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와중에 나홀로 호황.. 이 카페가 붐비는 까닭 [림수진의 안에서 보는 멕시코]
[림수진 기자]
그 때 왜, 내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바그다드 카페.'
성님(형님)들은 일시에 되물으셨다. "뭐라고?"
그런 영화가 있다고, 그 영화의 주제곡이 이러하다고, 바그다드는 저 멀리 아라비아 세상 어느 나라의 수도라고,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졌지만 성님들에겐 이름 따윈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흔쾌히 바그다드 카페를 받아들이셨다. 다만, 바그다드라는 발음이 어려운 건지, 아니면 생소한 건지, 여전히 가끔 물으신다. "림~ 그러니까 그 카페 이름이 뭐라고?"
▲ 어느 일요일 오후, 바그다드 카페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일요일 하루를 보낸다. 웃고 이야기하고 춤 추며. |
ⓒ 림수진 |
바그다드 카페
순전히,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이었다. 마을이 봉쇄되면서 인근 도시로 나가는 마을의 남쪽이 막혔다. 게다가 마을 안에서도 많은 곳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장도 문을 닫았고 성당마저 문이 닫혔으니, 성님들은 딱히 오고 갈 곳이 없었다. 마을의 관공서나 가게에서 일을 하던 성님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춤이 빠질 수 없다. 날이 어두워지면 모닥불을 피워둔 채 춤을 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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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마을이 봉쇄되었을 당시 이제 막 잎을 틔우던 사탕수수들은 그 새 우리 머리 위로 훌쩍 자랐다. 그 길을 걸어온 시간들이 1년을 향해간다. 그 사이 길 곳곳에 흔전만전 망고, 구와바, 스타프룻 같은 열매들이 쏟아져 내렸고 약초들이 적당히 먹기 좋게 말라줬고 농익은 사탕수수는 늘 길 언저리 어디라도 널려 있었다. 그러니 가게나 민가 하나 없는 50여리 길을 걷는다 해도 목마르고 배고플 일은 없었다.
그 길 어디쯤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바로 옆 사탕수수 밭 주인인 돈 루이스(47)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 언저리다. 1910년대 멕시코 혁명이 일어났고 그 혁명 끝에 농민들에게 에히도(ejido)라 불리는 마을 공동경작지가 분배되던 시절 돈 루이스의 할아버지가 받은 땅이다. 마을에서 정확히 7km 떨어진 곳이니 영락없이 말을 타고 다녔어야 할 거리다. 어쩌면 돈 루이스의 할아버지는 공동경작지 중 가장 안 좋은 땅을 받은 셈이다. 중심에 작은 마을을 두고 원형으로 둘러싸인 에히도 토지 중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이었으니.
돈 루이스의 할아버지가 분배 받은 땅 저편으로는, 같은 사탕수수 밭이라도 마을 소속이 달라진다. 그러니 그 땅의 경계는 곧 마을 간 경계였을 것이고 그렇게 경계를 표하기 위해 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을 것이다. 그 나무가 자라 바그다드 카페의 지붕이 되었다. 그늘을 멋지게 드리운 무화과나무 아래 낡은 테이블과 나무 둥치 의자는 자식 없이 부인과 둘이 조용히 살아가는, 말 수는 적지만 제법 섬세한 돈 루이스 작품일 것이다. 무화과나무 지붕이 있다지만, 비와 이슬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으니 오래 전 만들어진 나무 테이블은 세월의 더께를 인 채 어찌 보면 예술작품일까 싶은 모습으로 스러질 듯 말 듯 그 자리에 서 있다.
▲ 바야흐로 요즘은 사탕수수 수확의 계절이니 길에는 언제나 사탕수수가 널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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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영화 같은 사연들
오늘의 주인공은 M성님과 L성님이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M성님은 태어나던 날 엄마를 잃었고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봤다. 할머니와 함께 살다 10년이 지나 열다섯 살 먹었을 때, 무작정 미국으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 시절 미국에 가는 일이란 여권과 비자를 갖추지 못해도 비교적 수월하여 가볍게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곳 소읍 같은 마을 출신 청년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의 지독한 폭력으로 정신 질환까지 앓다가 역시나 그 곳에 살던 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그 결혼 생활에서 아들 하나를 얻었다.
