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들이 내 얼굴 짓밟아 변기에 넣었어, 20년 지나도 괴롭다"

강보현 2021. 2. 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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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요? 20년 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직장인 최진성(37·가명)씨는 최근 체육계 ‘학폭 미투’가 이어지자 중3부터 고3까지 폭행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하루하루를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보내고 있다. 최씨는 21일 “어린 시절 폭행을 당하며 생긴 이상행동이 요즘 더 심해졌다”며 “자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내뱉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분노감을 주체할 수 없을 땐 물건을 던지거나 주먹으로 문을 치기도 한다. 폭력을 당하며 자신도 모르게 체화한 폭력성이 통제되지 않을 때는 폭력적인 영상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유년 시절의 고통이 성인이 된 피해자의 삶을 계속 짓누르는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자 중에는 최씨처럼 학창 시절의 아픔을 계속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0년 여름 어두컴컴한 학교 화장실에서 당했던 폭행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씨는 “학생 세 명이 기분이 좋지 않다며 나를 화장실로 부르더니 문을 잠그고 폭행을 시작했고 분이 풀리지 않자 얼굴을 변기에 밀어넣고 발로 짓밟았다”고 말했다. 기억을 떠올리던 최씨의 손은 떨렸다. 그는 “한번은 대걸레 밀대로 눈을 찔러 망막이 찢어지기도 했고 ‘싸대기’를 수십번 맞은 날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유 없는 괴롭힘은 3년 내내 이어졌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했으나 누구도 출구를 마련해주지 않았다. 가해 학생에게 가방을 뺏긴 날 최씨 아버지는 “가방을 찾아오기 전에는 집에 못 들어온다”며 되레 최씨를 나무랐다. 고3 담임은 “네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괴롭힘)을 당한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학폭 문제가 불거질까 걱정한 담임 교사는 ‘아이들이랑 잘 지내지 못하면 팔을 부러뜨리겠다’며 최씨를 협박하기도 했다.

최씨는 “현재 폭로에 나서는 피해자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싶어도 CCTV 영상 등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진료 기록이 있다 해도 가해자가 발뺌하면 학폭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며 같은 학교를 다녔던 이들에게 증언을 부탁하기도 쉽지 않다. 최씨처럼 대다수의 학폭 피해자에게 ‘학폭 미투’는 딴세상 일인 셈이다.

물증이 있다 해도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과거를 들추기도 쉽지 않다. 피해자에게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겠다는 복수심보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경력이 무너질 두려움이 더 크다. 최씨는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게 될까 걱정돼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인 동시에 나의 치부이기도 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당할 만 했겠지’라며 낙인을 찍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겠지만 앞으로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고2때 자퇴를 했던 김민수(30·가명)씨도 “12년 전 겪은 사건들이 지금의 성격을 형성했다”며 “때때로 트라우마에 기인한 무의식적 행동도 나온다”고 털어놨다. 김씨 얼굴에는 가해자가 주먹으로 가격해 입술을 꿰맨 흔적이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책가방이 칼로 난도질 당하거나 돈을 뺏기는 일은 일상이었다. 김씨는 “한번은 체육 시간에 교복이 사라졌길래 누가 훔쳐 간 줄 알았는데 쓰레기장에서 명찰이 달린 내 교복이 찢긴 채로 버려져 있는 걸 봤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고 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지금도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는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걸면 대답은 하지만 먼저 말을 걸거나 질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김씨는 “당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누군가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놓으면 결국은 가해자 귀에 들어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다”며 “이때 생긴 ‘집단 불신’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교를 자퇴한 18살부터 22살까지 4년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씨 부모님은 김씨를 다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컴퓨터도 없애고 핸드폰도 빼앗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김씨가 집에서 했던 유일한 행동은 MP3 플레이어에 저장해둔 음악을 반복해 듣는 일 뿐이었다. 김씨는 “유일하게 고민상담을 하던 친척 형마저 해외로 가버리자 대화할 사람도 없어졌다”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매일 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형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당시 학교 측 대응은 담임교사에 따라 ‘복불복’이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보고하고, 학부모를 불러 상담하는 등 복잡한 과정에 선생님이 나서지 않으면 학교폭력 사실 자체가 은폐되는 등 전적으로 교사의 의지에 학폭 문제 해결이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선생님이 나서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반 애들 다 눈 감고 가해자는 조용히 손을 들라는 식으로 대충 해결하려 했던 선생님 때문에 바로 가해자의 보복이 들어온 때도 있었다”고 했다.

두 차례 정신과 상담을 받는 등 상처를 극복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소용 없었다. 김씨는 “신체 상태를 살피는 다른 병원과 달리 정신병원은 나의 이야기를 해야 의사가 진단을 할 텐데,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에서 누구와 대화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신과 의사의 계속된 질문이 오히려 압박으로 느껴져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이제는 평소에 상처를 자주 떠올리지는 않지만, 학교폭력은 늘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나를 괴롭히던 가해자가 TV에 버젓이 나오면 그때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사람들의 존경과 환호까지 받으면 피해자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며 “나 또한 불쑥 떠오를 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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