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똥밭' 된 수십억 명물..고통받는 전주 한옥 누각

김준희 2021. 2.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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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개교 70년 기념 백제식 건축물
53억원 들인 누각·쉼터는 소통의 장
"청소로 안돼 그물망으로 봉쇄 계획"
지난 19일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건지광장 내 전통 누각 '문회루'. 바닥 곳곳에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하다. 전주=김준희 기자



"누각에 웬 비둘기? 바닥 배설물 얼룩"
"꼭 비둘기 집 같네요."

지난 19일 오후 1시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캠퍼스. 업무차 광주에서 온 정모(47)씨가 교정 한가운데의 건지광장(乾止廣場) 내 전통 누각 문회루(文會樓)를 보고 한 말이다. 그는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명물이라고 해서 왔더니 천장 밑에 비둘기가 앉아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누각으로 바짝 다가가자 천장 부근 대들보에 웅크리고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휙 하고 날아갔다. 바닥을 보니 곳곳이 희고 검은 비둘기 배설물로 얼룩져 있었다. 대들보와 기둥도 한가지였다. 악취가 진동했고, 깃털도 흩날렸다.

지난 19일 전북대 건지광장에서 졸업생과 가족들이 전통 누각 '문회루'를 배경 삼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졸업생 기념 촬영…지저분해 가길 꺼려
건지광장 주변에는 학위복을 입은 졸업생과 가족들로 북적였다. 사흘 후의 2020학년도 학위 수여식을 앞두고 누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북대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학위 수여식 참석 인원을 최소화했다"며 "대신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학생들에게 학위복을 빌려주고 건지광장·중앙도서관·박물관 등에 기념 촬영을 위한 포토존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졸업생과 가족 대부분은 누각에 오르지 않았다. 비둘기 배설물로 바닥이 지저분한 데다 악취가 심해서다. 일부는 누각에 오르려다 발길을 돌렸다.

지난 19일 비둘기 한 마리가 전북대 누각 '문회루' 천장 밑 대들보에 앉아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누각 바닥 곳곳이 비둘기 배설물로 얼룩져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문회루' 대들보와 기둥에도 비둘기 배설물이 묻어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지역민과 소통하는 장소라더니…"
전북대는 2018년 9월 18일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국비 등 53억원을 들여 건지광장을 만들었다. 교내 옛 분수대 자리(1만2000㎡)에 전통 누각과 병풍 조형물·청운정·테라스·쉼터 등을 조성했다.

전북대에 따르면 문회루는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백제 건축 양식인 하앙식(下昻式) 기법을 적용한 한옥 누각이다. 당시 전북대 측은 "이 공법은 곡선을 그리며 날개처럼 쭉 뻗어가는 처마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전통 한옥 기법의 하나"라며 "대학이 소통하고 지역민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살리고자 공간과 동선 체계 등을 고려해 건지광장을 꾸렸다"고 홍보했다.

지난 19일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건지광장 내 전통 누각 '문회루'. 전북대는 2018년 9월 18일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국비 등 53억원을 들여 문회루 등 '건지광장(乾止廣場)'을 만들었다. 전주=김준희 기자



'비긴어게인' 버스킹 장소로 유명세
문회루는 지난해 7월 JTBC '비긴어게인'에서 크러쉬·소향·적재가 이 누각을 배경으로 버스킹 공연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전주에 가면 꼭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반년 만에 재학생조차 가길 꺼리는 흉물이 됐다. 이를 두고 "전북대가 전주의 명소라고 자랑하던 누각을 오랫동안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인 박모(42·전주시 우아동)씨는 "지난해까지 누각 야경이 멋져 외부에서 지인이 오면 일부러 데려갔다"며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흉물로 변해 더는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2009년 악취·배설물 등으로 시민과 건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비둘기가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신고할 경우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포획할 수 있다.

지난 8일 전북대 전통 누각 '문회루' 모습. 전북대 측은 "설 연휴를 앞두고 청소했다"고 했다. [사진 전북대]



전북대 "매일 청소하는데도 역부족"

전북대도 "비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입장이다. 전북대 관계자는 "누각 청소 등을 전담하는 관리자가 있고, 일반 직원들도 수시로 가서 점검하고 있다"며 "매일 아침 청소를 하는데도 비둘기들이 수시로 와서 배설물을 싸고 가는 바람에 긁어내도 흔적이 남고 완벽하게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깨끗이 하려면 물청소 내지는 화학 약품을 써야 하는데 하루만 지나도 비둘기 배설물이 그대로 굳는다"며 "청소로는 역부족이어서 비둘기들이 아예 누각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르면 다음 주쯤 그물망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건지광장 내 전통 누각 '문회루'. 바닥 곳곳에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하다. 전주=김준희 기자



전문가 "비둘기 쫓아내는 방법뿐"

한 비둘기 퇴치 전문 업체 관계자는 "배설물이 쌓였다는 건 비둘기가 거기에 산다는 의미"라며 "비둘기 배설물은 강한 산성을 띠고 독해서 그대로 두면 나무가 썩는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물청소나 약품을 써서는 배설물을 없앨 수 없다"며 "비둘기를 쫓아내거나 막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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