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죄해야"→"한일관계 중요" 몇시간만에 말바뀐 靑 왜
과거사 문제를 두고 청와대가 19일 하루 동안 묘하게 결이 다른 메시지를 연이어 발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이낙연 대표를 비롯,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직후 참석자들의 전언으로 문 대통령이 강제징용 배상 및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고 당사자가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돈을 대신 갚아준다고 해결되면 진작 해결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당사자들이 그런 방식을 해결이라고 납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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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日 진심어린 사죄에 달려”
대법원은 2018년 일본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지난달에는 서울중앙지법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도 “원고들이 동의하지 않기에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에 (문제 해결이)달린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를 두고 최근 들어 한ㆍ일 관계 개선에 집중하던 정부 기류에 다시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과거사 문제로 양국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서 정부가 먼저 일본 측에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제안을 해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관측이 외교가에선 지배적이었는데,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일본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처럼 들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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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해법’ 강조하더니…
문 대통령 말대로 원고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법적 절차를 통해 한국 내 일본 기업 및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한ㆍ일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전에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일본과도 외교적 협의를 통해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을 도출하는 게 관건이었다.
문 대통령 역시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제집행의 방식으로 그것이 현금화된다든지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한ㆍ일 양국 간의 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단계가 되기 전에 양국 간에 외교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말해 정부의 외교력 발휘에 관심이 모아지던 터였다. 그런데 이날 간담회 발언은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다면 현금화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한 것도 최근 수차례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정부의 공식 합의였음을 인정한다”고 한 것과도 배치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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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베 “총리대신으로서 사죄”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본이 정부 책임과 사죄를 전제로 예산 10억엔을 거출함으로써 한국은 이를 사실상의 배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한 게 당시 합의의 핵심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를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또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개인 자격도 아닌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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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한ㆍ일관계 정상화 취지 발언”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몇시간 지나지 않아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추가 입장을 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정부 간 합의가 이뤄져도 피해자 동의가 중요하다는 평소 입장을 반복한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현재 상황을 설명한 뒤 한ㆍ일 간에는 협력이 필요하고 한ㆍ미ㆍ일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당에서도 한ㆍ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 대변인은 “한ㆍ일 관계 정상화 노력이 말씀의 취지였다”고 굳이 한 번 더 부연했다.
청와대의 해명으로 해프닝처럼 지나갔지만, 이 자체가 대일 기조 변화와 관련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했다는 방증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외교가 인사는 “지난달 중앙지법 판결 뒤 외교부가 ‘판결은 존중하는데 위안부 합의가 공식합의임을 상기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을 때부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 엿보이고 있다”며 “한ㆍ일관계를 풀자고 마음먹었으면 우선 큰 전략적 기조부터 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정부 각급에서 일관된 메시지가 나와야 일본도 우리 정부의 노력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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