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뉴스&체크] 27년차 베테랑 파일럿은 왜 거리의 투사가 됐을까
대리운전·일용직·식당 알바로 생계
창업주 이상직은 민주당 재선 의원
"여당은 말만 진보, 실은 노동자 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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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 사태 1년
다음 주면 이스타항공 사태가 꼭 1년을 맞는다. 지난해 2월 25일 마지막 임금(40%) 지급 후 직원들의 생계는 모두 끊겼다. 10월 14일엔 1200여명의 근로자 중 절반(605명)이 정리해고됐다. 그 사이(7월) 노조는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을 조세포탈·횡령 등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달 검찰이 이 의원의 조카(자금담당 부장)를 구속하며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기업회생 절차도 본격화 됐다.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5월 20일까지 인수협상 절차를 마무리한 후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르면 6월부터 국내선 운항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3월부터 모든 노선이 멈췄고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까지 무산되며 파산 위기에 몰려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회사가 망가지고 직원들이 벼랑 끝에 몰리는 동안 이 의원은 탄탄대로를 걸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총선에선 재선(전북 전주)까지 성공했다. 성사 직전까지 갔던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이 이뤄졌다면 수백억 원의 차익도 남길 수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마음은 어떨까. 박이삼(52) 노조위원장은 “오너도 문제지만 수수방관하는 여당이 더욱 실망스럽다”고 했다. “표가 필요할 때는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막상 해고돼 어려움에 빠진 노동자들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이 의원의 탈당으로) 꼬리만 자르고 나 몰라라 하는 여당에 화가 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원래 잘 나가던 파일럿이었다. 1994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 소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으로 이직해 제주항공을 거쳐 이스타항공에 몸 담았다. 민항기 조종사로 하늘에서 보낸 시간만 1만 1000시간이 넘는다. 계속 꽃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지난해 4월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거리의 투사가 됐다.
Q : 원래 노동운동에 관심 있었나.
A : “이전엔 노조 활동을 해보지도 않았고 노동 문제도 잘 몰랐다. 그저 하늘이 직장이고 사무실이라고 생각하며 27년을 살아왔다. 조종사가 천직이라고 여기던 아빠를 보며 얼마 전 둘째도 공군사관학교에 합격했다.”
Q : 왜 노조위원장이 됐나.
A : “나만 생각하면 이직 제안이 왔을 때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두 아들이 눈에 밟혔다. 사관학교의 ‘공사십훈’에 나오는 ‘공명정대’란 말을 늘 강조해 왔는데, 혼자 도망칠 수 없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바로 잡는 게 아비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Q : 두 아들에게 떳떳해지고 싶다는 뜻인가.
A : “혼자 가버리면 훗날 자식들이 ‘아빠는 뭐 했냐’고 물을 때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회사에도 열심히 준비해 이제 막 입사한 20대 청년들이 있다. 기성세대인 내가 방관한다면 죄를 짓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찍소리도 못하고 가만 주저앉을 수 없었다.”
Q : 생계가 끊기며 형편이 어려웠을 텐데.
A : “다른 직원들 모두 마찬가지다. 거리로 나선 동안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대리운전이나 일용직 일을 하는 동료들도 많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한순간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Q : 이상직 의원에 대한 이야긴가.
A : “‘친노동자’를 내세우는 여당에서 1300여명의 생계가 끊어지게 만든 사람을 재선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나라가 정상이라면 가만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여당은 오히려 수수방관한다. 노동 현안에 대해선 오히려 (보수 정부보다)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여당 의원들이 면박”
지난 1년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박 위원장은 2020년 10월 8일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를 떠올렸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 위원장은 “8개월째 임금체불로 노동자들이 빚은 빚대로 내고 일용직 알바를 뛰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A의원이 “짧게 하라, 연설하러 온 것도 아니고”라며 질타했다.
이를 본 B의원은 “노조위원장이 말 좀 하자는데 너무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엔 한참 동안 설전이 오갔다. “어느 정도 해야지. 임팩트 있게 짧게 하는 거지.”(A의원) “얼마나 한 맺혔으면 그러겠어요, 그걸 막아요?”(B의원) “막는 게 아니지. 충분히 설명했잖아.”(A의원)
이번엔 C의원이 A의원을 편들며 “절제 있게 해야지. 일방적인 이야기”라며 끼어들었다. 그러자 B의원은 “그게 왜 일방적이냐”고 따졌고 C의원은 “오버했으면 오버했다고 인정하라”고 소리쳤다. 여야 의원들은 이렇게 박 위원장의 발언보다 긴 시간동안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똑바로 하라” “무슨 똑바로” “왜 손가락질” 같은 감정 섞인 말들이 오갔다.
이 셋 중 여당 의원은 누구였을까. 정답은 A(임종성)·C(윤준병)의원이다. 반대로 박 위원장을 두둔한 B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다. 박 위원장은 “여당이 ‘노동자를 위한다’, ‘일자리 지키겠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그런데도 막상 어려움에 처한 노조를 불러 놓고 면박을 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민주주의 열매는 누가 따먹었나
박 위원장은 지난 9월부터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고 16일간 단식 농성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당 지도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서민을 위한다는 ‘을지로 위원회’조차 다른 농성장을 찾아왔다가도 옆에 있던 우리는 애써 피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상호·정청래·고민정 의원처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리고 간 이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여당은 왜 노동자의 절박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을까. 지난해 10월 35년간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김진숙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김 씨는 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함께 했던 노동운동계의 대모다. 그는 편지에서 “(민주주의의) 열매는 누가 따먹고, 나무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노동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여전히)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난다”며 정부여당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앞서 지난 10월 국감 설전의 배경에 대해 임종성 의원은 “다른 증인들은 핵심만 답하는데, (박 위원장은) 혼자 시간을 다 잡아먹으니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편만 들으면 그 말이 맞지만 국회의원은 (이상직 의원과 노조)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중재하는 자리”라고 했다. 민주당이 소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선 “택배 노동자들과도 미팅하고 있다, (노조가) 먼저 간담회를 잡아달라고 해야지 신청도 안 하고 섭섭하다고 하면 우리가 서운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스타항공 사태와 관련한 이상직 의원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 김경률 “민주당은 이스타항공 문제에 해결 의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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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인 김경률(사진)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는 “국정감사에 노조위원장을 불러놓고 모욕만 주는 게 무슨 ‘친노동’ 정당”이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당은 이 사태를 해결할 의지는 없고 오직 표를 얻기 위해서만 노동자와 정의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진보 정당이라면 노동정책, 환경문제, 재벌개혁 등에서 뚜렷한 관점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당을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비유했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는 “정작 박근혜 정부에선 눈치보다 무산된 금산분리 완화(인터넷은행) 조치나, 최근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려는 정부안 등을 보면 여당은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김태년 원내대표 간의 만남에 대해서는 “거짓말이 몸에 배어 있어 펼쳐진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했다. 즉 “본인들이 필요한 법안은 모두 단독으로 통과시켜 놓고 어머니 앞에서는 불리하니까 야당 핑계를 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입으로만 노동자를 위한다고 거짓말하고 행동으론 옮기려 하지 않는다”며 “진보를 자칭하는 가짜 진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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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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