호 2021. 2. 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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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기말 관계개선 급선회
일본은 오히려 대화 문턱 높이기
'대일 투트랙' 방안도 안 먹혔다


일본에 강경일변도였던 문재인정부가 임기 말 급격히 태세를 전환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정권 교체 같은 역내 정세변화 등으로 인해 최근 일본이 대화의 문턱을 높이면서 정부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부가 사실상 손놓고 있던 과거사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여기에 일본이 추가보복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정부는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그동안 과거사 문제와 경제협력은 별개라는 ‘투트랙 접근법’을 표방해왔지만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등 스스로 과거사 문제에 매몰됐고, 이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주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만나면서 비핵화 협상 진전도 어렵게 만들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5년 가까이 강경책만 구사하다 대일 외교 기조를 전환할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사 ‘적폐청산’…투트랙도 무너졌다
과거사 문제는 문재인정부 출범과 동시에 한·일 긴장 수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적폐청산 과제 중 하나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목했고, 2018년 11월 위안부 합의의 산물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한·일 관계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7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기자회견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주간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해 10월 나온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한·일 보복전을 야기했다. 일본은 이후 ‘수출규제’,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로 맞대응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은 경제, 안보 영역으로까지 번졌다.

정부는 매번 ‘투트랙’ 접근을 내세웠지만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부품 국산화를 강조하는 등 반일감정, 애국심 등에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졌고,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보복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의 일련의 대응 메시지가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열렸던 1차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정부의 대일 강경모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함께 추진한 북한 비핵화와도 연관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방식은 남북 내지 북·미 관계에 진전을 내면서 훈풍이 불었고, 이런 견고한 남·북·미 구도에 일본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22일 “정부가 북한 문제를 최우선으로 관리하다보니 양자외교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며 “외교는 고차방정식인데 정부는 북한 문제만 잘 풀리면 다른 이슈들도 해결될 수 있다고 인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청와대는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고, 해법으로 잠시 떠올랐던 이른바 ‘문희상안(案)’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의 존중과 피해자의 의견을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내놓는 등 한동안 방관자적 입장을 이어갔다.

바이든 정부 출범에 부랴부랴 관계 개선…日은 강경대응
정부가 강제징용을 포함한 한·일 관계 개선을 본격적으로 도모한 것은 미국 대선 정국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자산압류 집행절차 효력이 발생한 것도 정부를 움직이게 만든 배경 중 하나였다. 정부로선 임기말 한·일 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고,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가시화하면서 미국이 강조하는 한·미·일 3각동맹 강화에 대비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본도 이즈음 미국과의 안보협력과 대미 로비력을 앞세워 정세변화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관계 개선 압박이 일본보다 우리 정부 쪽으로 좀 더 강하게 들어올 것”이라며 “오바마 행정부 때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강제징용 문제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미국이 “북한 문제를 한국, 일본과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쉽지 않은 상황을 맞게 됐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선결 과제로 한·일 관계 개선이 떠올랐고, 트럼프 행정부 때의 ‘일본 패싱’도 상쇄된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역할이 생긴 일본은 우리 정부에 소위 ‘아쉬울 게 없어진’ 상황이 됐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법을 요구하며 허들을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강경대응도 정부로선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산압류 집행절차를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강제집행을 통한 현금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개진했고, 이를 놓고 “일본과 피해자 사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정부가 사법부에 집행 절차를 늦춰줄 것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금전배상·사과요구 분리가 현실적 대안”
경색된 한·일 관계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간의 상견례를 겸한 전화 통화조차 성사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일각에선 일본과 우호적 관계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업무가 작동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는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지난달 27일 외무성에서 기자들에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첫 전화 회담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실적인 대안으로 과거사 문제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배상과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를 분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진단도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고수하면 일본 정부 및 기업에 대한 배상요구가 따라붙게 되는데, 이를 일본이 거부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도모하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피해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은 정부 예산으로 하고 일본에 대한 사과 요구는 별개로 가는 게 도덕적 우위에 서서 대일 외교를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사법부 판결에만 매몰되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영선 손재호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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