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의 직격인터뷰] 사법부 수장이 정치권 눈치 보는것, 이게 신 사법농단
'헌법 감각·의지' 안 보인 대통령
스스로 비판했던 '제왕' 돼버려
'모두의 대통령' 전환만이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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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쓴소리 한 원로 헌법학자 허영
헌정 사상 첫 부장판사 탄핵소추의 역풍이 사법부에 휘몰아치고 있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과 지난해 5월 나눈 사표 관련 대화 녹취록을 공개한 이후 거짓 해명과 탄핵거래 의혹으로 대법원장이 궁지에 몰렸다. ‘탄핵돼야 할 사람은 오히려 대법원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양승태 사법부를 해체한 김명수 사법부도 이대로 침몰하는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헌법학 권위자인 허영(85)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게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독일 대학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다가 군사정부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에 귀국, 헌법학의 새 관점인 ‘동화적(同化的) 통합론’을 주창했던 그다. 저서 『헌법 이론과 헌법』을 통해 ‘헌법은 국민의 동화적 통합을 위한 가치 질서다. 국민의 기본권 실현을 위해 권력을 통치기관에 한시적으로 위임한 것이고 여기에 국가 권력의 한계가 있다’고 설파했다. 유신 헌법과 권위주의 정권의 독재 정당화에 쓰였던 ‘결단주의’(헌법은 국민 다수가 동의해 정치적으로 내린 결단이며 다수의 결정이 모두 옳다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원로 헌법학자는 코로나19 확산이 걱정된다며 언택트 인터뷰를 제시했다. 그의 e메일 답신은 논리 정연했고 통화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 자신의 헌법철학에 근거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 통치 방식과 ‘위헌적 행위’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경희대 법대 선·후배 사이라는 사적 인연이 무색했다. 현안부터 파고들었다.
Q : 국회의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소추 의결을 어떻게 보나.
A : “과정·절차·사유 등에서 정당성이 전혀 없는 보여주기식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 1심이 무죄를 선고한 임 부장판사의 판결문에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소추 이유다. 그러나 판결문의 이유 설명은 주문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논증의 과정일 뿐이고, 주문이 판결의 핵심이고 결론이다. 판결 이유 설명 중의 한 문구를 탄핵사유로 삼는 것은 법리적으로 난센스다. 탄핵 당사자에게 해명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도 적법절차 원리에 어긋난다.”
Q : 대법원장의 사표 수리 거부 이유, 납득되나.
A : “법관징계법령상 임 부장판사는 사표 수리 거부 대상이 아니다. 특히 대법원장이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국회(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논의 때문이라고 한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인격과 자질이 의심되는 중대한 일탈행위다. 사법부 수장이 법관의 사표 수리 여부까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결정한다는 건 사법권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인 처사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그게 ‘신(新)사법농단’이다. 정치적인 이유와 자기 보신을 위한 위법 행위라서 충분히 탄핵사유가 된다. 임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 153명이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각계의 변호사 155명이 자원한 이유가 뭐겠나. 법관대표회의도 입장을 밝혀야 하는데 꿈쩍하지 않는다. 사법부 정치화의 현주소다.”
Q :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견해는.
A :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죄명으로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100명 이상의 법관을 검찰 수사의 먹잇감으로 내던져 사법이 더 나아졌나.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 대법원장이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밀어부친 ‘사법농단 세력 척결’의 목표도 결국은 사법부의 주류세력 교체 아닌가. 조선시대 사화(士禍·사림의 화)에 버금가는 사화(司禍·사법의 화), 즉 ‘사법의 정치화’, ‘사법 길들이기’에 다름 아니다. 최근 사법농단 사건이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돼 실체마저 의심받고 있다.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는 다른 법관들에게 잘 알아서 재판하라는 정부·여당의 겁박이자 경고 말고 달리 해석하기가 어렵다.”
Q : 문재인 정부 사법부를 평가한다면.
A : “문민정부 이후 대법원 역사에서 ‘코드 대법관’들로 채워진, 가장 편파적 구성이다. 그러다 보니 이념 조직인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사법부 요직을 차지하는 편향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최근 법관 인사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된 대표적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Q :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재판이 좋은 재판”이라는 데는 동의하나.
A : “그게 어떤 의미냐가 중요하다. 독일의 헌법재판소와 모든 법원은 판결을 선고할 때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고 밝힌다. 이는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일치하는 재판을 의미한다. 국민 여론에 따르는 재판이 아니다. 재판은 여론에서 자유롭게 오로지 법리적 판단의 결과여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부터 견강부회격 정치 재판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 은수미 성남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사건 등이 그렇다. 그나마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건에서 일선 판사들이 진영에 상관없이 ‘법의 지배’가 뭔지를 보여준 것은 다행이다. 사법의 정치화를 막으려는 현장의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한다.”
Q : 향후 사법개혁의 방향은.
A : “사법권의 독립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인선부터 중립적인 기구에서 이뤄지도록 대통령의 자의적인 코드 인사권을 견제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권도 실질적인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이념 중립적인 재판의 기능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법원 내 이념 서클은 당장 해체해야 한다.”
Q : 검찰개혁에 대한 견해는.
A : “사법개혁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바라는 검찰개혁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하고 형평성 있게 수사·기소권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검찰의 힘을 뺏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와 공소권 행사를 통제하는 쪽으로 갔다. 뺏은 권한은 ‘충견’ 경찰과 위헌적인 공수처에 나눠줬다. 그나마 남겨둔 6대 범죄 수사권을 아예 박탈하려고 중대범죄수사청 신설도 추진 중이다. 결국 본질은 검찰 무력화, 검찰 장악이다. 발상 자체가 위헌적이다.”
Q : 이 정부 통치 방식과 정책 추진의 문제점은.
A : “한마디로 헌법에의 의지 또는 헌법 감각이 없어 보인다. 원전 폐쇄 등의 선거 공약을 국가 정책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밟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국무회의는 패싱하고 청와대 참모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선거 공약의 합법적 정책화 과정은 생략됐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엔 사찰 DNA가 없다’는 주장(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에 빗대자면 애초에 헌법 DNA가 없었다. 법치주의가 망실된, 불법적 의식 구조가 문제의 근본이다. 그러다보니 문 대통령은 스스로 그토록 비판하던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 3권(입법·사법·행정) 위에 군림하고 있다. 입법부인 국회를 하명기관으로 만들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를 코드 측근 인사로 채워 3권간의 견제와 균형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Q : 가장 위헌적인 통치 행위를 꼽는다면.
A : “매우 총체적이라서 (어느 하나를) 딱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Q :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 문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더 많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A : “동의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최순실 게이트’로 요약된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여러 권력형 비리사건에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고 있지 않은가.”
Q : 현 정부에 조언할 게 있다면.
A : “지금까지 보여온 아집과 독선적인 통치행태를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매일 아침 한번씩 취임사를 읽고 자문해 보길 권한다. 나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있는가’ ‘평등과 공정과 정의는 실현하고 있는가’ ‘국민의 자랑으로 남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이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편가르기의 분열정치를 청산하고 팬덤정치에서 벗어나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런 환골탈태만이 퇴임 후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 ◆허영
「 1936년생. 경희대 법학과 졸업, 독일 뮌헨대학 박사, 독일 바이로이트대학 교수, 경희대·연세대 법학과 교수, 헌법재판연구소 초대 이사장.
」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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