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동창' 적폐 낙인 뚫고 임기 4년 완주..KAIST 총장의 일침

최준호 2021. 2. 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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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총장이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KAIST 홍릉캠퍼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릉캠퍼스는 1975년 신 총장이 석사과정 생으로 공부한 곳이다. 당시엔 서울에만 KAIST가 있었다. 임현동 기자

세간에서 그를 표현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최초의 동문 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 초등학교 동창’, ‘인사청문회가 열린다면 단번에 통과할 인물’ 이런 말들은 그의 임기 4년 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 이마에 깊게 새겨진 주름 같은 것이다. 22일 4년 임기를 마치는 신성철(69) KAIST 총장 얘기다. 말 그대로 완주다. 그는 박 대통령 탄핵이 한창이던 2017년 2월 총장에 취임, 2년도 채 되지 않은 2018년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업무상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됐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와 공동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연구비를 부당하게 집행하고 제자 채용에 불법으로 관련했다는 내용이었다. 담당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1년이 넘게 수사했다. 하지만 결론은 불기소처분. 그새 장ㆍ차관이 바뀐 과기정통부도 항고를 포기했다. 중앙일보가 최근 서울 KAIST 홍릉캠퍼스에서 신 총장을 만났다.

Q : 지난 4년의 소회가 남다르겠다.
A : 마음 고생이 없진 않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고발사건이었다. 세계적 연구소와 국제공동연구를 하면서 거대시설을 활용하는데 조그만 이해가 있었어도 이럴 수는 없었다. 나와 관련된 젊은 연구자들이 겁박과 모욕을 많이 당했지만, 자세한 얘기는 굳이 하고 싶지 않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과기정통부도 항고하지 않고, 모든 게 원만하게 해결됐다. 과학기술과 감사 시스템의 선진화를 위한 반면교사가 됐으면 좋겠다.

Q : 올해는 KAIST 50주년이다. 지난 세월을 평가하자면.
A : 나는 KAIST 최초의 동문 총장이다. 석사로 입학한 게 1975년. 석사 3회였다. 그리고 50년을 거의 KAIST와 같이 보냈다. 돌이켜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가 있었다. 50년 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의 최빈국이었다. 국가가 산업화하는데 고급 과학기술이 절실했다. 엘리트들이 유학을 가면 돌아오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3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다. 놀라운 과학발전과 경제성장의 뒤에는 KAIST와 졸업생들이 있었다. 국내 반도체 리더급 인력의 25%, 이공계 교수의 20%가 KAIST 출신이다. KAIST는 벤처 사관학교다. 현재 네이버ㆍ넥슨 등 1200개 창업기업이 있다. 연간 총 매출이 14조원에 이른다.

신성철 총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 도중 KAIST의 향후 4년 동안 중점 추진할 7대 분야 20개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 총장은 총장직 연임에 도전했지만, 최종 후보 3배수에 들지 못했다. 그는 향후 과제를 차기 종장에게 물려주는 숙제라고 표현했다. 임현동 기자

Q : 그래도 미국 스탠퍼드대 등과 비교하면 창업기업의 차이가 크다.
A : 앞으로 다양하게 많이 나올 거다. ‘휴보 아버지’ 오준호 교수의 로봇 플랫폼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최근 코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지난 4년간 학내 창업원의 교수ㆍ학생 창업 지원이 90여 건, 투자받는 게 2000억원에 달한다. 기술이전 수입료도 2019년에 100억원을 넘었다. 20세기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가 전부였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앞서가는 대학들이 연구를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가장 앞선 곳이 스탠퍼드대다. 졸업생 창업자가 4만 명을 넘어섰고, 여기서 나오는 매출이 3000조원이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5배다. 이처럼 선진국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바탕을 이룬다. 반면 우린 대기업 몇 개가 흔들리면 나라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대학이 창업의 산실이 돼야 한다. 후임 총장에게 이런 숙제를 남긴다.

Q : 한국 이공계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말해달라.
A : 아직도 쫓아가는 연구에 매몰돼 있다. 정부가 요구하는 성공률 높은 과제, 단기적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며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혁신적인 연구를 하려면 장기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내엔 뛰어난 업적의 교수가 있더라도 퇴직하면, 연구실을 비롯해 모든 게 없어진다. 그래서 만든 게, 후배 교수가 연구실을 물려받는 초세대 협업연구실과 싱귤래리티교수 제도다. 싱귤래리티 교수는 인류 난제를 개척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게 목적이다. 최장 20년간 연구평가에 자유롭다. 우리나라는 이제 모방을 벗어나 창의 선도로 가야 한다.

서울 청량리에 있는 KAIST 홍릉캠퍼스는 신 총장이 석사 시절을 보낸 곳이다. 지금은 경영대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현동 기자

Q : 최근 블룸버그가 한국을 세계 최고의 혁신국가로 꼽았는데.
A :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선진국 대사들과 교류해보면, 그들은 실제로 한국을 혁신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객관적 지표로 봐도 과학기술 논문 세계 12위, 국제특허 5위 등 엄청나게 성장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질적인 지표로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세계 주요논문 피인용지수는 30위, 특허강국이라 하지만 연간 기술 수입료가 4조원에 이르는 기술 수입국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첫 노벨과학상을 받기까지 80년이 걸렸다. 우리도 앞으로 10년 뒤쯤인 2030년엔 세계적인 열매를 맺을 시점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Q : 대학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총장상은 뭔가.
A : 세 가지 핵심요소가 있다. 첫째가 장기적 리더십이다. 국가도 그렇지만 대학을 변화시키는데, 4년 임기로는 부족하다. 세계적인 대학의 총장은 최소 10년을 한다. MIT는 160년 역사에 현재 17대 총장이 이끌고 있다. 둘째는 우수 교원 확보다. 뛰어난 교수에 뛰어난 학생이 나온다. 지금 세계 대학 사이에 치열한 교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셋째가 발전 재원 확충이다. 미국 총장의 첫째 미션이 기금 조성이다. 나도 총장 재임 기간 총 1950억원의 기금을 모았으니, 하루 1억원 이상을 한 셈이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 신성철

「 1952년 대전 생, 69세

서울대 응용물리학사
KAIST 고체물리학 석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 박사
한국표준연구소 선임연구원
KAIST 자연과학부 물리학과 조교수
KAIST 부총장
제10대 한국자기학회 회장
제24대 한국물리학회 회장
초대,2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2015)
제16대 KAIST 총장(20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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