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학점제, 무늬만 학점제? 교육 혁신 견인?

이도경 2021. 2. 2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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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전면 시행 체크포인트


교육부가 지난 17일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심 교육공약으로 발표한 지 4년여 만에 밑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학생 스스로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고교 생활을 설계토록 하는 혁신적 내용을 담고 있다. 정권 홍보용 미사여구나 장밋빛 전망만 난무하고 실질적으로 고교 교육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무늬만 학점제’일지 실질적 중등교육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체크포인트 세 가지를 짚어봤다.

①학교 규모 적정화

고교학점제는 사실 위험한 제도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산어촌 학교들의 교육 격차를 지금보다 벌릴 수 있다. 학생에게 수업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학교가 다양한 수업을 개설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 수가 많은 대도시의 경우 비슷한 진로·적성을 가진 학생을 모으기 쉽다. 교사 인력도 풍부해 다양한 수업을 개설하기 용이하다. 교사들이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예를 들어 드론공학)이라면 외부 강사 자원을 구하기도 수월하다.

대학들은 고교 내신 성적과 과목 이수 현황 등을 평가해 학생을 뽑게 된다. 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 학교별로 개설되는 과목의 양이나 질에서 차이가 발생하면 대입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서울의 A대학 물리학과에서 고교에서 이수한 물리학 학점에 가산점을 부여한다면 물리학 관련 과목을 많이 개설하고 있는 학교 출신이 일방적으로 유리해진다.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과도 엮여 있다. 문재인정부는 자사·외고·국제고 제도 폐지에 따른 ‘하향평준화’ 비판을 고교학점제로 돌파하려 한다. 고교학점제 도입 시 일반고 안에서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실천한 것이 이번 추진 계획에서 발표한 ‘고교 과목구조 개편안’이다. 특목고에서 배우던 전문교과의 ‘전문교과Ⅰ’ 과목을 보통교과의 선택과목으로 넣었다(표 참조). 특목고가 굳이 없어도 특목고 수준의 심화과목을 일반고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학교가 일정 규모 이상이 돼야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②학습 공간 확대와 경제논리 극복

교육부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고교학점제가 뿌리부터 흔들린다는 점을 알고 관련 대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정부 대책은 ‘학습 공간 확장’과 ‘교사·강사 인력 확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인근 고교들이 연합해 수업을 개설하는 ‘공동교육과정’이 있다. 오프라인 공동교육과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온라인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여러 학교 학생들이 원격강의를 듣는 방식이다.

공부 공간은 지역사회로도 확장된다. 지역 연구기관, 기업, 대학을 학교 교육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대학 실험실과 고교의 과학 교실이 온라인으로 실시간 연동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본다. 지역 대학의 박사급 인력을 학교 수업에 활용하거나, 학교 밖 학습 경험도 학점으로 인정하는 방안 등도 추진된다. ‘수업은 교사만, 공부는 학교에서만’이란 오랜 공식이 깨지는 것이다. 이런 해법들이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가 고교학점제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려면 가르치는 사람도 늘어야 한다. 지역의 작은 학교를 도는 순회교사를 늘리고, 교사 1인이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지만 교사 수를 늘리지 않고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긴 어렵다. 교육부가 지난해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29곳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학점제를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현재보다 교사가 적어도 12%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특히 12학급 이하 소규모 학교에서는 필요한 교사 비율이 43%로 치솟았다. 교사 확충 없이는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관건은 교육부가 ‘학생 수가 감소했으니 교사 수도 줄여야 한다’는 경제 논리로 무장한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을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다. 교육계에선 교육부 단독으로 불가능하고 정권 차원에서 추진해야 가능할 걸로 내다본다.

③교과 이기주의와 수능 영향력 약화

고교학점제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과목과 시험 범위 축소는 불가피하다. 수능의 과목 수와 시험 범위는 고교학점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1학년 때 공통과목을 이수하고 2, 3학년 때 수능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면 고교학점제 취지는 무색해진다. 대입에서 수능이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고교들은 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 위주로 수업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

수능 과목 수와 시험 범위 축소가 쉬운 것은 아니다. ‘과목 이기주의’와 연결돼 있어서다. 교원 양성기관과 관련 학회, 교사 집단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수능이 빠지는 것에 반감이 강하다. 과목의 위상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육과정과 수능 제도 개편 때마다 교육부가 ‘공적’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교육부가 수시·정시 통합과 논·서술형 수능 도입 등 대입 제도의 큰 폭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어 새 대입제도가 확정되는 2024년 초까지는 고교학점제의 성패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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