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굴러가는 '한국타이어'.. 법원판결 깔아 뭉개고 유족들에겐 회유와 협박

공장 노동자 사망 2007년 후 190명.. 목표는 산재 저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숨진 노동자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외침이 지속되고 있다. 대전 공장에서 열렸던 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시위 모습. 국민일보DB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알려진 것만 190명. 노동자 대부분이 원인 모를 질병으로 숨졌다. 전·현직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은 공장 내 작업환경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하지만 정부당국과 사측은 노동자 죽음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쿠키뉴스는 한국타이어 산재협회 도움으로 서면형식을 빌어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는 공장 내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회식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사고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됐습니다. 공포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외부로 발설할 수 없도록 협박을 하는 것이지요.”

-고 나우찬씨 부인 김순의씨

지난 2018년 한국타이어는 대전공장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 안모씨의 사망원인이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이라는 법원판결에 상소를 포기했다. 사실상 노동자 사망 책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업계는 풀이했다. 당시 법원은 한국타이어가 타이어 제조와 발암 물질 노출 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마스크 독려 행위만으로는 충분한 안전 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고, 안씨가 작업 도중 가장 많이 노출된 고무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한국타이어는 2018년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이는 산재가 인정된 부분에 대해 민사 합의가 되지 않아 소송을 진행한 것이고 판결내용 중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항소한 것”이라며 “지난 2007년과 2008년 역학조사 때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온 사실도 있다”고 회사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을 부정했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회사 측이 은폐와 거짓말로 노동자 사망 원인을 숨기고 있고, 산재신청도 하지 못하게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주장한다.

한국타이어 성형과에서 16년간 일하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나우찬씨의 부인 김순의씨는 “회사에서 금연운동 금주운동을 벌였는데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했다”며 “(이는)유해물질로 인한 중증질환과 집단사망이 흡연으로 인한 것이라고 조작하기 위해 상주하는 의사가 주요하게 하는 일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무벤젠 유기용제를 사용하고 있고 역학조사에서도 문제없다고 나왔다면서, 지속적인 시설 투자를 통해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대규모 역학조사 과정에서 93명의 사망을 확인한 후 지금까지도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회사는 유해물질로 인한 사망에 대해 기준치 이하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국제기준에서 타이어 산업을 1급 발암 산업으로 규정하고 있고 포괄적으로 발병 노동자들에게 산재를 인정하고 있다. 2016년 법원 판결에서도 기준치 이하여도 지속해서 노출됐을 경우 질병과 연관성이 있으며 회사는 유해화학물질이 유해하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이를 관리하지 않음으로 귀책사유를 인정하고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제품시험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2년 사망한 고 김시범씨 차남 김원진씨는 “연구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화학물질을 실험을 하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보다 고농축 맹독성 화학물질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27세 연구소 노동자가 입사 6개월 만에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음에도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유족들은 사측이 회유와 협박으로 산재신청을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유가족들은 “산재신청율은 0.98%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46명 사망자 중 산재인정자는 4명에 불과하다”며 “회사로부터 산재가 아니라는 말만 들었다. 그래서 산재신청도 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특히 유가족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몇 년째 입원치료를 받으며 산재 인정을 앞둔 노동자에게 회사가 찾아가 1억원을 줄 테니 산재신청을 취하하라고 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했고 결국 사망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다”고 밝혔다.

유가족을 대전지역 병의원들의 납득할 수 없는 ‘병진단’으로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한국타이어와 지역 병원들 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유가족들은 의심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대전 지역 모대학병은 한국타이어 협력기관이다. 유해물질로 질병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상하게 엉뚱한 치료만 해줬다. 그래서 산재신청은 어림도 없었고 심지어는 산업의학과(현재 직업환경의학과)가 없어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사망한 이모씨는 대전S병원에서 진행한 특수건강검진에서 물혹 진단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근육암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뇌 병변으로 쓰러지고도 산재 불승인된 송모씨도 치료 중 특수건강검진을 받았으나 두 번 모두 정상으로 처리됐다. 유족들은 “한국타이어 특수건강검진 기관은 공장에서 같은 제품을 찍어 내듯 회사의 오더를 수행해 정상으로 조작하는 기관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유족들은 최근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희망을 기댔다. 이제라도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 않고 보상도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순의씨는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병을 얻고 49세 젊은 나이에 사망한 남편을 생각하면 너무도 억울했다. 한동안 마음을 못 잡고 힘들었다”며 “한국타이어 의문사 및 위험물질 사용 등과 관련해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리고 피해자 전체에 대해 조속히 보상할 수 있는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윤은식 쿠키뉴스 기자 eunsik80@kukinews.com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