▲ 바그다드 카페에는 텔레비전도 있다. 채널은 오직 하나, <바그다드 카페의 자연> 이 24시간 동안 화면에 비춰 생방송된다. 해가 뜨면 해가 뜨는 대로, 달이 뜨면 달이 뜨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어느 날 이른 아침 바그다드 카페 무화과 나무 너머에 해 뜨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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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이라면 어디나 그곳 나름의 위계와 질서가 있는 법, 바그다드 카페에서 M성님의 입김이 쎈 편이다. 일찍이 미국을 다녀오고 (아픈 사연이야 차치하고), 또한 젊은 시절 이후 멕시코 제 2도시 과달라하라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M성님이 바그다드 카페에 모이는 마을사람들 중 유일하게 하와이를 가봤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 끝이라도, '내가 하와이에 가보니까 말이지...'라는 말이 나오면 더 이상 받아 칠 말이 없다. 영화 속에서야 '니가 가라 하와이'라지만 우리 마을 바그다드 카페에선 '가봤나, 하와이?'가 오히려 먹힌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연은 결혼식을 올린 후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다시 하와이로 돌아갔으나, 영주권이 없는 M성님은 작년 이후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하와이에 관광객 입도가 허락되지 않아 남편을 따라가지 못하고 바그다드 카페에 남았다. 게다가 M성님은 이미 미국에서 불법 체류한 전력이 있어 비자든 영주권이든 남편이 있는 하와이에 가기 위한 서류 과정이 호락호락하진 않은 모양이다.
마을 성님들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M성님 남편의 과거 여성 편력이 워낙 화려한 관계로, 은근히 걱정들이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내 나라 대한민국에도 있다고 하였더니, 성님들이 이구동성 멕시코 버전으로 답을 하셨다. '멀리 떨어진 사랑은 곧, 네 사람의 행복'이라고.
▲ 가끔 다 같이 모여 바그다드 카페의 텔레비전을 시청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
ⓒ 림수진 |
게다가 손맛이 좋아 마을 잔치집마다 불려 다니셨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을에 딱 두 개 있는 식당 모두 L성님의 자매님들이 운영한다. 고급 식당이라기보다는 서민음식을 파는 백반집 수준이다. 16명의 형제 가운데 14번째인 L성님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하여 60에 가까운 지금까지도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다.
L성님의 남편은 열다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40년을 일한 덕에 미국으로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 요즘 같이 환율이 엎어져 미국 달라 앞에 멕시코 돈이 한낱 종잇조각 같은 시절에는 날이 갈수록 L성님댁 살림이 윤택하여질 수밖에 없다. 하여, L성님은 매일 새벽 '북쪽(미국)'에 대한 감사 의례로 하루를 시작한다. ¡Gracias al Norte!
L성님의 열다섯 형제 중 둘째 오라버니는 수십 년 전 마을 술집에서 벌어진 싸움을 말리다 싸움꾼 아무개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20대 초반이었고 독신이었는데, 아들을 잃은 L성님의 어머니가 당신 아들에게 총을 쏜 아무개를 감옥에 넣는 대신 어디든 당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도망가 살라 하셨다. 엄마 없이 자란 아무개 자식들에게 아버지까지 없이 자라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아무개가 바로 M성님의 아버지다. M성님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어느 날 초저녁 얼굴에 피를 묻힌 채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와 총을 집어 들고 나가던 장면이었다. 그 날 L성님의 오라버니가 M성님의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 달이 뜬 새벽, 성님들이 바그다드 카페를 향해 간다. 저 사탕수수 밭을 너머에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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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준 선물
L성님도 당신 어머니를 닮았을까. 음식 맛은 둘째 치고 바그다드 카페에 올라가는 날이면 바리바리 음식을 준비하신다. 20여 리 길에 큰 함지박 가득 담긴 음식과 장작을 이고 지고 가는 일이 쉽지 않을 터, 어쩌다 보면 제일 젊은 내 등짐이 늘 한 가득이다. 매번 볼멘소리로 제발 음식 해가지 말자고 투덜대지만 여전히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오신다. 꾀를 내어 이번엔 커피만 싸가자고 제안을 한 날이면 어지간한 드럼통만한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오신다. 그러니 바그다드 카페엔 늘 커피가 차고도 넘친다.
그렇게 바그다드 카페는 우리 마을 성님들에게 작은 우주가 되었다. 그 곳에서라면 심신의 피로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걱정도 잠시 잊는다. 당신들은 생전 카페라는 곳엘 가본 적 없는데, 바그다드 카페 덕분에 고급문화를 향유한다며 감격에 젖는다. 언젠가부터는 서로 띄엄띄엄 거리를 둬 앉는다. 오직 새소리와 바람소리뿐, 때론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곳이니 5미터 혹은 10미터 거리를 둬 앉더라도 서로의 목소리는 충분히 서로에게 닿는다.
▲ 어느 날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바그다드 카페에서의 아침식사. 무화과 나무에 등을 달아 새벽녘 어둠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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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이는 곳이니, 바그다드 카페에도 가끔 삐거덕 잡음이 인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삐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늘 이야기와 춤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든 배고프면 하다못해 마른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성님들은 바그다드 카페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야생 호박을 주워 모은다. 부활절에 호박엿을 하겠다는데, 오늘 사순절이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40일 후에는 모두 바그다드 카페에 모여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며 호박엿을 먹을 것이다.
▲ 바그다드 카페에서 바라본 돈 루이스의 사탕수수 밭. 희끗희끗 사탕수수 꽃이 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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