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문'에 신음하는 고래그림..세계유산 등재 첫관문 통과

백경서 2021. 2.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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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장마로 물에 완전히 잠겨 있다. 연합뉴스

1년에 절반가량 물에 잠겨 있는 바위 그림, ‘물고문’을 맞고 있는 국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붙는 다양한 수식어다. 고래 사냥 등 선사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바위 그림인 반구대암각화는 학술 가치가 높지만, 장마 때마다 물에 잠겼다가 나오길 반복하고 있다. 이때문에 암각화 보존은 울산의 숙원 사업으로 꼽힌다.

이런 반구대암각화가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지정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문화재청이 지난 16일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유산 우선등재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기 위한 국내 심의 단계는 잠정목록에 이어 우선등재목록, 등재신청후보, 등재신청대상 순이다. 반구대암각화는 2010년 이미 잠정목록에 올랐지만, 보존 문제 등으로 11년간 다음 단계인 우선등재 대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반구대암각화 내 고래 그림들. [사진 네이버지식백과]

하지만 이번 우선 등재 대상 선정을 계기로 보존 문제 해결과 주변 정비 등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울산시는 18일 2025년 반구대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울산시는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관리를 위한 사업과 반구대암각화 이야기를 주제로 한 관광 자원화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민과 방문객 편의를 위한 각종 보존정비사업도 추진한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우선등재 선정을 계기로 인류 최초의 기록 유산인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가치와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구대암각화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바위인 반구대(盤龜臺) 일대 바위 10여 개에 그려진 300여 점의 그림이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천에 있다.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선이나 면을 파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고래·거북 등 바다 동물뿐만 아니라 멧돼지·호랑이 등 육지 동물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중 고래는 60여 마리로 가장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이 고래의 세부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당시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선사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반구대암각화 실측 도면. [사진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

반구대암각화는 매년 장마 때마다 물에 잠긴다. 이는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과 관련이 있다. 사연댐 수위가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53m를 넘으면 침수가 시작돼 56.7m가 되면 그림이 완전히 잠긴다. 장마가 올 때마다 1년에 3개월 이상, 길게는 8개월 동안 물에 잠긴다. 이때 그림이 훼손된다. 그렇다고 사연댐에서 물을 빼면 울산 시민이 쓸 물이 부족해진다.

울산시는 그동안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구하고,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왔다. 지난해부터 환경부와 경북 청도군 운문댐의 물을 울산으로 끌어다 쓸 수 있는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연댐에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수문 설치를 위한 용역 등을 진행하면서 반구대암각화 보존 방안을 수립 중이다.

특히 이번에 우선 목록에 등재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빠르게 해결 방안을 찾을 거라는 게 울산시의 기대다. 송 시장은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맑은 물 확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낙동강 통합 물관리 방안이 한국판 뉴딜에 반영돼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울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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